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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I] 교육,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9. 끝〉종합

우재철 기자
입력일 2017-08-17 수정일 2017-08-17 발행일 1994-08-21 제 1918호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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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개혁 통한 참교육 완성 “절실”

규격화된 교육은 개성 인성 말살
전인교육 위한 교회의 노력 긴요
올바른 심성과 삶의 방향 위해 유아교육 개선돼야
「끊임없는 교육을 통해 사람이 사람답게 다듬어진다」는 말처럼 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만큼 인간은 가정교육과 학교교육 사회교육 등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점차 하나의 인격체를 완성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교육은 인간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연습이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육은 과연 어떤 위치에 서 있는가. 태어나기 전부터 낙태의 위협을 겪어야 하고 출생 직후부터는 자기만을 위한 철저한 개인주의와 입시위주의, 출세주의에 물들어 정작 인간교육은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하고 마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어떤 품성을 지닌 인간으로 키울 것인가보다는 얼마나 좋은 직업을 갖고 남에게 기 죽지 않고 살도록 키울 것인가에 관심을 쏟는 기성세대의 사고방식으로서는 당연한 결과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결국 이러한 원인들은 부모를 살해한 박한상군의 사건처럼 불거지고 부모도 없고 스승도 없는 철저한 배금주의 출세주의 사회로 포장돼가고 있다.

그동안 가톨릭신문이 잘못된 교육으로 파생되는 문제점들을 태아교육을 비롯 유아교육, 주일학교, 국민학교, 입시위주 교육, 대학교육, 해외 유학, 평생교육 등을 주제로 다룬 기획시리즈 결과만 보더라도 교육이 개인과 사회 전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인간에 대한 존엄성을 자연스럽게 길러주기 위해서는 태아에 관한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다.

연간 1백50만 명에 달하는 무고한 생명이 낙태로 희생되는 우리나라의 잘못된 낙태현상은 결국 모든 생명에 대한 경시풍조를 불러오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팽배한 희박한 생명의식도 결국 낙태를 살인으로 여기지 않고 아무런 죄의식 없이 자행하는 데서 비롯됐다고 사회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또한 사회학자들은 한 사람의 심성과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데는 인간교육의 첫 단계라 할 수 있는 유아교육이 올바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첫 단추를 잘 꿰어야 마지만 단추도 잘 꿸 수 있다」는 속담처럼 뚜렷한 인성이 갖춰지기도 전에 남을 돌볼 줄 모르고 「너 혼자만 잘되면 된다」는 식의 강요된 부모 욕심에서 자란 아이들은 결국 메마른 인간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어린이들은 규격화된 교육의 틀 속에서 항상 쳇바퀴 돌듯 또 부모와 사회의 강요에 못이겨 떠밀리듯 교육돼온 어린이들로서는 개성과 인성을 갖춘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랄 수는 없다.

그 대안으로 교회 관계자들은 교회의 적절한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주일학교를 비롯한 교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교육기관에서만이라도 가정교육에서 배제되고 있는 공백을 메꾸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주일학교 체제로서는 단순한 교리 지식을 전달하는 데도 역부족이라는 점에 비추어 볼 때 과연 교회가 이런 현실을 간과한 인간화교육, 전인교육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교회의 노력만으로 입시위주 출세주의 현상을 단번에 바꾸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교회마저 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사회현상에 이끌려 다닌다면 정작 이 사회의 희망을 아무 데서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 전체가 교육에 대한 중병을 앓고 있는 것은 입시위주의 교육과 출세주의 사고방식의 팽배로 지적하고 있다.

입시위주의 교육 풍토는 감수성이 예민한 성장기의 청소년들을 극도의 이기주의와 경쟁심리를 유발시켜 나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적으로 만들도록 부추기고 있다.

고 3에 재학 중인 김민석(안토니오)군은『같은 반 친구들이 친구로서 느껴지기보다는 친구를 이겨야 내가 산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다』며『그런 기분에서 어떻게 친구가 있고 우정이 있을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대학을 졸업해야 대우 받는 사회 속에서는 대학의 진정한 목표인 공동체적 나눔과 인류평화에 기여하기란 공염불이 되기 십상이라는 지적 또한 만만찮다. 자신의 적성이나 소질에 의해 대학을 선택하기보다는 성적에 끼워 맞춘 대학 입학이 불러온 결과란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 한양대학교가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처음으로 봉사활동을 학점으로 인정해 주기로 했다는 결정이 있어 다행스런 일이긴 하지만 이제 대학은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한 독서실 역할을 탈피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체나 국가에서 인재를 채용할 때 성적이 얼마나 좋았느냐를 따지기 이전에 얼마 만큼 사회봉사를 하고 좋은 성품을 갖췄느냐 하는 데에 채용의 비중을 많이 둬야 할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대졸자만이 우대 받는 사회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다는 점이다.『공부를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몫이 있기 마련이고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데도 우리 사회는 온통 대학의 열병을 앓고 있다』는 전직교사 강인수씨는 대학교육을 정상화 시키기 위해서는 학벌 위주의 사회구조가 개선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결과는 곧 무분별한 해외 유학의 병폐를 동반, 국내 대학에 못들어갈 형편없는 학생들이 막연한 기대로 외국어나 배워 보자는 식으로 유학길에 올라 현재 10만 명 이상이 해외 유학 중에 있다.

유학생 중에는 외국의 선진학문을 배워 국가적 인재 양성에 중요한 몫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유학생문제는 우리 사회의 빗나간 구조적 단면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원인들에 대해 고려대 김문조 교수는 학력우대사상과 학력별 임금격차 및 승진제도, 획일적 권위주의, 기회구조의 불평등 등 기성사회의 제 측면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단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사회의 병폐로 지적되고 있는「참교육의 부재」를 올바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전반적인 제도나 의식의 변화가 수반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백년대계의 교육이 국지적이고 일회적인 제도로써 고쳐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궁극 목적을 위해 동시에 공동사회의 복지를 위해 인간의 인격 형성을 추구하는 것이 참된 교육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때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인 교육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우재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