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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3주기] 세월호와 함께한 사람들 - 안산합동분향소 천주교 부스 지킴이 조현희씨

서상덕 기자
입력일 2017-04-11 수정일 2017-04-14 발행일 2017-04-16 제 3040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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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평 컨테이너가 제겐 하느님 만난 광야”
마이크 설치 돕다 봉사 시작
매일같이 퇴근하자마자 들러
“주님께서 도구로 쓰시는 듯”

3년이라는 세월 동안 조현희씨는 안산합동분향소에서 매일같이 봉사하면서 주님의 진리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된 것을 가장 큰 은총으로 꼽았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이들을 위한 미사가 드려지는 곳이 바로 저의 광야였습니다. 광화문 광장, 천막, 컨테이너 부스…. 그 광야에서 매일같이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1072일 동안 바다 속에 가라앉아 있던 세월호가 마침내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낸 3월 23일, 매스컴을 통해 세월호 인양 작업을 지켜보던 조현희(렐리아·31·수원교구 안산 성요셉본당)씨는 한동안 벅차오르는 가슴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을 숨기느라 혼날 지경이었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날부터 그의 가슴에서는 한 번도 세월호가 떠난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세월호 희생자들과 특별한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세월호가 가라앉던 날부터 조씨는 거의 매일같이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미사를 봉헌해오고 있다. 미사가 봉헌되는 곳이 야외에서 천막성당, 컨테이너 부스 등으로 바뀌는 중에도 어김없이 자리를 지켰다.

“제가 가르치던 주일학교 학생과 친한 친구들이 세월호 참사로 희생당했어요. 제게도 언제든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희생자 유가족들이 주일학교 학부모들과 겹쳐 보였어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첫해 여름 ‘세월호 참사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가 있는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 내 야외음악당. 미사에 참례하던 그에게 어쩌다 맡겨진 일이 마이크 등 음향장치 설치를 돕는 일이었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는 새 일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미사 봉헌을 위한 제대를 차리는 일부터 전례 준비, 미사 일정 관리, 참배객 안내…. 그해 6월에는 아예 수원교구 안산대리구에서 그를 담당봉사자로 정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주님께서 저를 도구로 쓰시려고 하신 게 아닌가 싶어요.”

안산합동분향소 천주교 컨테이너 부스. 이곳에서 매일 오후 8시 미사가 봉헌된다.

2014년 겨울을 맞으며 합동분향소 인근 8평(28㎡) 남짓한 컨테이너 박스에 천주교 부스가 차려졌다. 매일 오후 8시에 봉헌되는 미사 외에도 낮에는 희생자들을 위한 연도와 상담 등이 이뤄졌다. 어느새 천주교 부스에서 이뤄지는 일 가운데 그의 손을 거치지 않는 일이 없을 정도가 됐다.

“미사 준비 등 처음 해보는 일투성이였어요. 당연히 스트레스 받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어요. 하지만 제가 자리를 비우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 거예요.”

다니는 직장이 합동분향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인데다 집도 그곳에서 차로 15분 남짓한 거리라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회사에서 퇴근하자마자 천주교 부스에 들러 미사 준비를 하고 미사를 마치고 뒷정리까지 하고 집에 들어가면 보통 밤 10시가 가까운 시간. 그걸로 끝이 아니다. 그날 일을 돌아보고 다음 일정을 정리하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다. 10년 동안 해오던 주일학교 교사생활도 접고 세월호 일에 매달리다시피 하는 그를 두고 친구들은 본당을 아예 화랑유원지로 옮기는 게 어떠냐는 말까지 한다.

“지난 시간동안 저도 모르는 사이 믿음이 커졌다는 게 가장 감사한 일입니다.”

3년이라는 세월이면 적지 않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시간. 조씨는 주님의 진리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된 것을 가장 큰 은총으로 꼽았다.

“주님의 진리, 기쁜 소식을 아는 사람은 그것을 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 뭍으로 오른 세월호를 바라보며 새로운 각오를 다진다는 그는 “한 번만이라도 분향소를 찾아 영정 속 아이들과 눈을 맞춰보길” 청한다.

“부활은 그 아이들 눈 속에 있습니다.”

서상덕 기자 sa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