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최남순 수녀 교도소 일기] (66) 가정파괴범은 누구인가 2

입력일 2017-06-01 수정일 2017-06-01 발행일 1993-01-17 제 1838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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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ㆍ형제들 냉대로 범죄에 빠져
아파트 침입 금품뺐고 폭행ㆍ살인
그런데 어느 가을날 저녁 무렵 수녀원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려왔다. 교도소 천주교 담당관의 전화였다.『수녀님 그레고리오라고 생각나시죠? 작년에 수원교도로 이송간 재소자 말씀입니다. 그 친구가 또 ○○경찰서에 구속되었네요. 꽤 잘 살았는데…』

나는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 다리에 힘이 다 빠지는 것 같았다. 아깝다. 왜 그랬을까? 나는 최선을 다해서 가르쳤는데 앞이 캄캄했다. 내가 죄를 지은 것 같았다. 한 10일 지나서 그레고리오를 구치소에서 다시 만났다. 만난 순간 서로가 처음엔 입을 열지 못했다.

그것도 그 젊은이의 인상과는 너무나 엄청난 죄명이었다. 교무계장님 말씀이 세계적으로 최고로 손꼽힐 정도의 추행이라며 대강 말씀을 들려 주셨는데 괴로워서 차마 듣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왜 그랬을까? 마음속으로 수없이 자문해 볼뿐이었다.「왜 그랬니?」물어볼 수도, 야단칠 수도 없었다. 나는 스스로 죄스러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어려우면 나를 찾아와 의논하지 그랬어』했다. 그는 고개를 떨구면서 작은 소리로『그때 수녀님을 찾았어요…수녀님이 편찮으시다고 전화 받는 수녀님이 바꿔주지 않았어요』한참 침묵이 흘렀다.『출소해서 어디서 살았니?』그는 한참만에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석방되어 나가보니 제가 살 곳이 어디에도 없었어요. 형님 두 분은 쌀쌀하게 집안 망신시킨 놈이라고 쳐다보려고도 안하시고 조카들 마저도 슬슬 피할 정도로 가까이 오지 않았어요. 식구들의 쌀쌀한 눈초리와 서먹한 분위기가 견디기 어려웠어요. 엄마께선 누님댁에 얹혀 사시는데 저마저 짐되게 할 수 없었구요. 그래서 별수 없이 또 다시 거리를 방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제 마음은 겉잡을 수 없어서 수녀님을 찾았는데 만날 수가 없었어요.

그 후 그는 매주 월요일마다 꼬박꼬박 봉함엽서를 보내왔다.

『수녀님 ○○교도소에서 교우 한 사람이 제 옆에 이송 와서 있습니다.

그때의(자신의 사형이 확정되어 서대문으로 이감되던 때를 회상하는듯)제 생각은 매우 언짢아서 아무말도 나오지 않았거든요. 너무나도 미안하고 송구스러워서 뵙지 못할 지경이었는데도 수녀님께서는 교무과로 절 찾아오셔서 성모님 목걸이 등을 주시며「신앙을 굳혀야 하는데 그레고리오」하고 말씀을 주셨을 때 전 제 마음이 얼어붙는 것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는 앞에 마주 앉아서 보면 누구보다도 착하고 어린아이 같이 순수해 보이는 청년이었다. 그런 형제가 반상회를 하고 있던 아파트에 들어가 세든 아가씨를 살해하고 금품을 빼앗고, 또 그 동생까지 폭행했다니…그는 그 끔찍한 범죄 후 다른 공범들과 함께 도망쳤다가, 혼자 여관에서 신경안정제와 농약을 마시고 자살을 기도했다가 혼수상태에서 붙잡힌 것이다. 나를 보더니 아무말도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추울텐데…. 나는 그에게 하얀 솜바지 저고리를 사서 넣어주었다. 대부분 범죄 청소년들이 그렇듯이 그도 부모나 형제들에게 별로 사랑을 못 받고 겉돌던 외로운 처지였다. 이런걸 생각할 때 우리는 모두 공범자라는 생각이 든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