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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주일 탐방] 생명농업 앞장서는 국내 최초 ‘GMO 프리존’ 원주시 흥업면 대안리

권세희 기자
입력일 2017-07-11 수정일 2017-07-12 발행일 2017-07-16 제 3053호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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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조작 없는 ‘생명 먹거리’ 생산
 힘들어도 ‘창조질서 보전’ 자부심 크죠”
장맛비 아랑곳없이 분주한 손놀림에
푸른 잎과 탐스런 열매마다 정성 가득
일반 농사에 비해 어려움 훨씬 많지만
건강한 농산물 만드는 데 큰 보람 느껴

7월 7일 원주교구 대안리 공소 밭에서 생명 농산물을 가꾸고 있는 농민들.

“건강한 먹거리 생산하며 같이 나누는 것도 기쁨이지요.”

7월 7일 오후 원주교구 대안리공소. 장맛비가 한창인 가운데도 장화에 우비를 갖춘 농민들의 발걸음이 바쁘다. 분주한 손길이 닿는 곳마다 싱그러운 고구마 잎과 알이 영글어 가는 옥수수가 탐스럽다.

“비가 와서 그런가, 고구마 잎이랑 줄기가 싱싱하고 좋구먼. 맛깔나겠어.”

푸른 잎사귀를 매만지던 김만순(보나·77·원주교구 흥업본당)씨가 입을 떼자 함께 일하던 최춘옥(바르바라·56), 최화정(바르바라·64), 김황봉(안나·65)씨도 맞장구를 쳤다.

이날 공소에 모인 건 한 달에 두 차례 주일미사 후 신자들과 함께하는 점심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자발적으로 봉사에 나선 이들은 손수 키운 ‘건강한 작물’로 식사 준비를 한다. 2006년 국내 최초로 ‘GMO FREE ZONE’을 선언하고 ‘생명농업’에 앞장서고 있는 대안리는 국내는 물론 나라밖에서도 건강한 마을로 잘 알려져 있다.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농산물은 공학적 기술을 이용해 작물의 유전정보를 인공적으로 변형한 ‘유전자 조작 농산물’이다. GMO 공법은, 1994년 미국 칼진(Calgene)이 잘 무르지 않는 토마토를 개발하고, 1996년 미국 몬산토(Monsanto)가 제초제 내성을 가진 콩을 내놓으며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갔다. 이후 품목과 생산량이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미국 내에서 시판되고 있는 GMO 농산물만 콩 옥수수 감자 토마토 등 10여 종을 넘어선지 오래다. GMO 공법은 한때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면이 부각돼 각광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20여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GMO 작물이 생태계와 사람에게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확인되고 있다.

원주교구 가톨릭농민회관 앞 ‘GMO FREE ZONE’ 장승.

교회는 2003년 11월 10일,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가 GMO를 주제로 국제 세미나를 열면서 본격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GMO에 대한 연구가 축적되면서 교회는 GMO 산업이 야기하는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불의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현 온전한 인간 발전 촉진을 위한 교황청 부서) 피터 턱슨 추기경은 지난 2011년 교황청 기관지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인터뷰에서 “농부들이 GMO에 의존하게 하는 것은 ‘새로운 형태의 노예제도’”라고 지적했다.

생명농업에 앞장선 지 11년이 흐른 지금, 건강한 농산물을 향한 마음은 한결같지만 유기농 농사의 어려움도 여전했다. 밭일 정리를 마친 농민들이 공소 한쪽에서 직접 생산한 옥수수를 쪄 나누며 ‘건강한 농산물’ 재배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사람한테 해가 안 되는 방법으로 농작물을 재배하려니 몸이 고되요. 아무래도 손이 더 많이 가지, 약을 뿌리면 금방인데…. 나이도 들어가니까 육체적으로도 더 힘들고요.”

최춘옥씨 말에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김이 오르는 옥수수를 서로 권하면서 김황봉씨도 말을 보탰다.

“마을에 젊은 사람도 별로 없지…. 게다가 요즘에는 친환경을 표방하는 기업도 늘어나 경쟁하며 농사짓기가 갈수록 힘들어요.”

밭에서 신나게 일하던 모습과는 달리 농민들의 얼굴에 그늘이 짙어졌다. 생명농업은 비료 주는 일부터 가꾸는 데 몇 곱절로 손이 간다. 생명농업을 시작하면서 시행착오도 많았다. 비료 대체재를 만드는 일부터 모든 게 처음이다 보니 당연히 맞닥뜨리게 되는 어려움들이었다.

원주교구 가톨릭농민회 한종범(스테파노·62) 상임위원은 “처음 GMO FREE ZONE을 선언하고 생명농업을 시작하면서 어려움도 많았다. 초반에는 수익이 많이 나지 않고 일이 힘들었다. 중간에 포기하는 농민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농가가 고령화되면서 농사일을 힘들어하는 농민도 많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농민들이 생명농업에 힘쓰고 있다”며 웃음 지었다.

“몸이 힘들어도 사람 입으로 들어가는 건데 깨끗하고 건강한 농산물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지요. 아이들도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지. 정성들여 자라는 농산물을 보면 농사 짓는 보람을 느껴요.”

얘기를 나누는 동안 꽉 찼던 알을 털어낸 옥수수들로 빈 그릇이 수북해졌다. 둘러앉아 농사일로 이야기꽃을 피우던 것도 잠시, 비가 수그러들자 바쁜 걸음을 밭으로 옮겼다.

“함께 건강한 먹거리를 만드는 것이 보람입니다. 일은 고되지만, ‘믿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든다는 생각에 생명농업을 이어가게 됩니다.”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 생산을 멈추지 않겠다는 농민들의 다짐 속에 주님의 ‘창조질서 보전’에 앞장서고 있다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권세희 기자 se2@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