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천주가사 하느님을 노래하다] (13·끝) 십자풀이가

강영애 교수(데레사·한양대)
입력일 2015-03-17 수정일 2015-03-17 발행일 2015-03-22 제 2936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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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등 교리내용 숫자 순서 맞춰 노래
각설이타령 ‘일자나한자~’ 부분 도입
단순 반복 순차진행 등 형식 독특
경상도서 애창, 유흥민요로도 각광
‘십자풀이가’의 저작 시기는 노랫말과 사회적인 분위기를 감안할 때 1920~30년대로 추정된다. 저작자는 의식 있는 사제나 신앙심이 두터운 신자로 추론된 바 있다.(출처 한국교회사연구소 40주년 화보집)
‘십자풀이가’는 음악부분에서 연구된 23종 40곡의 천주가사 중 20% 이상이 넘는 비중 있는 노래이다. 40곡은 40명의 가창자를 뜻하는 것으로, 대부분 천주가사 1종을 한 명의 가창자가 불렀지만, 앞서 살펴본 ‘천주공경가’, ‘삼세대의’, ‘사향가’는 각기 3명의 가창자가 존재하며, ‘십자풀이가’는 그보다 훨씬 많은 9명의 가창자가 존재한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에 의해 애창된 곡이 ‘십자풀이가’인 것이다.

‘십자풀이가’는 ‘천주공경가’가 수록된 「만천유고」의 ‘십계명가’와는 전혀 다른 곡이며, 천주가사집에도 수록되지 않은 채 구전전승 되었다. 많은 사람들에 의해 애창된 이 곡의 노랫말에는 ‘각설이타령(장타령)’에서 보이는 ‘일자나한자 들고봐’가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각설이타령’이란 각설이패가 부르던 타령으로 ‘장타령’이라고도 하는 노래이다. 19세기에 광대, 각설이패, 풍각쟁이, 초란이 같은 떠돌이 예인들에 의해 각 지역에서 불리기 시작하였다. 그 후 일제강점기와 혼탁한 현실이었던 20세기 초에 숫자풀이와 후렴부분이 추가되었고, ‘허절시고나 들어간다’는 도입부분도 추가되었다. 경상도에서 가장 많이 불렸으며, 유흥민요로 각광을 받던 노래였다.

‘십자풀이가’의 저작 시기는 노랫말과 사회적인 분위기를 토대로 1920~30년대이고, 저작자는 의식 있는 사제나 신앙심이 두터운 신자로 추론된 바 있다. 사설내용은 천당진복, 예수탄생, 치명복자 등 천주교 교리의 내용이 일부터 십까지의 숫자를 통해 ‘일자나한자 들고봐, 이자나한자 들고봐’로 전개되었다. 채록된 노랫말은 가창자별로 약간씩 차이가 나지만, 내용이 바뀌는 정도는 아니다.

음악적으로는 민요 중 경토리와 메나리토리의 특징이 반영되기도 했지만, 대부분 정악의 스타일로 이루어졌다. 솔 라 도 레 미의 5음음계 평조인 곡이 6곡으로 가장 많고, 계면조가 2곡, 메나리토리의 특징은 1곡이다. 선율적인 특징은 단순 반복, 순차진행, 여러 종지음의 출현으로, 민요인 ‘각설이타령’의 특징과는 차별화된다.

‘십자풀이가’는 최필선이 채보한 박순필, 신학순, 서선이, 최보배, 언양본당 신자들 가창의 ‘천주십계’ 5곡, 조선우가 채보한 김봉선·김월선 가창의 ‘천당가’ 1곡, 필자가 채보한 송분열, 임수빈, 이안나 가창의 3곡으로 총 9곡이다. 구약성경의 십계명을 노래한 것이 아니고, 예수탄생, 삼위일체, 예수수난 등의 교리내용을 일부터 십까지의 숫자에 따라 노래하였다. 그러므로 ‘천주십계’ 및 ‘천당가’를 모두 ‘십자풀이가’라 명명한 것이다. 일자부터 십자까지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일자나한자 들고봐 일구월심 원하던마음 천당진복이 제일이라

이자나한자 들고봐 이천년전 예수님이 만민영혼 구하려고 이세상에 내려셨네

삼자나한자 들고봐 삼위일체 교리배워 삼구전장에 나아가세

사자나한자 들고봐 사사성경 다배워서 성교사규를 지켜보세

오자나한자 들고봐 오주예수 수고수난 오상경을 볼때마다 통곡오단 묵상하네

육자나한자 들고봐 육신쾌락 다버리고 영혼영육 양육하세

칠자나한자 들고봐 칠십구위 치명복자 칠고칠락을 다닦아서 천당진복 누리셨네

팔자나한자 들고봐 팔십옛날 구노인이 조만신공을 열심해서 진복팔단 묵상하세

구자나한자 들고봐 구품천신 마귀되어 구령길을 방해하네

십자나한자 들고봐 십자가에 못박히신 오주예수 뒤를따라 천주십계를 지켜보세

가창자 박순필은 울산의 언양본당 소속이며, 김해본당 박유식(안드레아)신부의 친고모이다. 신학순은 경남 거제의 충현본당 소속이며 40대에 이르러 신자가 되었고, 구교신자들에게 이 노래를 배웠다고 한다. 서선이는 경남 밀양에서 천주가사를 배웠으며, 최보배는 대구 동촌본당 소속이다. 언양본당 신자들이 부른 곡까지 5곡은 최필선이 채보한 것이다. 조선우가 채보한 ‘천당가’는 김봉선·김월선 자매가 불렀는데, 그들은 경남 거제의 독실한 구교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에 천주가사를 배웠다고 한다.

가창자 송분열은 안동교구 쌍호공소의 6대 회장 자부이다. 임수빈은 충남 서천군에서 출생한 후 장항본당에서 영세를 받고, ‘십자풀이가’는 구교집안인 부인 김옥진(루실라)에게 배웠다고 한다. 이안나는 충남부여본당 소속이다. 이 3곡은 김정환 신부의 녹취 자료를 필자가 채보한 것이다.

‘십자풀이가’는 제작시기와 제작자를 알 수 없고, ‘각설이타령(장타령)’ 중 숫자풀이부분과 유사하다. 채집지역은 7명이 경상도, 2명이 충청도이다. 9명의 가창자 중 민요의 특징은 김봉선·김월선 자매에게서만 나타나며, 나머지 8명은 정악의 음조직으로 편안하게 부른다. ‘각설이타령(장타령)’이 대부분 흥과 한을 격렬하게 표현하는 것과는 대비되는 현상이다.

지금까지 살펴 본 천주가사는 민요와 창가, 그레고리오 성가의 영향을 받은 가창자들이 가사의 낭송방식과 정악의 특징을 융합해서 만들어낸 한국화 된 노래이다. 천주가사는 문학적인 특징 뿐 아니라 민속, 관습, 전통적인 특징을 공유하게 된 종교음악이다. 이는 한국의 전통과 서양의 종교가 융합되는 과정에서 생산된 천주가사만의 고유성으로 볼 수 있다. 전국에서 발굴된 천주가사가 민속악에서처럼 그 지역의 특징을 반영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정악의 스타일로 부르는 경향이 있다. 이는 개인에 의해 창작된 천주가사가 교리실천을 위하여 다수에게 불려 지거나 교우들의 신심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신앙선조들은 모든 일상을 하느님께 의탁하기 때문에 정악의 특징인 ‘낙이불류(樂而不流)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정신을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애독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선현들의 지혜와 민족성이 졸필로 인해 곡해되는 일없이 올바로 전달되었기를 희망하는 바입니다.

음악인류학 박사로, 한양대와 교회음악대학원 강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대전교구, 마산교구 가톨릭상장례봉사자교육 전문강사로도 활동중이다.

이번 호로 연재를 마칩니다. 수고해 주신 강영애 교수님과 독자들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강영애 교수(데레사·한양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