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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새내기들의 나약한 삶이지만 / 노희철 신부

노희철 신부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입력일 2018-08-07 수정일 2018-08-07 발행일 2018-08-12 제 3107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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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재 새내기인 신입생들의 지도신부로서 소임을 맡고 있다. 1학년 학생들은 신학교에서 생활을 하지만 선배들과는 분리된 공간에서 생활하며 신학교 생활에 필요한 기초적인 것들을 배운다. 과거에는 신입생들도 입학과 동시에 선배들과 같은 공간에서 기도하며 생활했다. 하지만 10여 년 전부터 신입생들은 선배들과 분리된 곳에서 생활한다. 신입생들은 적응프로그램에 따라 다른 신학생들보다 1주일 이상 빨리 등원하여 생활하며, 성소의 의미와 신학원 생활규정, 내규 등등을 배우고 익히며 신학생다움을 갖추어 간다.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새내기들은 아무런 거부감 없이 순응하며 잘 적응해간다.

그런데 아무래도 신입생들에게 힘든 것은 기도생활이 아닌가 생각된다. 고등학생 시절 예비신학생모임에 다니며 기도실천표를 제출하고 기도생활을 해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도는 아마도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측면보다는 기도실천표를 제출하기 위한 소극적이고 의무적인 측면이 있다. 학생들은 신학교 입학 자격을 얻기 위해 기도실천표를 작성한 측면도 있기에, 하느님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측면에서의 기도는 조금 소홀했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신입생들에게 신학교에서 행해지는 기도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성무일도를 하고 묵상하고 미사에 참례하고, 저녁에 성무일도를 하고, 저녁식사 후에 묵주기도와 끝기도를 하고, 다음날 복음을 묵상하며 긴 기도시간을 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가끔 하루를 마치는 끝기도 후 묵상시간에 주님과 남달리 깊이(?) 대면하는 신입생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주님의 부르심에 심취하여, 동료들의 작은 소리에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주님과의 합일(?) 단계에 이른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면서 주님의 말씀에 격하게 동의하듯 고개를 심하게 끄덕인다.

그런 모습을 보면 한편으로는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도 든다. 지금 그 나이의 다른 또래 친구들은 자유롭게 저녁시간을 보내면서 여자친구도 만나고 음주도 하며 젊음을 만끽하고 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우리 신입생들은 주님의 소명에 충실하겠다는 의지로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신입생들이 이런 과정에 적응할 수 있는 것은 삶의 힘든 여정보다는 주님이 함께해주신다는 믿음과 자신을 봉헌하겠다는 열정이 있기에 가능하다.

우리 현대인들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고단하고 척박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하늘을 바라보며, 보이지 않는 주님을 생각하며 새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신날까! 주님의 음성을 기다리며 성찰과 묵상의 시간을 갖는 것도 우리의 삶에 큰 자양분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근데 바오로는 전화한다더니 왜 안 하는 거야? 한 잔 하러 가야 하는데….”

노희철 신부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