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천상에 계시든 지상에 계시든 / 이인복

이인복 (마리아) 문학평론가
입력일 2018-07-24 수정일 2019-09-16 발행일 2018-07-29 제 3105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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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만났던 분들에게, 천상에 계시든 지상에 계시든, 문안드립니다. 연이은 수술로 적조했던지라 제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고 생각한 분도 계셨다 합니다. 그러나 생사의 시기는 아무도 모르고 목숨은 하느님 사랑의 선물이니, 제 기도는 한결같습니다. “살아온 날이 감사하고, 살아갈 날은 더 은혜롭습니다. 주님!”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죽게 마련이고, 죽음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병고와 노환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묵상하며, 죽었다 살아온 수술 전후의 고통과 그 고통 후에야, 고통 없이는 하느님의 현존 체험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명심하였습니다. 고통이 할퀴고 간 자국만큼 은총이 거기 차고 넘칩니다.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루카 24,26)고 예수님도 가르치셨습니다.

3년 전에 양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받고 후유증에 시달리던 중, 작년에는 옆으로 쓰러져서 고관절이 골절되었습니다. 119구급차에 실려 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죽음 저편에 갔다가 다시 부활해 되돌아온 육체치유의 신비와 80년 동안 육체를 품었던 제 영혼이 온전히 정화되는 회개의 신비를 체험했습니다. 고통은 신비 중의 신비입니다. 그 절실한 감동의 유사죽음 체험은 하느님이 저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신 으뜸의 천상선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가 선고통후영광의 신비를 증언하듯, 저에게는 연이은 수술이 예수님을 만난 체험이고 하느님 성부의 생명 주심과 성자의 구원과 성령께서 무한 반복으로 지속해주시는 부활 체험이었습니다.

마취 주사를 맞을 때 저는 죽음이 두려웠습니다. 깨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의식을 잃었습니다. 그 순간이었습니다. 빛으로 가득 찬 공간이 열리면서 예수님의 시신이 눕혀 있었을 지점으로 눈길이 가는 순간 저는 ‘예수님의 무덤’이라고 온몸의 세포가 합창으로 외쳤습니다. 그 순간부터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며 참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 만나고 가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고 고백하며 용서를 청했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을 참회하는 동안에 수술이 진행된 것이고, 수술이 끝나, 제가 깨어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는 그 순간, 저는 수난과 고통으로 지쳐계신 예수님을 포옹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가시관 쓰고 살점 찢어지며 채찍으로 매 맞고 마지막 피 한 방울 마지막 물 한 방울 다 흘리며 돌아가신 그 고통 어찌 이겨냈습니까? 인류의 평화를, 남북한 동포를, 북한 함흥에 살아있어야 할 저의 가족들을 위해, 마지막 피 한 방울 마지막 물 한 방울 다 흘리고 가셨지요? 가엾어라! 주님. 얼마나 아프셨습니까?” 그렇게 예수님을 위로하는데, 차차로 저와 예수님 사이에 우주의 무한 공간이 열리면서 세상에서 인연 맺었던 분들 모두가 그 공간 안으로 들어와 안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공간이 하늘처럼 넓어지며 그리운 사람들을 다 포옹할 수 있었습니다. 제자들과 친지들, 성직자들과 수도자들, 자손들과 이산가족 모두를. 그리고 외국에 나가 있어 제가 임종을 지켜드리지 못해 평생 죄송한, 저의 어머니를 포옹하며 목이 메어 용서를 청했습니다.

살아남을 시간 동안, 회개하며 살겠습니다. 저에게 섭섭했던 일이 있는 분들 모두에게 용서 청합니다. 하느님의 크신 축복을 이제로부터 영원히 받으소서. 아멘.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인복 (마리아)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