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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전국 성지 순례를 마치고

정효모(베드로·부산 구포본당)
입력일 2018-07-31 수정일 2018-07-31 발행일 2018-08-05 제 3106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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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가망이 없습니다. 저의 의술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식 수술을 해도 가망이 없습니다.”

그런 내 몸에 치유의 기적이 일어난 것일까? 난 20일만에 퇴원했다.

생명의 주인은 주님이심을 깨우쳐 주신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 시간 이후로는 덤으로 사는 생명이었기에 교회의 봉사직에 최선을 다했다. 부르심은 끝이 없었지만 “예”라는 한 마디로 순종했다. 그렇지만 삶의 질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왜 살려 주셨느냐고 원망도 많이 하면서 도망쳤지만, 주님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고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이 바로 고통이었다.

새 생명을 얻고 3년간 왜 살려 주셨는지에 대한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왜”라는 답을 찾고 있는 중에 언젠가 받아 두었던 성지 순례 책자를 보면서 나를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성지 순례를 생각하게 되었다. 순례하면서 무작정 도장이나 찍고 다른 사람들이 하니까 그냥 나도 하는 것이어야 하는지 고민도 많이 하면서 기도 했다. 기도 중에 무조건 떠나라는 응답을 듣고 발을 내디뎠다.

성지를 순례하면서 성전에서 기도 할 때도, 무덤만 있는 곳에도 항상 십자가가 있었다. 이상하게도 십자가만 보면 나의 영혼에 하나하나 쌓여가는 것을 느꼈다.

겁이 나서 고통의 십자가를 피하고 싶어서 순례를 잠시 쉬기도 했다. 그러나 주님은 다시 나를 부르셨다. 눈이 무릎까지 파묻히는 곳도 있었고 폭우가 쏟아지기도 했고 험난한 산골짜기를 걷기도 했다. 순례의 마지막 종착점인 추자도를 갔을 때는 제주 전 지역에 대설특보가 내렸고 도로는 군데군데 차단되어 있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제주도 첫 방문길에 추자도의 뱃길을 열어 주셨다. 추자도 황경환의 묘에서 멀리 보이는 십자가를 찾아갔다. 가파른 바위절벽에 계단을 만들어 놓은 그 곳에 눈물의 십자가가 있었다. 세찬 바람과 눈보라가 몰아쳤지만 가슴이 뭉클하면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5년 10일 만에 순례를 완주하는 날이었다. 그 시간의 십자가는 나의 영혼에 온전히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그 십자가는 아직까지 고통의 십자가로 있다. 이 십자가가 사랑의 십자가로 나의 영혼을 차지할 때까지 나의 순례의 여정은 계속되고 있다.

정효모(베드로·부산 구포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