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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강우일 주교 세계주교시노드 참가 후 가정사목 제언 (상)

강우일 주교(제주교구장·전 주교회의 의장)
입력일 2014-12-09 수정일 2014-12-09 발행일 2014-12-14 제 2923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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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내 이익만 생각하는 가치관, 가정마저 흔들어
세계주교시노드 제3차 임시총회(10월 5~19일)에 참가한 강우일 주교(제주교구장)의 글을 두 번에 걸쳐 게재한다. 제1편에선 ‘가정사목 현황’을 소개하고, 2편에선 ‘사목적 대처 방안’을 안내한다. 강우일 주교의 기고로 마련한 이번 특집은 세계주교시노드 임시총회 결과에 대한 신자들의 이해를 돕는데 한몫할 것으로 기대한다.

강 주교는 “제3차 세계주교대의원회의 보고서를 토대로 한국의 각 교구는 혼인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성찰을 해 나가야 할 것”이라며 “특히 한국의 가정이 마주해야 하는 많은 어려움과 도전들에 대한 사목적인 방향과 대안을 모색하길” 당부했다. 또한 “가정을 에워싸고 있는 여러 장애와 난관으로부터 하느님 백성을 해방하고 예수님의 연민과 자비의 시선으로 이들을 보듬을 수 있는 길을 찾아나가길” 희망했다.

도전받는 가정사목 현황

2014년 10월 5~19일 바티칸에서 열린 ‘가정사목과 복음화’를 위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3차 임시총회를 다녀오고 곧 새해를 맞이한다. 임시총회는 2015년 10월 4~25일에 있을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이하 ‘시노드’로 표기) 제14차 정기총회를 준비하는 성격의 회의였다. 한 가지 주제를 두고 두 차례의 시노드를 열 만큼 현재 세계 여러 대륙의 가정이 당면하고 있는 사목적 상황과 사회적 환경은 과거에 없던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교회가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그리고 세상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하느님 백성의 현실과 무관하게 유리되어 갈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프란치스코 교종께서 인식하시고 전례 없는 관심과 철저한 준비로 가정에 대한 이 시대의 도전을 새로운 복음화의 계기로 삼고자 임시총회를 소집하신 것이었다.

교종께서는 시노드 개막에서, “이번 시노드는 신학적 지식이나 말솜씨의 경연장이 아니라, 우리 가정들이 겪고 있는 사목적 문제점들을 주교들이 돌려서 말하지 말고 분명하게 용기를 내어 털어놓는 장이 되기를 바란다”고 주문하셨다.

각국 주교들은 개인 발표를 통하여 이 시대의 각 지역 가정과 사목자들이 당면하고 있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과 현황을 다양하게 전달하였다.

① 이 시대의 가정들이 받는 가장 큰 도전은 근본적으로 개인주의와 물질주의의 극대화로 인한 인간관계의 고리가 약해진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여 겪는 고독, 외로움이 이렇게 약해진 인간관계를 더욱 느슨하게 한다. 또한 많은 가정이 가난과 실직 등의 사회경제적 현실 속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허덕이며 살다가 보금자리에 금이 간다.

② 유럽이나 미주 지역 참석자들은 젊은이들이 결혼제도 자체에 대하여 매우 회의적으로 보고 있음을 증언하였다. 평생을 한 배우자와 살아간다는 것이 바람직하고 아름다운 일임을 인정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는 너무 힘든 일이며 본인은 그렇게 살아갈 자신이 없다고 고백하는 젊은이들이 태반이라는 것이다.

③ 상당수 젊은이들이 교회의 성사혼을 꼭 해야 할 필요성이나 의무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고 따라서 동거생활로 만족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실제로 많은 아기들이 성사혼, 민법상 혼인의 테두리 밖에서 태어나고 있는 현실임을 여러 나라에서 보고하였다. 이러한 사조가 확산된 것은 유럽과 북미 대륙의 개인주의적 사고와 물질주의적 가치관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결과라고 보았다.

④ 현대의 성에 대한 물질적, 향락적 해석과 포르노그래피의 확산은 오늘의 젊은이들이 성에 대하여 아무런 윤리적 인식을 갖지 않고, 오로지 탐닉하는 그릇된 풍조를 낳고, 이로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생명이 파괴되고 있다.

⑤ 아시아,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서는 상당수 젊은이들이 경제적, 사회적 요건이 갖추어지지 않아 민법상의 혼인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⑥ 세계 여러 곳에서 이주로 인하여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거나 이산가족이 되고 그 상태가 오래 지속됨으로써, 가정이 흔들리고 파괴되고 고통 받는 경우가 갈수록 늘어난다는 보고가 많았다. 또한 실업 사태가 오래 지속되어 가정이 악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⑦ 중동 지역에서는 이슬람과의 혼종혼인이 많이 발생하는데 가톨릭 신앙을 포기하도록 강요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유럽에서도 개신교와 가톨릭, 정교회와 가톨릭의 혼종혼인이 상당수에 이르며, 가톨릭교회가 엄격한 입장을 견지하는 데 비하여 다른 그리스도교는 관대한 입장이어서 대부분의 가톨릭 신자가 관대한 쪽으로 넘어간다고 했다.

⑧ 아프리카의 경우에는 일부다처의 문화 속에서 오래 살아온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이미 여러 명의 아내를 둔 사람이 세례를 받을 때, 한 사람만 선택하고 나머지는 포기하라는 교회의 권고가 아프리카의 문화적 현실을 도외시한 교조적, 독선적 율법주의로 비친다고 했다. 또한 많은 이들이 전통적으로 마을에서 해오던 전통 혼례를 치르는 것으로 만족하고, 혼인의 민법적인 절차를 밟아야 할 필요성이나 의무감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⑨ 많은 이들이 이혼하고 재혼하여 이른바 조당(혼인장애) 상태에 놓여있으나 그중 상당수는 재혼한 지 이미 여러 해가 지났고, 자녀도 여럿 출산하고 성장시켰지만 여전히 교회의 성사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상황을 매우 안타깝게 여기고 있고 미사에서 성체를 모시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⑩ 어떤 이들은 첫 번째 혼인에서 배우자에 의한 폭력이나 불의로 너무 큰 상처를 입거나 트라우마 속에 살았으나, 재혼한 이후에는 평화스럽게 성공적인 가정생활을 꾸미고 있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지적도 있었다.

⑪ 혼인무효 소송이 너무 까다롭고 오래 걸려서 포기 상태에 있는 재혼 부부가 적지 않다고 했다.

⑫ 부부 간의 불화나 갈등에 문제가 있어 사목자에게 도움을 청하면 이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사목자가 아주 적고, 가정 문제, 성 문제에 대한 사목자의 전문적 양성이 매우 부족하다고도 했다.

⑬ 교회 내에서 일반적으로 혼인과 가정에 대한 교리적 양성과 교육이 아주 미흡하다는 데 인식을 공유하였다. 지역에 따라 성직자들이 혼인 교리를 아주 소홀히 하고 있음이 지적되었다.

⑭ 교회법적인 절차는 밟았으나 혼인성사에 대한 충분한 준비와 양성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형식만 갖춘 혼인은 유효하다고 보기가 어렵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런 결혼에서조차 무조건 불가해소의 원칙만 강요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⑮ 유럽이나 미주 대륙에서는 6개월, 아시아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3개월의 혼인교리를 실시하고 있다. 이에 비하면 현재의 한국교회의 혼인교리는 거의 포기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6) 동성애적 성향을 지닌 이들이 교회 안에도 있으나 교회는 현재까지 이에 대한 뚜렷한 방침이나 사목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북미 대륙과 유럽 대륙에서는 이미 여러 정부가 동성애자들에게 법적 지위를 부여하고 동성애자들의 결합에도 결혼과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법률을 통과시키고 있으나 교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특히 이들이 가정을 이루며 아이를 입양하는 일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는 동성애자들도 이성애자들과 똑같은 하느님의 자녀들로서 동등한 인권을 누릴 자격이 있으며 교회 공동체가 이들을 부당하게 차별하거나 단죄해서는 안 됨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17) 북미 대륙과 유럽 대륙에서는 젠더 이데올로기(Gender Ideology)를 적극 주장하고 확산시키려는 움직임이 있으며, 이들은 국제적인 원조 기관 등을 통하여 아프리카 정부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미끼로 자신들의 이념의 법제화를 강요하고, 아프리카 정부들은 이에 동조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강우일 주교(제주교구장·전 주교회의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