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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3주기] 특별기고/ 박기호 신부 - 부활 신앙으로 바라본 세월호

박기호 신부(서울대교구·산위의마을 대표)
입력일 2017-04-11 수정일 2017-04-12 발행일 2017-04-16 제 3040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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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의 단련 받았으니 이제 높이 솟아오르리
자식을 잃고, 또 시신도 찾지 못한 가족들에게 신앙은 무엇이고 그리스도의 부활은 무엇인가?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이 하느님의 뜻에 맞는 것임을 선포하는 것이 바로 예수 부활이다. 예수님은 억울한 죽음의 대표자시다.
세월호는 우리 가슴에 물망초가 되어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의 의식과 삶을 지켜볼 것이다.
산 위의 마을은 겨울이 길어 봄소식이 늦다. 단양 시내에는 벚꽃이 만개하였다 하는데 우리 마을에는 아직 양지 바른 곳에 제비꽃 민들레만 소곤대듯 한다. 봄은 왔건만 모두에게 봄은 아니다. 자연도 그러한데 사람의 심정마다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시인 동방규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했으리. 이른 봄 설렌 마음으로 집을 나선 햇청춘들의 수학여행길, 희망을 싣고 떠난 세월호는 13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제주에도 이르지 못하고 깊은 바다 속 유령에 포박되어버렸다. 오늘 3년을 맞으면서 악귀의 사슬을 끊고 남도 목포항에 회선하였다. 아직도 하선하지 못한 아홉 명도 확실하게 귀가하기를 기도한다.

■ 부활은 무엇이고 신앙은 무엇인가?

세월호가 침몰한 3주기에 주님 부활을 맞는다. 자식을 잃고, 또 시신도 찾지 못한 가족들에게 신앙은 무엇이고 그리스도의 부활은 무엇인가? 그들에게 무엇이 기쁜 소식(복음)이며 무엇을 구원이라 일러줄 것인가?

하느님의 착한 종 욥은 야훼의 저주를 받아 아들도 재산도 모두 잃고 천병까지 얻어 잿더미에 앉았다. 친구들이 찾아와 위로하면서 “모두 하느님의 뜻이 있는 것이니 순종하라”고 교의적 충고를 해주었다. 욥은 저항한다. “내가 자네들 처지라면 나도 그렇게 말했을 것이네. 그러나 나는 죄 지은 것이 없는데 왜 이런 저주를 받아야 하는가? 이건 내가 믿는 하느님이 아니다. 나는 반드시 하느님을 만나 따지고야 말 터다!”(욥기 21,7-34; 19,25-27)

훈계와 위로로 열심했던 욥의 친구 신학자들은 결국 하느님께 야단맞는다. “너희는 나의 종 욥처럼 솔직하지 못하였다. 너희들 태도에 분노를 참을 수 없다. 그러나 나의 종 욥이 너희를 위해 기도해 줄 것이다.”(욥기 42,7-8) 무죄한 고통에 대한 욥의 심정과 진실한 저항에 대해 하느님은 ‘솔직한 믿음’ 이라고 신뢰를 보내주신 것이다.

“빨리 자식의 시신을 찾아 유가족이라도 되는 게 소망이다!” 나는 70을 바라보는 평생 듣고 읽고 배우고 아는 말 가운데 이런 슬픈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멀쩡한 대낮에 자식이 탄 여객선이 뒤집혀 가라앉고 있는 현장을 두 눈으로 대하면서 펄쩍 뛰다 까무러치다 대통령 앞에 무릎 꿇고 애원하던 엄마, 통한의 유가족들에 대해 국가는 어떻게 했는가? 시신이라도 찾고 싶은 유가족들의 슬픔과 고통에 일부 몰염치한 인간들이 보인 태도와 저지른 악행도 아직 기억한다.

■ 우리는 기억한다. 인간의 악행을

경기가 어려운데 언제까지…, 교통사고 같은 것일 뿐인데, 받을 만큼 보상받지 않았느냐? 누가 제주도까지 수학여행 가라고 했느냐? 비행기로 가든지…. 심지어는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의 단식농성 앞에서 피자와 치킨을 시켜먹으며 빈정대는 잔악한 인면수심의 인간들, 진상규명을 방해하던 정치인·공직자, 천하에 용서받을 길 없는 그 비정한 역사를 우리는 기억한다. 그들은 교회에까지 들어와 세월호에 대해 강론하는 사제들에게 항의하기도 했다. 야훼의 말씀이다. “나는 너희들에 대해 분노를 참을 길 없다!”(욥기 42,7)

정부와 기관에 종사하던 이들은 멀쩡한 눈과 입을 가지고도 숨기고 은폐하며 거짓말을 물마시듯 해왔다. 문제의 세월호 육신은 목포신항에 말없이 눕혀 있다. 자신의 몸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지켜보았던 세월호. 영적인 귀가 있는 자 그의 외침을 들을 수 있으리.

“나는 죽음을 앞둔 노령의 몸으로 고달픈 항해에 늘 혹사당했지. 인간의 탐욕은 말릴 수가 없어. 그날 오전 나는 차오르는 바닷물 속에서 엄마아빠를 부르던 아이들의 절규를 들었네. 손가락에 피가 나도록 객창을 긁어대던 처참한 모습, 몸트림 하며 하나둘 꺼져가던 목숨을 지켜보았을 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네. 그렇지만 내겐 믿음이 있어. 모든 진실은 밝혀진다는 거.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으니까 억울한 죽음들은 부활할 거야. 예수님은 사흘을 견디고 부활하셨지만, 우린 3년을 견뎌 부활하고 마는 거야, 잊지 않고 기억해 줘서 고마워. 내 진실이 부활한다면 여러분 덕분이라오.”

■ 기억 없는 부활은 없다

부활은 무엇인가? 죽은 시신에 핏기가 돌고 회생하는 것이 부활이라면 장애인은 다시 장애인으로 태어나고 세상 죄악과 부정과 부패의 귀태(鬼胎)들이 그대로 부활하여 다시 괴롭힌다면 그런 하느님 나라를 구원이라 하겠는가? 아니다. 신앙으로 분명히 해둘 것은 예수님의 부활은 영적인 부활이다. 영적인 부활은 영적인 눈을 가진 이에게만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 복판에서 부활하지 못하시고 다만 제자들의 눈에만 발현하시고 사라지셨던 것이다.

영적인 부활이란 인간 선성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상의 존재 가운데 하느님의 것만이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 하느님의 진실과 정의, 하느님의 사랑과 평화, 하느님의 노동과 못 다하신 일들이 무효화되지 않고 부활하는 것이다.

악령의 것인 탐욕과 이기심, 패권주의 권력, 명예욕의 본성적 욕망들은 하느님의 뜻과 일을 방해하고자 진실을 감추고 정의를 무력화시킨다. 그래서 선인이 핍박과 고난을 받고 억울하게 죽임 당하고 불의가 세상을 덮고 위선과 기만이 진리 행세를 한다. 그것이 죄악이다. 예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여라” 하셨다. 가르침대로 따르자니 정말 고통스럽고 세상은 패배와 좌절, 억울한 죽음뿐이다. 그래도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이 하느님의 뜻에 맞는 것임을 선포하는 것이 바로 예수 부활이다. 예수님은 억울한 죽음의 대표자시다.

진도군청이 3월 28일 오전 진도 팽목항에서 마련한 문화제 중 미수습자들이 가족 품으로 돌아가길 기원하며 참가자들이 노란 풍선을 하늘로 날려 보내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하느님은 침묵하지 않으신다

탐욕과 죄악이 온 세상을 지배할지라도 자녀들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막을 수 없다.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에서 ‘왜 당신 때문에 이토록 고초를 겪는데도 침묵만 하시느냐?’는 항의에 하느님은 대답하셨다. “나는 한 번도 침묵하지 않았다. 너의 고통의 순간에 늘 함께 하고 있었다.” 하느님은 내 삶의 고난과 십자가에 눈길을 멈추시고 함께하시며 내 영혼을 정화하신다.

누군가가 피에타상의 성모님이 세월호를 안고 있는 사진으로 조합했는데 참 인상적이었다. 고통이란 하느님의 품에 안겨있음의 징표다. 억울한 죽음의 영혼들도 그 가족과 친구들도 모두 십자가의 아픈 고통의 무게만큼 정화의 단련을 받았으니 이제 주님의 부활과 함께 높이높이 솟아오를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생애와 삶에 온전한 ‘일체성’(一體性)으로 결합되고자 했고 ‘동시성’(同時性)으로 살았다. 의식의 일체성, 행위의 동시성은 제자의 정체성이고 본질이다. 그래서 스승의 죽음이 곧 자신들의 죽음이었고 스승의 부활이 곧 자신들의 부활이었다.

진실을 인양하고 구천을 맴도는 자식의 영혼을 달래려 팽목항과 진도체육관, 광화문과 국회, 동거차도와 이제 목포신항까지 천지를 떠돌던 생활도, 건강도 모두 해체되어버린 사람으로선 더 못할 세월은 너무나도 값진 시간이었기에 보상받게 될 것이다. 그들은 고난으로 인해서 이미 변화되었고 삶은 강해졌다.

■ 물망초: 세월호를 잊지 마세요

평생 그토록 자식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 본적 없었고 이웃의 고통이 내 아픔이 된 적 없고, 정치와 투표와 촛불이 그토록 위대한 혁명이 될 수 있음을 알지 못하고 살아왔으되 이제 의식은 나를 초월하여 이웃에 대한 관심으로, 또한 정치와 문화 사회가 하나가 된 공동체 세계관을 확보했다. 고난의 정화가 나를 공동체로 만들고 신앙을 사회화시켰다.

역사는 언제나 위대한 스승이다. 우리 가정마다 거실에는 십자고상이 걸려있어 그 가족들이 삶을 지켜보고 계신다. 성체는 기억의 성사이다. 세월호는 우리 가슴에 물망초가 되어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의 의식과 삶을 지켜볼 것이다. “나를 잊지 마세요!” 부활의 삶을 구하는 우리 누구에게나 4월 16일을 잊지 말아야 할 의무가 있다.

박기호 신부(서울대교구·산위의마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