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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신앙인 안중근 / 황종열 박사

황종열 박사(두물머리복음화연구소)
입력일 2018-08-28 수정일 2019-10-08 발행일 2018-09-02 제 3110호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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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기도대로 산 사람 안중근 토마스

서울 ‘안중근의사기념관’에 시민들이 안중근 의사에게 보내는 짧은 편지들이 붙어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안중근은 1879년 9월 2일에 안태훈과 조성녀 사이에서 첫 아들로 태어났다. 이것이 그가 받은 첫 생명이라면, 그가 선택한 믿음은 두 번째 생명이라 할 수 있다. 그는 1897년 1월에 토마스 사도를 세례명으로 택해 세례를 받고 빌렘 신부와 함께 신앙을 전파하면서 사목 방문을 온 뮈텔 주교의 길안내를 하는 등 교회의 성장을 위해 헌신했다.

안중근은 1906년 봄부터 1907년 여름 사이에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운영하다가 1907년 여름에 북간도로 떠나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신했다. 그는 1908년 여름 독립의병대 참모중장으로 독립군을 이끌고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면서 일본군인들과 상인들을 포로로 잡기도 했다. 이때 부대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빼앗았던 무기까지 돌려주며 포로들을 풀어줬다. 그후 곧바로 일본군의 집중 공격을 당하여 참패했다. 그는 이 전투 이후 독립군 부대를 지휘할 수 없게 됐다. 그런 상황에서 1909년 10월 26일에 러시아 재무장관과 회담하기 위해 만주로 온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역에서 저격했다.

그가 포로 석방 때 증거한 생명 존중은 이토를 저격할 때도 나타난다. 그는 7발의 총탄 중에서 6발만 사용한 채 ‘무죄한 사람을 잘못 쏘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을 잠깐 하는 사이에 체포됐다. 그는 다음해 3월 26일에 일본 점령지 뤼순 감옥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그가 감옥에서 저술한 자서전에서 세례받았을 때를 기억하면서 이렇게 쓴다. “경문을 강습도 받고, 도리(道理)를 토론도 하기 여러 달을 지나, 신덕이 차츰 굳어지고 독실히 믿어 의심치 않고 천주 예수 그리스도를 숭배하며, … 그때 … 홍교사(洪敎師)와 함께 여러 고을을 다니며 사람들을 권면하고 전도하면서 군중들에게 연설했었다.”

안중근은 여기서 “신덕이 차츰 굳어지고 독실히 믿어 의심치 않고 천주 예수 그리스도를 숭배하였다”고 했는데, 이것은 그가 실제로 산 것을 증거한, 그야말로 ‘존재 진술’이었다. 그가 동포들에게 신앙을 선포한 이유는 현세와 내세가 통합된 것이었다. “우리 대한의 모든 동포 형제자매들은 … 지난날의 허물을 깊이 참회함으로써 천주님의 의자(義子)가 되어, 현세를 도덕시대로 만들어 다 같이 태평을 누리다가, 죽은 뒤에 천당에 올라가 상을 받아 무궁한 영복을 함께 누리기를 천만 번 바라오.”

안중근에게는 현세를 도덕시대로 만들어 태평을 누리는 것이 영복에 이르는 길이었다. 그는 이를 위해 신앙을 선포하고 교육 사업에 투신했다. 그러나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를 지키고 성장시킬 도덕시대를 파괴하는 세력이 있었다. 이토의 지배 정책을 따르는 군인과 정부 관리들이 그들이었다. 안중근은 이들의 침략에 맞서 헌신했다. 그가 말한 것처럼 이토를 저격한 것은 평화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방편이었을 따름이었다. 그가 일본군과 전투에서 증거한 것처럼 그에게는 일본인들도 형제였다. 하느님의 자녀가 먼저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침략국의 군인이고 상인이라고 하더라도 이들에게 하느님의 빛이 비춰지고 비가 내리는 것이 먼저다.

안중근은 이토가 일본에서 ‘명예 있는 인물’이라면서 그런 인물을 ‘헐뜯는다는 것은 유감’이라고 직접 말하기도 했다. 자기에게 사형을 구형한 미조부치 검찰관에게 ‘人類社會代表重任’(인류사회대표중임, ‘인류사회의 대표는 책임이 무겁다’)라는 글을 써주면서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를 위해 헌신해 줄 것을 간청하기도 했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영성적 원천은 일본인들도 침략을 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하느님의 한 형제로서 하느님의 빛의 작용에 의해 여전히 회심할 수 있는 존재라는 신뢰였고, 그는 이것을 자신의 존재를 다해 죽기까지 지켜 갔다.

우리는 이 21세기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어떻게 증거할 수 있을까? 교회 안에서도 여러 형태로 송사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우리 신앙인들 사이에서는 신앙을 어떻게 살고, 가정과 이웃과의 관계에서는 이것을 어떻게 증거할 수 있을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세워주신 이 땅에서 뤼순과 판문점과 나가사키를 평화의 띠로 잇고 한라와 판문점과 백두를 평화의 축으로 이어서 남과 북, 일본과 중국, 미국과 러시아, 지구촌 온 시민이 함께 평화의 축제를 어떻게 열 수 있을까?

황종열 박사(두물머리복음화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