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신자 국회의원에게 바란다

입력일 2016-04-19 수정일 2016-04-19 발행일 2016-04-24 제 2991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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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흥식 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대전교구장)

한 사람 한 사람 목소리에 귀기울여주길

여야를 넘어 모두에게 ‘더 이상 이래서는 안 된다’는 민심은 준엄했습니다. 그것은 천심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4월 13일은 우리에게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새로운 변화를 위한 축제일이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선거에 뛰어든 후보자는 물론, 많은 관심과 책임감으로 선거에 참여한 국민 모두에게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선거에 즈음한 담화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공동선과 정의와 평화에 기여하는 깨끗한 일꾼을 뽑아달라고 신자들에게 호소하면서 우리는 함께 기도해 왔습니다. 20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분들은 이런 열망과 기도의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2014년 8월 14일 청와대에서 공직자들에게 하신 당부 말씀을 인용해 드립니다. “친애하는 벗들이여, 여러분은 국가와 정치의 지도자로서 궁극적으로 우리 자녀들을 위하여 더 나은 세상, 더 평화로운 세상, 정의롭고 번영하는 세상을 건설하겠다는 목표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계화되는 세상 안에서 공동선과 진보와 발전을 단순히 경제적 개념으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사람을 중심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선진국처럼 한국도 중요한 사회 문제들이 있고 정치적 분열, 경제적 불평등, 자연환경의 책임 있는 관리에 대한 관심사들로 씨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열린 마음으로 소통과 대화와 협력을 증진시키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과 취약 계층 그리고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각별히 배려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많은 국회의원들은 당리당략에 휩쓸려 많은 시간과 노력을 소진해 온 것 같습니다. 가톨릭신자라고 해도 예외가 아닌 것처럼 보였습니다. 신자의원의 비율은 높았지만, 신자임을 당당히 밝히고 복음정신으로 일하는 분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생명과 평화를 소중히 여기고, 차별 없이 함께 잘 살아가는 복음의 정신이 당리당략보다 후순위로 밀려나곤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20대 국회의 형제자매 의원들께서는 정치인으로서 가톨릭신자임을 이용하지 마시고, 가톨릭신자로서 정치하는 봉사자가 되어 주어주십시오.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루카 5,38)는 말씀처럼, 여러분의 활동이 복음을 담는 성전이 되도록 노력해 주십시오.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겸손히 기도하는 신앙인이 되어 주십시오.

또한 우리 사회는 정치인들처럼 양분화 되어 이념이 다른 편을 서로 미워하고 있습니다. 이런 병폐가 교회 안으로까지 파고 들어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마저 위협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포로가 된 교회의 아픈 모습이기도 합니다. 가톨릭신자 의원들께서는 부디 갈등과 미움을 가져오는 씨앗이 되지 마시고, 열린 마음으로 서로 소통하고 대화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하여 남북의 불화와 남남 갈등을 치유하는 ‘대화의 정치인’이 되어 주시길 청합니다. 상대를 존중하고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 주십시오. 상대를 인정하는 것에서 좋은 일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형제자매 여러분을 선교사로 국회에 파견합니다. 특정 이념과 사상, 정파적 이익을 뛰어넘는 보편적인 가톨릭교회를 대표하는 신자로서 사회교리를 비롯한 교회의 가르침을 배우고 익히며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시고 특히, 가난한 사람들의 아픔을 함께하는 시대적 사명을 충실히 수행해 주시길 바랍니다. 국회의원이라는 직무보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은총의 이름을 자랑스러워하는 신앙인이 되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같은 신앙을 가진 이들 사이의 친교와 만남은 매우 중요합니다. 국회 안에 조직되어 있는 가톨릭 신자들의 모임 ‘다산회’와 ‘일치를 위한 정치 모임’에 적극 참여하시기를 권고합니다. 같은 목적을 지닌 사람들이 서로 연대하고 협력하면 훨씬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저희도 정치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정치인들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로 뒷받침하

는 여러분들의 ‘후원자’, ‘기도 부대’가 될 것을 약속드립니다.

사랑하는 국회의원 형제자매님들, 그 동안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한 분 한 분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늘 함께 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여러분들을 통하여 사랑 중의 사랑인 ‘사랑의 정치’가 실현되기를 기도합니다. 보람 있는 의정 활동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국회의원에 당선되셨음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고맙습니다.

■ 변경택(레오나르도·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장)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되길

우리나라 장애인들과 가족들은 생존에 대한 위협이 없는 삶을 보장 받기 위해 인간의 기본권적 권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생존권과 관련한 법제들이 실효성, 현실성 있게 제·개정돼야 합니다.

장애는 사회가 만든 차별과 장벽을 제거함으로써 사라집니다. 장애인들이 주체적인 사회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장애에 대한 기본 관점이 달라져야 합니다. 개인의 신체적, 정신적 손상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봐야 합니다. 장애에 대한 개념이 재정립되지 않으면 장애인에게 ‘인권’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특히 중증장애인 인권침해는 가장 기본적인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는 중대한 사안입니다. 빈곤의 사슬인 부양의무제와 낙인의 사슬인 장애인 등급제를 폐지해달라는 요구도 동일선상에서 이해돼야 합니다. 생존을 위협받는 인권은 진정한 인권이 아닙니다.

20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장애인권리보장법’이 제정되기를 바랍니다. 이를 통해 장애인들과 가족들에게 삶에 대한 희망을 안겨다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이상민 신부(주교회의 국내이주사목위원회 총무)

이주민 인권 존중하는 사회로

지난 국회에서는 가톨릭 이주사목단체뿐 아니라 시민인권단체들이 이주민 인권향상을 위해 노력했던 법안들이 외면당했습니다. 현장에서 활동가들과 함께 이주민들의 고충을 해결하려고 하지만 제도가 미비하다보니 비슷한 고충과 문제가 반복적으로 발생해 안타깝습니다. 20대 국회에서는 이주민들을 위한 각종 법안들이 제정될 수 있으리라 희망합니다. 외국인에 대한 차별적 대우와 외국인 혐오 발언을 금지하는 인종차별금지법이 제정돼 이주민들이 사람답게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인터넷 여론에 밀려 좌초된 미등록이주민 아동의 인권과 관련된 법안 마련이 시급합니다. 이는 아이들의 교육 등 우리 사회가 이주민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합니다.

20대 국회에서는 제도적 한계와 문제점이 노출된 고용허가제를 개선해 노동허가제로 바뀌길 바랍니다. 관련 법안을 재정비해 이주 노동자들이 내국인과 마찬가지로 자유롭게 새 직장에 취업할 수 있도록 하고, 열악한 임금 및 근로조건을 개선해 이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로 한걸음 더 나아가길 바랍니다.

■ 박은미(헬레나·주교회의 여성소위원회 총무·사회학 박사)

평화와 정의 구현에 노력을

여소야대 구도가 이뤄졌습니다. 여당의원만 배출하던 제가 사는 지역에서도 야당의원이 선출되는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막장 행태를 보인 정치권에 매서운 회초리를 든 것으로 보입니다. 총선을 앞두고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공동선과 평화, 정의의 가치를 구현하는 정당과 후보자를 선택하자”는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신자 당선자들은 사회교리를 의정활동에 충실히 반영하리라 믿습니다. 국회의원은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라, 행정부와 사법부를 견제하는 입법기관으로, 무엇보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법안 발의가 핵심 역할입니다.

제대로 된 원인 규명도 없이 세월호 참사 2주기가 다가왔고, 제주 강정과 밀양 등 곳곳에서 여전히 사회적 약자들이 양산되고 있습니다. 신자 당선자들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입법활동을 적극 펼치길 바랍니다. 교회는 사회교리를 원론적으로 발표하는데 그치지 않고 당선자들이 평화와 정의의 가치를 구현하는 정책을 입법하도록 권고하고, 교우들은 당선자들의 활동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내면 좋겠습니다.

■ 당현준(미카엘·명례방협동조합 이사장)

가난한 이들의 울부짖음 들어야

정치란 국민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중에도 사회적 약자인 가난한 사람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시대는 고통 받고 소외된 이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자신과 가족의 생계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노동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 직장과 결혼, 출산까지 포기해야 하는 청년들, 치솟는 전세값과 늘어나는 월세로 가난한 이들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적절한 주거환경에서 거주할 주거권 확립은 가정과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최소한의 권리입니다.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가난한 이들의 울부짖음을 들어야 합니다. 정치인이라면 그들의 아픔을 헤아리고 해결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내 백성이 겪는 고난을 똑똑히 보았고, 울부짖는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탈출기 3,7)

■ 박지웅(대건 안드레아·가톨릭대학교 3학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1948년 제헌국회가 개원한 지 이제 거의 70년이 돼갑니다. 지금 스무 번째 국회 탄생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20대 국회’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20대 청년으로서의 제 마음도 덩달아 설레기만 합니다. 하지만 모든 청년들이 그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청년 일자리 문제에서 시작해 학벌과 스펙 경쟁, 높은 등록금과 생활비 부담, 부모님 세대조차 경쟁자로 여겨야 하는 경제 구조 속에서 많은 청년들은 하루하루 절망을 보태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조부모님 세대와 우리 세대로 이어지는 70년 동안 나아진 것은 없이 언제나 어렵고 힘들다는 생각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절망과 낙담을 갖게 합니다.

신자 국회의원들께서는 우리나라의 정치를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과 확신을 청년들에게 꼭 심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청년 예수의 꿈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음을 이 세대의 청년들도 확실한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