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폭염, 태풍 그리고 가을 / 이원영

이원영 (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입력일 2018-08-28 수정일 2018-08-29 발행일 2018-09-02 제 3110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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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선언에 따라 지난주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있었다. 항상 그렇듯이 가슴 아픈 사연들과 눈물 나는 장면들로 이산가족 상봉이 시작되고 마무리됐다. 네 살 때 어머니와 헤어진 북녘의 아들은 68년이 지나 71세가 돼서 92세의 어머니와 만나 눈물로 포옹했다. 두 살 때 아버지와 헤어졌던 북녘의 아들은 75세가 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녘의 아버지가 준비해 온 소주로 건배를 하면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차로 40분 거리인 김포와 개성에 살고 있는 남녘의 오빠와 북녘의 여동생은 65년이 흘러서야 만날 수 있었다.

이런 장면들이 분단으로 인한 현재의 아픔이라면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통해 분단을 넘고자 하는 장면도 있었다. 인도네시아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안게임에 여자 농구팀은 남북 단일팀으로 출전했다. 특히 북측의 포워드 로숙영 선수의 눈부신 활약은 모든 농구계 인사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 여기에 미국 WNBA에서 뛰고 있는 남측의 박지수 선수가 센터로 합류하면서 남북 단일팀의 시너지 효과가 기대되고 있다. 분단의 아픔이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상황이라면 여자 남북 단일팀의 분전은 분단을 넘어 남북이 하나가 될 때의 밝은 미래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지독했던 올여름의 폭염을 견뎌내고 찾아온 결실의 계절 가을의 문턱에서, 지난 분단의 아픔을 모두 견뎌내고 한반도 평화의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가을이 됐으면 한다. 그러나 폭염의 막바지에 태풍을 이겨내고서야 가을이 찾아오듯이, 한반도 평화의 결실을 향해 마지막으로 이겨내야 할 난관들이 있다.

판문점선언과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비핵화와 종전선언 문제를 둘러싸고 여전히 북미 협상은 교착상태에 있으며, 남북협력에도 심각한 제약이 되고 있다. 심지어 개성 연락소 설치를 위해 남측이 북측 공간인 개성에 제공해야 할 에너지와 물자 지원조차 국제 제재와 미국 단독 제재에 해당되는 문제가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지만 8월 말~9월 초,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제4차 방북이 예정돼 있으며, 9월에는 현 정부 들어 세 번째 남북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이 성과에 따라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이 과정에서 북미 간의 협상이 실패한다면 한반도 평화로 나아가는 길에서 만나는 태풍이 될 것이며, 성공하더라도 언제 어떤 태풍이 덮칠지 아무도 모른다.

만일 이 길에서 태풍을 만난다면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요나가 “이렇게 무서운 태풍을 만난 것은 내 탓”(요나 1,12)이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 교회 역시 이 태풍은 바로 내 탓이라고 고백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스라엘이 원수로 여겼던 아시리아의 니느웨를 구원하라는 하느님의 말씀에 따르게 됐던 요나처럼 북한과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찾아 나서야 하지 않을까?

이원영 (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