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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순 수녀 교도소 일기] 74 가정 파괴범은 누구인가 10

최남순 수녀ㆍ영원한 도움의 성모회
입력일 2018-09-05 수정일 2018-09-05 발행일 1993-07-04 제 1862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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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위해 단식하며 기도

굳센 신앙생활로 행복 만끽
크리스티나 수녀님께

안녕하세요? 오늘은 화요일 싸늘한 기운이 감돌며 아주 슬픈날이기도 합니다. 제가 그만큼 큰 대죄를 범한 날입니다. 하지만 슬픔에만 잠길 수 없고 씁쓸해 하기 보다는 경건되이 두 무릎을 꿇고 마음 다해 기도드립니다. 저로 인해 고귀한 생명을 잃은 영혼들을 위해 매월 이날은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며 단식하고 있습니다. 그 가족들의 위로와 세상을 떠난 영혼들이 하루속히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게 해주시고 정신적인 고통이나 육체적인 시달림을 받은 분들께도 재삼 용서와 축복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수녀님 이 한 몸이 화하는 순간까지라도 가식됨이 없이 진정한 통회로 그분들의 고통이 덜어진다면 좋으련만, 비난의 소리가 들려와도 제 할 바를 다하고 싶습니다.

수녀님 지금의 제 마음은 수감생활에서의 신앙생활이지만 사회에서의 어느 순간보다도 자신을 되돌아보며 느끼는 감정은 최고입니다. 성서말씀처럼 ‘자기가 심은 바를 거두는 것’이지요.

지나간 무미건조하고 암담했던 일들을 생각해서는 사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만큼 생각 할수록 퇴보한다는데 최고이신 예수님을 가까이 하고 있으면서 그렇죠? 수녀님 먼젓번 황 수녀님 그리고 자매님들이 오셔서 집회 가졌더랬습니다. 제 기도 차례였는데 잘 되지 못했다고 생각이 되어서 그만 마음이 편치 못했어요. 그렇지만 돌아올 적에 보니 수녀님의 눈썹이 젖어 있었습니다. 순간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저녁기도 때 낮에 못했던 기도를 잘 보충해서 잠을 편히 이룰 수 있었습니다. 오로지 죄악만을 일삼은 인생, 이젠 남은 날들을 충실히 후회됨 없이 살아서 주안에서 기쁨을 안겨 드렸으면 하는 마음뿐이옵니다. 수녀님께서도 기도해 주세요. 요한복음 15장 5절 말씀처럼 “너희가 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정말 그래요.

일기가 갑자기 안 좋아서 글씨가 고르지 못함을 용서 하세요. 그레고리오.

최남순 수녀ㆍ영원한 도움의 성모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