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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올림픽, 평창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들 사목 서울대교구 임의준 신부

성슬기 기자
입력일 2018-01-30 수정일 2018-01-31 발행일 2018-02-04 제 3081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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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의 싸움, 그 힘겨운 순간을 위로합니다”
선수들 한계 극복하는 모습에 용기 얻어
3월 열리는 패럴림픽에도 관심 가져주길

2015년 그라나다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은메달을 딴 스키 하프파이프 국가대표 김광진 선수가 벗어준 점퍼를 입은 임의준 신부. 임 신부는 “선수들이 필요할 때 옆에 있어주는 것이 진정한 스포츠 사목”이라고 말한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 선수들의 땀과 눈물 뒤에 숨겨진 그 마음을. “기도 해달라”는 선수들의 말에 잠을 아껴 가며 묵주알을 굴린다. 선수들이 필요로 할 때는 늘 그 곁에 머문다. 올림픽 대회를 비롯해 세계적인 스포츠 경기 현장에서 선수들 곁을 지켜온 임의준 신부(서울대교구 직장사목부 담당). 그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이하 평창올림픽)와 동계패럴림픽(Paralympics·장애인올림픽, 이하 평창 패럴림픽)대회 기간 동안에도 경기 현장에서 선수들과 함께 한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대회에서 김연아 선수가 얼음판 위에 서 있는 걸 보면서 처음으로 선수들이 저 순간 정말 외롭겠다고 느꼈습니다.”

임 신부가 올림픽과 처음 인연을 맺은 건 4년 전 소치 동계올림픽 때다. 소치 동계올림픽을 두 달 정도 앞둔 2013년 12월.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가톨릭 신자 선수들을 격려하기 위해 태릉선수촌을 찾았다. 염 추기경이 “뭐든 돕겠다”고 하자 박승희(리디아) 선수는 “올림픽 기간 중 신부님이 따라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곧바로 임 신부의 소치행이 결정됐다.

임 신부는 당시 얼음판 위에서 경기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며 국내 스포츠 사목의 필요성을 느꼈다. 2015년 스페인 그라나다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등에도 파견됐다.

경기 현장에서 임 신부는 선수들이 성적에 대해 느끼는 중압감을 함께 느꼈다.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자기 한계를 마주하는 순간, 그 어느 때보다 기도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치에서 다른 나라 팀들이 경기를 마치면 결과에 상관없이 서로를 격려해주는 모습이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메달 색과 상관없이 4등을 해도 축하해주고 6등을 해도 축하해주더라고요. 4년간 열심히 노력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축하받을 자격이 있는 선수들이잖아요.”

임 신부는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 곁에서 조용히 앉아 기도하거나 그들을 토닥여준다. 메달을 땄을 때만 관심을 보이는 이들과 달리 임 신부는 선수들이 필요로 할 때 늘 그들 곁에 있다. 임 신부는 신자 선수들 사이에서 ‘선수들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신부’로 통한다.

2013년부터 국가대표 선수촌이 진천으로 옮기기 전인 지난해 12월까지 서울 태릉선수촌 성 세바스티아노 경당 담당을 맡았었다. 매주 수요일이면 국가대표 선수들과 미사를 봉헌하고 신자가 되길 원하는 선수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를 주는 등 선수들이 신앙을 찾고 성숙시켜 나갈 수 있도록 힘썼다.

임의준 신부가 2014 소치 동계올림픽 기간 중 당시 쇼트트랙 국가대표 박승희, 박세영, 김아랑 선수(임 신부 왼쪽부터)와 함께 기도하고 있다. 임의준 신부 제공

이번 평창올림픽에 출전하는 신자 국가대표는 쇼트트랙 남자 대표팀 주장 곽윤기(스테파노), 쇼트트랙 김아랑(헬레나), 스피드스케이팅 박승희(리디아)·김민선(가타리나), 아이스하키 남자대표팀 주장 김원중(빅토르)과 박우상(베드로)·박성제(미카엘)·김원준(요한사도)·이영준(바실리오), 여자대표팀 이연정(마리스텔라)·최지연(데레사), 스켈레톤 정소피아(소피아) 선수다.

이들의 훈련 과정부터 계속 지켜봐온 임 신부는 “흔히 스포츠는 결과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실제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 결과에 따라 순위가 정해지겠지만 사실 순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선수들이 땀 흘리며 노력하고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용기와 희망을 얻지요. 올림픽의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임 신부가 생각하는 스포츠 사목은 ‘선수들을 위한 사목’이다. 특히 선수들이 메달을 못 따거나 다쳤을 때 “하느님이 너와 함께 있다”고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스포츠 사목에서 교회의 몫은 ‘선수들이 선수다운 경기’를 할 수 있도록, 즉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 신부는 “스포츠는 상대방을 이기는 것 보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인 것 같다”면서 “그들이 공정한 상황에서 후회 없는 경기를 보여 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쇼트트랙 여자 대표팀 주장에게 벌어진 ‘손찌검 사건’을 언급하며 “스포츠 선수의 인권을 지켜주는 것도 교회가 관심 가져야 할 부분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임 신부가 꼽은 스포츠 정신 3가지는 공정함, 열정 그리고 노력이다. 특히 올림픽이 평화의 상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공정함’ 덕분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올림픽을 “가장 치열하면서도 가장 평화로운 경기”라고 말한 임 신부는 “올림픽의 평화를 위해 교회는 ‘공정함’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 신부는 새로운 선수가 세례를 받거나 냉담하고 있던 선수가 성당을 다시 나올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 전지훈련 간 선수들이 현지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인증샷을 찍어 보내주거나 ‘기도가 잘 된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기분이 좋다고 했다. 선수들에겐 교리를 ‘배달’하는 신부이기도 하다. 세례를 받고 싶다는 선수들이 있으면 임 신부는 어디든 달려가 교리를 가르쳐 주고 세례를 준다. 스포츠 선수들은 어릴 때부터 해외 전지훈련 등 빡빡한 훈련 일정으로 6개월 동안 꾸준히 교리를 받기 힘든 경우가 대다수다. 이런 특수성을 고려한 염수정 추기경이 그에게 “세례 받기 원하는 선수들이 있으면 그 특수성을 고려해 그들의 간절한 마음을 보고 교리를 진행하고 세례를 주라”고 사목적 배려를 당부하기도 했다.

아울러 올해 처음 파견되는 평창 패럴림픽에 대해서는 “그동안 관심이 부족해 그들만의 축제가 된 것 같아 아쉽고 미안한 마음”이라면서 “이번 파견을 계기로 패럴림픽 선수들에게도 더욱 관심을 갖고 그들의 신앙 성숙을 위해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