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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과 함께 떠나는 가족 성지순례] 주말 명순례지 특선 9 남한산성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17-07-12 수정일 2017-07-12 발행일 1994-12-18 제 1934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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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맴도는 순교 메아리 ”애절”
수구문 통해 주검 대량 방기
동문 밖 계곡마저 붉게 염색
대원군 영세불망비 “격세지감”
서울에서 동남쪽으로 26km, 성남시에서 북동쪽으로 6km 떨어져 있는 남한산 위에 자리잡고 있는 남한산성은 편리한 교통과 수려한 경관으로 주말 등산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산성 내 중턱에 있는 로터리까지 널찍한 도로가 열리고 자가용은 물론 좌석, 직행버스가 통행하면서부터는 평일 아침에도 가벼운 차림으로 남한산을 찾는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띈다. 더욱이 도로 양편으로는 깨끗하게 지어놓은 기념관이나 전시장들이 들어서 있고 산채, 자라탕, 메기탕 등 특산물을 파는 식당이나 숙소들도 충분해 찾는 이들은 조금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울긋불긋한 옷차림을 하고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오가는 사람들 중에 오직 천주를 섬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많은 신앙 선조들이 바로 여기서 처참하게 처형됐다는 역사적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서늘한 산 공기를 마시며 오르는 즐거운 산행길 곳곳에는 순교자들의 굳센 믿음과 꿋꿋한 결의가 서려 있다. 이번 주말에는 여느 때의 산행과는 다른 순례의 자세로 남한산성의 산비탈을 오르며 순교자들의 거룩한 향기를 맡아보는 것도 의미 있을 듯하다.

남한산성은 병자호란(1839) 이후 처형 터가 있어 기해박해(1839)와 병인박해(1866) 당시 광주 일원, 양주, 용인, 이천에서 잡혀온 교우들이 치명, 순교한 곳이다.

◆순교자들 의절의 땅

원래 남한산성이 위치한 자리는 신라 문무왕(661~681)이 쌓은「주장성」(일명 일장산성)의 옛터로 그 후 몇 차례 현재의 남한산성은 조선 인조 2년(1624) 때 크게 고쳐 지은 것으로 후금국의 위협과 이괄의 난을 계기로 2년 간에 걸쳐 축조됐다고 한다.

성의 둘레는 약 8km에 달하고 높이는 7.3m 가량이다. 동서남북 4군데에 문루가 있고 역시 4방위에 각각 장대(옛날에 장수가 올라서서 명령, 지휘하던 곳)가 있었는데 현재는 수어장대만이 남아 있다. 또 원래 9개의 절이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지금은 장경사만 남아 있다.

◆인조 2년 크게 개축

남한산성으로 들어서는 길은 두 군데로 서쪽으로는 성남 방면, 동쪽으로는 경기도 광주 방면으로 연결된다. 치명 터가 동문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순례객들은 동문으로 들어서야 한다. 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을 경우 서문으로 와서 로터리를 거쳐 동문으로 빠져나오는 길도 가능하고 사실 대중교통 편은 성남 방면이 더 노선이 많다.

새로 복원돼 깔끔하고 세련된 모습을 자랑하는 남한산성 입구 정문을 지나면 동문이 나온다. 동문 오른쪽으로는 산비탈을 거슬러 올라가며 육중한 성벽이 위용을 자랑한다.

동문을 지나 몇 걸음을 옮기면 오른쪽으로 도랑 건너편에「천주교 순교 성지」라는 철제 팻말이 서 있다.

『이곳은 서기 1791년 신해 1801년 신유 1839년 기해 1866년 병인 네 차례에 걸쳐 한덕운 김덕 심정은 등을 위시하여 70명 이상(실순교자 2~3백 명으로 추산) 순교한 곳임』.

순교 성지의 이정표를 본 순례객들은 바로 이곳이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막 지나온 동문을 통해 신앙 선조들은 비록 오랏줄에 묶여 살아서 들어왔지만 고문 끝에 결국은 시체가 되어 성 밖으로 던져졌다.

더욱이 살아서 동문을 들어온 이들은 죽어서는 물이 빠지는 구멍인 성 밑에 파놓은 수구문을 통해 내팽개쳐졌다. 그래서 수구문은 시구문(屍口門)이 됐고 이곳으로 흘러내리던 물도 핏물이 됐으며 동문 밖 계곡에는 시신이 쌓였다.

◆동문은 생사 갈림길

시구문은 동문을 바라보며 왼쪽 길 바로 밑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얼핏 보면 잘 알 수 없고 얼기설기 철조망으로 가려놓은 밑을 잘 들여다보면 어른 두어 명이 허리를 굽히고 다닐 만한 크기의 사각 구멍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옆길로 돌아 비탈길을 내려서 시구문 바깥쪽으로 내려서면 마치 당시의 처참한 광경이 눈에 보이는 듯 선하고 그 험한 고통 속에서도 신앙을 지켜내고야 말았던 선조들의 굳은 신앙이 메아리 치는 듯하다.

동문의 애달픈 이야기를 뒤로 하고 비탈을 따라 1km 정도 걸어 올라가면 남한산성 로터리가 나온다. 로터리는 북문과 서문, 남문으로 가는 길이 교차하는 지점으로 계절이나 날씨에 따라 적절한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 좌석, 직행버스가 성남이나 광주쪽에서 로터리까지 올라오기 때문에 승용차를 이용하지 않더라도 쉽게 성을 둘러볼 수 있다.

◆옥터는 주차장 변모

이 로터리에 천주교도들을 수감했던 옥터와 처형터가 있다. 동문쪽에서 올라와 로터리에 도착하면 오른쪽에 있는 추자창이 옥터 자리로 추정된다. 정면에는 섭정 10년간 2만여 명의 천주교 신자를 학살한 것으로 전해지는 대원군의 영세불망비가 세워져 있어 세월의 무상함을 일러주는 듯하다.

어느 사찰 승려들이 세워준 것으로 전해지는 불망비와 마주한 곳이 바로 처형지였다고 교회사가들은 전한다. 여기서 처형된 신자들이 시체가 되어 산비탈로 질질 끌려내려가 동문 밖 개울로 던져졌다.

당시의 슬픈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로터리는 산행 나온 사람들의 즐거운 목소리가 가득하고 처형터에 연이어 늘어서 있는 식당에서는 오랜 만에 특미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한가롭다.

동문, 시구문과 처형장, 옥터를 둘러본 순례객들은 이제 선조들의 피어린 순교정신을 마음 속에 깊이 되새기며 맑은 산 공기를 마시며 역사 공부를 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경기도립공원인 남한산성은 수림과 유적, 기념관 등이 잘 정리돼 있다. 수어장대, 숭열전, 청량당, 현절사, 침괘정, 연무관 등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1호부터 6호까지로 지정돼 있으며 본성 축조 당시 창건한 성 내 9개 절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장경사와 병자호란 기록화 전시장 등도 한 번 둘러볼 만하다.

◆교통안내

■승용차 이용시

▲동편 진입로

△ 천호대교-길동-중부고속도로IC-황산삼거리-광지원-동문-산성로터리 △중부고속도로 광주IC-광지원-동문-산성로터리

▲서편 진입로

△잠실-복정사거리-약진로-남문-산성로터리 △경부고속도로 양재IC-헌인릉 앞-세곡동-대앙교-약진로-산성로터리 △경부고속도로 양재IC-양재대로-수서IC-동부간선도로-세곡동-대왕교-약진로-산성로터리

■정규 노선버스 이용시

서울에서 출발할 경우 지하철 3호선 양재역과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서 36, 66, 736번 버스가 성남쪽 남한산성 유원지 입구까지 운행한다.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출발하는 시외버스와 115-1번 버스는 명일동, 암사동을 거쳐 남한산성 내 로터리까지 운행한다.

인천 종합터미널에서 성남쪽 입구까지 운행하는 직행버스가 있고 신장에서 하일, 황산을 거쳐가는 30-1번 버스도 이용할 수 있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