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현대의 봉헌생활 (2)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한국교회 축성생활 쇄신 50년

이지연 기자
입력일 2015-02-10 수정일 2015-02-10 발행일 2015-02-15 제 2932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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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회 정신 되새기고 ‘시대적 표징’ 읽는 노력 필요”
다양한 수도회 설립… 각 분야서 역동적 활동
종교적 관심 줄면서 입회·수련자 감소 위기
축성생활 정체성 정립·활성화 부족 지적도
수도회 간 협력 통해 침체 대응방안 마련을
한국교회는 지난 50년간 비약적인 양적 성장을 이뤘다. 수도회를 찾는 성소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다양한 사도직을 수행하는 수도회들이 설립되거나 한국으로 들어왔다. 이는 수도회의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활동으로 이어졌고, 수도자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한국 사회 안에서 그 저력을 보여줬다.

한국교회 내 수도회의 풍년은 계속될 것처럼 보였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경제 수준이 높아지고 정치적인 민주화가 실현된 1990년대 말 이후 종교에 대한 한국사회의 관심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냉담률은 점차 높아졌고 60세 이상 신자들은 계속 증가했지만 젊은 층은 신앙을 잃어갔다. 수도회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의장 김희중 대주교)가 지난해 발표한 「한국 천주교회 통계 2013」에 따르면, 10년 전과 비교해서 남성 수련자는 17% 감소했고 여성은 무려 48.9%나 줄어들었다.

이러한 수치는 한국교회에 다가올 그림자를 예견하게 한다. 입회자·수련자 수 감소세가 계속 이어질 경우 수도회의 존립 자체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 수도회들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침체기를 경험하고 있는 서구교회와 비슷한 양상에 직면하고 있다. 수도회 스스로가 철저한 자기쇄신과 변화를 추구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될 시점인 것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가르침

지난해 11월, 2016년 2월 2일까지 1년 조금 넘게 이어지는 ‘봉헌생활의 해’가 개막했다. 이에 앞서 교황청 축성생활회와 사도생활단성 장관 브라스 지 아비스 추기경은 “봉헌생활의 해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 1964)과 ‘수도생활의 쇄신에 관한 교령 「완전한 사랑」’(Perfectae Caritatis, 1965) 반포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시간이기도 하다”고 설명한 바 있다.

브라스 지 아비스 추기경이 언급한 두 문헌은 수도생활의 신학적인 토대와 쇄신 지침을 알려준다. 「인류의 빛」은 6장 ‘수도자’를 통해서 복음적 권고, 수도자 신분의 본질과 중요성, 교회의 권위와 수도자 신분, 수도자의 위대한 봉헌 등을 다룬다. 그 내용 중 ‘쇄신과 적응’이라는 공의회 정신을 축성생활의 영역에서 구현하기 위한 지침을 담고 있는 것이 「완전한 사랑」이다.

수도생활의 쇄신에 관한 교령 「완전한 사랑」은 쇄신과 적응의 원칙, 실제적인 기준, 권한 그리고 수도생활의 공통 요소, 영성생활의 우위성, 수도회의 형태, 복음삼덕, 공동생활, 수도자 양성 등의 내용들을 이야기한다. 특히 쇄신과 적응의 원칙과 기준 등은 공의회 이후 지금까지 50년 동안 수도회 쇄신의 원천이 됐다.

봉헌생활의 해를 맞아 교회 전문가들은 수도자들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을 되새기고 축성생활의 미래를 위한 시대적 표징을 읽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작년 12월 1일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서 거행된 봉헌생활의 해 대구관구 개막미사에 참례한 수도자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축성생활에 대한 한국 수도회의 쇄신 노력

한국교회에서 공의회 정신에 따른 수도생활의 쇄신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다. 당시 일본 상지대 신학교수였던 아돌포 니콜라스 신부(현 예수회 총장)를 초청, 서울대교구 설립 수도회인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성가소비녀회,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를 중심으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수도회들은 각자의 카리스마를 발견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애썼다.

이러한 노력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본당 사도직에서 철수하고 소외계층을 위한 사도직에 매진하는 수도회도 나타났고 고유의 카리스마를 성찰하는 수도회도 있었다. 국제화 흐름에 발맞춰 한국에서 설립된 몇몇 수도회는 세계의 수도회들과 연대해 외국에 분원을 설치하거나 외국 성소자들을 받아들이는 등 보편교회의 부름에 응답하고 있다.

한국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차원에서는 지난 2002년 한국 상황과 문화에 따라 수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양성장교육원’을 개설하고, 각 수도회 양성장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협력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또한 하느님의 역할을 드러내는 표현인 ‘축성생활’과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려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드러내는 ‘봉헌생활’이라는 용어의 신학적 의미를 점검하는 시간도 가졌다.

그러나 급격하게 성장한 한국의 수도회들은 영적인 쇄신을 강조하는 공의회의 가르침과는 달리 외적인 변화에 집중했다는 지적이다. 개별 수도회의 기득권과 이익을 위한 변화를 시도하고 입회자, 수련자를 늘리기 위해 다른 수도회와 경쟁하기도 했다. 사도직 활동에서도 수도회 창립 카리스마의 창의적인 해석에 의한 새로운 시도보다는 기존의 사도직의 확장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수도회 90%가 활동 수도회인 한국교회 안에서 공의회 후 서구에서 뚜렷이 드러난 새로운 형태의 축성생활이 등장하지 않는 것도 문제로 제기됐다.

최혜영 수녀(성심수녀회)는 “많은 수도회들이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1코린 9,22)라는 정신으로 교회가 요구하는 일에 응답하다 보니 사도직의 획일화 현상을 가져왔다”며 “앞으로 각 회의 창립 정신에 따라 사도직을 식별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춘심 수녀(성심의딸들수녀회)는 “개별 수도회가 열심히 노력한 것은 분명하지만 축성생활 자체의 정체성 정립과 활성화를 위한 숙고가 활발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며 “우리는 개인과 수도회 차원의 쇄신과 성장만이 아니라 하느님을 현대의 세상에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또 다른 형태의 축성생활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모색해야한다”고 설명했다.

유럽교회의 경우에는 수도회 장상들이 모여 쇄신과 적응 문제로 오랫동안 숙고와 연구를 이어왔다. 최근에는 은수자 공동체, 동정녀회, 에큐메니컬 공동체 등 새로운 형태의 축성생활이 활기를 띠고 있으며, 활동 수도회의 성소는 줄어드는 반면 봉쇄수도원을 포함한 축성생활 전체 성소는 오히려 어느 정도 증가했다. 교회 전문가들은 유럽교회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늦기 전에 한국 수도회 장상들 차원의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회 전문가들은 유럽의 수도회와 비교해 침체 속도가 몇 배나 빠른 한국의 상황에서 수도회들이 협력해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한국 수도회는 끝도 없는 침체기에 빠져들지도 모른다고 전망했다. 그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포한 ‘봉헌생활의 해’를 맞아서 공의회 정신을 되새기고, 축성생활의 미래를 위한 시대적 표징을 읽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류의 빛」과 「완전한 사랑」등에 드러난 공의회 가르침을 공부하고, 묵상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동시에 축성생활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학술대회가 절실하다고 제언했다.

국 수녀는 “위기를 새로운 출발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지금의 상황이 좌절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새로운 출발이 필요하고, 그것은 수도회 뿐 아니라 교회 구성원 전체가 관심을 기울이고 노력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한 수도자가 기도를 바치기 위해 성당에 입장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이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