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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주일 특집] 「생명의 복음」과 한국교회 생명운동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15-04-29 수정일 2015-04-29 발행일 2015-05-03 제 2942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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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첫 단계서부터 책임 있는 부모 역할 장려해야
가톨릭교회 ‘생명윤리 교과서
’현대 죽음의 문화 강도 높게 비판
신성불가침한 인간 생명 가치 강조
지속적인 생명 수호 활동 펼쳤지만 학술활동 비해 실천적 접근 노력 부족
상담기관 운영·전문가 양성 확대해야
4월 11일 청계광장~오간수교 구간에서 펼쳐진 ‘생명대행진 2015’에 참가한 한 어린이가 낙태 반대 피켓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보편교회의 가르침을 적극 확산하며, 인간생명 존중 의지를 확고히 펼쳐왔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현대 생명과학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역사상 유례없는 생명 파괴 현상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인간 배아줄기세포 연구, 인공피임과 시험관아기시술 등으로 인한 배아 파괴, 유전자 조작, 안락사 등 인간생명에 관한 새로운 위협들이 만연하는 현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회칙 「생명의 복음」을 통해 많은 생명들이 무자비하게 죽어가는 이러한 현실을 ‘죽음의 문화’라고 진단했다. 이어 ‘생명의 문화’를 세워나가는 것이 교회의 절대적인 소명임을 다시금 강조했다. 특히 교황은 회칙에서 진리이신 ‘하느님’을 되찾는 것이 인간생명 존중의 길이라고 당부했다.

한국교회는 올해로 스무 번째 생명의 날(제5회 생명주일)을 지낸다. 1995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회칙 「생명의 복음」(Evangelium Vitae)을 반포하자, 한국교회는 회칙 내용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노력의 하나로 ‘생명의 날’을 제정한 바 있다. 이 회칙은 한국교회가 범교구 차원의 생명운동 체계를 갖추고 확산하는 데에도 기폭제 역할을 했다.

「생명의 복음」 반포 20주년과 생명주일을 맞아, 신자뿐 아니라 인류 모두가 보편적으로 인식해야 할 「생명의 복음」과 한국교회 생명운동 여정 및 나아갈 방향을 되짚어본다.

■ 생명의 복음

“인간에 대한 하느님 사랑의 복음, 인간 존엄성의 복음, 생명의 복음, 이 셋은 하나이며 분리할 수 없는 복음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인간은 교회가 따라 걸어야 하는 일차적이고 근본적인 길을 대표합니다.” (「생명의 복음」 2항)

생명과학은 비교적 최근에 발달했다. 이로 인해 인류의 삶의 질은 크게 향상됐다. 하지만 급진적인 발전은 동시에 인간생명을 해치는 결과도 만들어냈다.

교회는 일차적으로 인간생명의 존엄성과 연관해 생명과학에 주의를 기울인다. 현대사회가 겪는 중대한 위기 가운데 하나가 인간생명에 대한 위협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개인주의, 실용주의 편리주의 등이 만연한 삶의 구조가 인간생명까지도 단순히 쾌락적이고 유용적인 차원에서만 가치 있는 것으로 취급하는 현실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이 회칙을 반포한 가장 큰 목적도 모든 인간생명의 가치와 존엄에 대한 복음, 유한한 시간 속에서 각각의 생명이 갖는 위대함과 고귀함에 대한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다. 즉 「생명의 복음」은 인간 개개인의 목적이자, 교회의 목적임을 강조한다.

회칙이 생겨난 배경에는 “생명이 약하고 자기방어능력이 없는 곳에서, 유례없이 증가하고 심각해지는 생명에 대한 위협들이 위험스러울 만큼 방대한 규모로 생겨나고 있는”(3항) 현실에 대한 교회의 염려가 자리한다.

회칙 「생명의 복음」은 가톨릭교회 생명윤리에 관한 일종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기존 교황 문헌들에 비해 매우 강도 높게 ‘죽음의 문화’를 비판하고, ‘생명의 문화’ 건설 사명을 강조한다.

「생명의 복음」 총 4개의 장에서는 새로운 교의를 선언하는 내용이 아니라 기존 교회 가르침을 재천명했다. 하지만 각각의 중요한 윤리적 주제들에 관해 보다 명확하고 발전된 내용을 제시하는 것이 특징이다. 정치적인 영역에서 필요한 윤리성에 관해서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서문에서는 인간생명의 신성함을 설명한다. 제1장에서는 오늘날 인간생명이 직면한 위기상황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생명윤리 관련 문제들에 관한 교회 입장을 제시한다. 현대세계의 반생명적 경향에 관해 비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책임 있는 가정 문화, 생명수호센터 설립, 질병치료를 위한 의학 발달, 사형제도 반대, 생태학에 대한 관심 등을 고무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어 2장에서는 생명윤리에 관한 그리스도교의 메시지, 「생명의 복음」에 대한 성서적, 신학적 배경을 밝혀준다. 3장에서는 직접적이고 고의적인 살인과 낙태, 안락사에 초점을 맞춰 실천사항 등을 밝힌다. 4장에서는 ‘생명의 문화’를 이루기 위한 책임과 역할, ‘생명의 문화’ 건설을 향한 전망과 실천사항 등을 해설한다.

아울러 교황은 인간생명의 초기 단계와 마지막 단계에 가해지는 위협에 관해서도 심각하게 우려를 표명한다. 무엇보다 이러한 위협이 궁극적으로는 교회 신앙의 핵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인간생명을 위협하는 환경이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차원에서 인간생명을 경시하는 ‘죄의 구조’, ‘약자에 대한 강자의 폭력’, ‘생명을 거스르는 음모’ 등에 관해서도 언급한다.

「생명의 복음」은 ‘위대한 인간 생명의 참된 가치’를 핵심적으로 밝혀준다. 그 가치는 바로 “인간의 책임감에 위임되어 있는 하느님의 선물이고,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거룩하고 신성불가침한 것”이라고 요약된다.

■ 한국교회 생명운동

한국교회는 보편교회의 가르침을 적극 확산하며, 인간생명 존중 의지를 확고히 펼쳐왔다.

구체적인 생명운동은 지난 1961년 9월 한국 주교단이 ‘인구 문제와 산아 제한’을 주제로 공동 교서를 내면서 시작됐다. 이후 바오로 6세 교황이 회칙 「인간생명」(Humanae Vitae)을 발표하면서 교회 내 생명윤리 교육 또한 확대되기 시작했다. 특히 1995년 「생명의 복음」 반포 직후에는 ‘생명의 날’이 제정됐다. 한국교회는 2011년부터는 이 ‘생명의 날’을 ‘생명주일’로 승격해 지내고 있다.

하지만 생명운동이 교회 안팎에서 체계화된 것은 2000년대 들어서였다.

주교회의는 2000년 신앙교리위원회 산하에 ‘생명윤리연구회’를 설립했고, 2008년에는 생명과학의 폐해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생명윤리위원회’로 위상을 승격시켰다. 2000년 청주교구를 중심으로 펼친 모자보건법 폐지 100만인 서명운동에는 124만 명이 동참했다. 2003년에는 주교회의가 ‘생명31운동본부’(현 생명운동본부)를 설립했다.

서울대교구가 보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생명수호 활동을 펼치기 위해 2005년 ‘생명위원회’를 설립하고 ‘생명의 신비상’을 제정한 것도 고무적이다. 서울대교구는 생명윤리 전문가 양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2007년에는 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도 설립했다.

이어 한국교회는 2010년 역사상 처음으로 전국 생명대회를 열고, 그 결실로 「한국 천주교 생명운동 지침」을 발간했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간 한국교회 생명운동은 학술 활동에 치우쳐 있었다는 지적의 목소리도 높다.

생명윤리 관련 이슈들을 이해하고 윤리적인 내용을 인식하는 과정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생명윤리 문제에 관해 보다 실천적인 접근을 이루는 노력, 우리 사회를 설득하고 대화하는 노력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 결과 정작 신자들조차 생명윤리가 각자의 신앙생활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생명 존중에 관한 가르침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생명운동은 어떠한 방법으로 펼치는지 잘 알지 못하는 실정과 맞닥뜨리게 됐다. 무엇보다 각 본당 사목현장에서 생명운동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돕는 지원은 부족했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생명윤리 전문가들과 생명운동가들은 생명운동에 관한 관심이 교회 내부에 명확하게 전달되고 확산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생명의 복음」을 통해 강조한 바와 같이 생명의 첫 단계에서 책임 있는 부모 역할을 장려하는 일은 일선 본당에서 가장 시급히 이뤄야 할 과제라고 역설한다.

전문가들은 자연적인 출산조절을 위한 센터, 혼인과 가정문제 상담 기관 운영, 생명 문제 전문가 양성 등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각 본당 사목현장에서 활동하는 ‘생명의 봉사자’ 양성과 교육 확산, 일상생활 안에서 누구나 실천하기 쉬운 생명 수호 관련 프로그램 계발과 배포도 생명수호를 위해 교회가 쉼 없이 실천해야 할 몫이다.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