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봉헌생활의 해 특별 좌담

정리·사진 이지연 기자
입력일 2014-11-25 수정일 2014-11-25 발행일 2014-11-30 제 2921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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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생활 쇄신, 교회에 새로운 바람 불어넣는 계기로
담장 헐고 세상으로… 수도자, 예언자적 소명 다해야
■ 일시 : 2014년 11월 21일

■ 장소 :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

■ 사회 : 박영호 취재1팀장

■ 좌담자 : 박현동 아빠스, 유덕현 신부, 차진숙 수녀, 이영준 신부

박현동 아빠스
유덕현 신부
차진숙 수녀
이영준 신부

교회는 올해 11월 30일부터 2016년 2월 2일까지 1년 남짓한 기간을 ‘봉헌생활의 해’로 지낸다. 이 은총의 시간 동안 우리는 교회의 심장이요 영성의 원천인 봉헌생활의 의미와 가치, 중요성을 되새기고 삶으로 구현하기를 다짐하게 된다. 뜻깊은 기념을 시작하면서, 가톨릭신문은 봉헌생활을 살아가는 분들과 함께, 왜 지금 봉헌생활의 해를 지내는지, 봉헌생활이 오늘날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어떻게 이 소중한 시간을 지내야 하는지에 대해 좌담회를 통해 성찰해본다.

왜 지금 ‘봉헌생활의 해’를 지내는지

박영호 취재1팀장(이하 사회) : 교황청은 ‘봉헌생활의 해’를 발표하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특히 수도생활의 쇄신에 관한 교령 「완전한 사랑」 반포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취지를 덧붙였습니다. 첫째, 공의회 이후 50년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억’하고, 둘째, 과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희망으로 미래를 끌어안는 것’, 셋째, 이러한 희망을 품고 ‘현재를 열정적으로 살자는 것’ 등입니다.

이러한 설명을 염두에 두고, 참석자 여러분들께서는 ‘봉헌생활의 해’를 기념하는 이유와 배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박현동 아빠스(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원장, 이하 박) : 수도회를 통해 교회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기 위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강력한 의지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럽에서 교회와 수도회들은 고령화됐고 이전과 비교해 활동력도 떨어졌습니다. 전반적으로 수도생활이 침체돼 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를 개선하기 위해 교황께서는 봉헌생활자들을 비롯해 교회 구성원의 마음가짐과 생활 전체를 바꿀 계기를 마련하신 것입니다. 올해와 내년으로 이어지는 교회헌장(1964)과 「완전한 사랑」(1965) 반포 50주년을 기념하면서 말이죠.

이영준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한국 남자수도회·사도생활단 장상협 사무국장, 이하 이) : 오늘날 세상은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로 인해 복음삼덕(청빈, 정결, 순명)과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개인주의와 물질만능주의 안에서 기쁨을 찾으려는 세상입니다. 현대인들은 세상의 흐름과 다른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는 삶을 불안해합니다. 하지만 수도자이신 교황께서는 복음삼덕을 살아가는 기쁨을 알고 계십니다. 이것이 이 시대의 비전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확실히 인지하고 계십니다.

차진숙 수녀(성가소비녀회 총장, 이하 차) : 지난해 5월 세계 여자수도회 장상 연합회 총회에 참여했습니다. 800여 명의 장상들이 참석했는데 대부분이 80대 고령이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게다가 현장에서 만난 수도회성 장관 주앙 브라스 지 아비스 추기경은 연평균 3000명에 달하는 수녀들의 퇴회를 승인하고, 봉헌생활에서 마주하는 문제에 대해 해결을 요청하는 수도자의 편지 700~800통을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를 통해 현대 수도회가 당면한 어려움과 위기를 파악했을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시점에 봉헌생활이 희망적이며 영적으로 풍요로운 삶이라는 것을 수도자는 물론 일반 신자들에게도 알려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유덕현 신부(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원장, 이하 유) : 심장을 쇄신하면 다른 부분의 쇄신도 따라오듯이, 교회의 심장이라 불리는 수도회를 통해 교회 쇄신을 이끌어내려는 뜻 같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원천으로 돌아가서 기본에 충실해야 세상으로부터 신뢰받는 교회가 된다고 강조합니다. 수도자들에게 요구하는 바도 바로 원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인들의 삶이 성경의 주석으로 여겨지듯이 봉헌생활자들의 삶은 가장 생생하고 효과적인 복음화의 도구입니다.

공의회와 봉헌생활의 쇄신 노력 50년

사회 : 네 분 모두 봉헌생활의 해의 의미를 다양한 측면에서 설명해주셨습니다. 그 중심에는 ‘쇄신’이라는 화두가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완전한 사랑」에서 드러난 쇄신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질 것 같습니다. 공의회는 ‘쇄신과 적응’을 모토로 보편교회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수도생활의 쇄신에 관한 교령‘은 공의회 정신에 따라 봉헌생활의 쇄신과 적응을 위한 지침을 제시했습니다. 구체적으로 공의회는 무엇을 쇄신하고, 적응하자는 것이었는지, 설명해주십시오. 또한 지난 50년 동안 공의회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한국교회는 어떤 노력을 해왔습니까?

: 수도생활의 쇄신에 관한 교령 2항은 가장 중요하고 원천적인 쇄신 기준을 다룹니다. 설립자의 정신과 설립 목적으로 돌아가야 하며, 인간 조건과 시대 상황 그리고 교회의 필요를 인식하고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현대의 요구에 대해 최선의 적응이 필요하며, 영적 쇄신을 늘 첫 자리에 놓아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국교회는 80년대 후반부터 쇄신을 위한 노력을 펼쳐왔습니다. 1987년 당시 서울대교구 수도회 담당이던 강우일 주교(현 제주교구장)께서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성가소비녀회,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 등 세 개의 국내 설립 수도회를 중심으로 세미나를 개최하고, 각 수도회의 카리스마를 찾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성가소비녀회는 지금까지도 이 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같은 해, ‘재창립’을 주제로 또 다른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원천으로 돌아가기 위한 우리 나름의 노력이었죠.

솔직히 서울대교구 설립 수도회이자 회원 500명 이상의 큰 수도회임에도 불구하고 세 수도회는 자기 카리스마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자리를 통해서 혼란을 겪으면서도 성가소비녀회는 카리스마를 설립하고, 설립자 정신을 다시 한 번 되짚어가며 시대에 발맞춰 가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도 많이 부족합니다. 혁신적인 개혁은 없었죠. 봉헌생활의 해는 이러한 수도회의 노력에 고삐를 당겨줍니다.

수도생활의 쇠퇴를 어떻게 잘 맞이할 것인지, 마지막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어떻게 충실히 봉헌생활을 해 나갈 것인지 등을 끊임없이 고민하지 않으면 외적인 성장만 이루고 끝날 수 있습니다.

: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가 주교회의 2014년 추계 정기총회를 앞두고 실시한 설문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이후 한국 천주교회 과제에 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도와 영성생활의 결핍이 수도회 개선점으로 지적됐습니다. 수도자들은 물론 우리를 바라보는 신자들이 이 같이 답변했다는 것은, 「완전한 사랑」에서 강조하는 영적 쇄신에 대한 수도회의 노력이 부족했던 부분을 반성하게 합니다.

: 요한 23세가 언급한 ‘아조르나멘토’(Aggiornamento: 개혁과 쇄신)라는 큰 흐름 안에는 수도생활의 쇄신도 포함돼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우선적인 쇄신은 영적인 부분이죠. 곧 원천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외적인 쇄신에 더 집중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봅니다. 게다가 외적 쇄신에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는 사이 고유의 정신을 잃어버리는 경우까지 생겼습니다.

사실 「완전한 사랑」을 보면 복장과 수도회 통폐합 등 외적 쇄신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기는 합니다. 특히 수도생활적 존재를 드러내지 못한 수도회는 수련자를 받지 말라고 강력하게 권고합니다. 지역 장상들이 분별해서 조치를 취하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렇지만 각 수도회는 이 권고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살아남으려고 숫자를 늘리고 개별 수도회의 기득권과 이익을 위한 변화를 시도했죠. 공의회가 원하는 쇄신 방향성에 전혀 맞지 않는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수도회가 세상을 복음화하는 속도보다 더 빨리 세속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렇듯 부정적인 상황에서 영적인 쇄신이 가능할지 우려가 됩니다.

: ‘쇄신’이라는 부분을 다루면서 꼭 짚어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과연 지역 교회의 주교님들은 수도회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을까요. 지금까지 수도생활 관련 문헌이 20개가 나왔고, 핵심적인 흐름은 ‘쇄신’입니다. 그럴 때마다 주교님들은 어떤 관심을 갖고 어떤 도움을 주셨나요? 1987년 강우일 주교님께서 카리스마 식별 세미나를 마련했지만 이후로는 없었습니다. 교회 장상들이 수도자들을 하나의 노동력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는 대목입니다.

수도자들은 80년대 많은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정부와 교구에서 그 역할을 대신하죠. 이 때, 우리는 우리가 설 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교황께서는 예언자적 삶이 바로 우리의 자리라고 제시하십니다. 봉헌생활의 해 로고에서도 복음, 예언, 희망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어떻게 희망을 보여줄 수 있고, 우리 삶이 희망의 표지가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야합니다. 그리고 이는 수도회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수도회가 신비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지역 교회 전체가 관심과 사랑으로 지지해준다면 그것이 한국교회의 성장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가톨릭신문은 봉헌생활의 해 개막을 앞두고 11월 21일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좌담회를 열고 봉헌생활의 의미와 은총의 시간을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에 대해 성찰했다.

오늘날 봉헌생활의 도전과 과제

사회 :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지난 50년을 성찰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공의회를 개최해야만 했던 50년 전과 쇄신의 필요성을 느끼는 지금이 어떤 의미에서는 서로 비슷한 상황이 아닌가 합니다. 외신에서는 제3차 바티칸 공의회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언급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 한국교회의 봉헌생활자들에게 당면한 도전과 과제는 무엇이고, 또 어떻게 대응해 나갈 수 있을지도 모색해봐야 할 것입니다.

: 50년 전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사실 그때도 ‘원천’을 이야기 했어요. 그런데 원래 취지와 다르게 폐쇄적으로 쇄신이 진행된 것이죠. 사실 수도자들은 복음의 기쁨에서 언급한대로 변두리로 물러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수도자들이 변두리로 가는 과감한 선택을 했을 때, 쇄신도 개방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변두리를 선택하지 않을 경우, 수도회는 반드시 신자들에게 질타를 받을 것입니다.

: 실제로 수도회는 자기 안에 갇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세상을 향해 나가지 않고 예언자로서의 소명에 충실하지 못했습니다. 수도회가 ‘내 것’을 챙기다 보니 내 것을 미리 챙겨놓고 남은 것을 이웃과 나눴습니다. 내 것마저도 나눌 줄 알아야 하는데 말이죠. 교황께서는 이러한 수도회를 향해 외치십니다. 담장을 헐고 세상으로 나아가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봉헌생활의 해가 봉헌생활자의 희년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희망을 보여줄 수 있는 이 시기에 담장을 허물고 각자의 카리스마를 유지하되 공동의 사도직을 찾아야 합니다. 여기에 당연히 평신도들이 함께 해야 하고요.

: 모두 그러하겠지만, 수도회들도 안주해서는 안됩니다. 제가 성소 담당을 하던 시절에, 청년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서 각 교구에서 마련한 모든 청년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무작정 찾아갔어요. 그러면서 젊은이들을 만나고 수도생활을 알리게 됐습니다. 봉헌생활의 해는 이런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세상 안으로 뛰어가라는 의미가 아닌가 합니다. 우리의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기존의 자리에 어떻게 진입할지에 대한 공격적인 고민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 또한 봉헌생활자들이 이제는 교회 안에서 목소리를 내야합니다. 봉헌생활자들은 교회 장상들의 말을 잘 듣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바른 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쇄신의 핵심은 결국 제도의 쇄신이라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교회와 수도회의 제도를 단순화해야만 시대에 맞는 사도직에 즉시 뛰어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시대의 예언자로서 현존할 수 있기 위해 영을 살리고 영적 쇄신을 이루는 것이 봉헌생활의 해를 살아가는 핵심적인 목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내적 쇄신의 외적 표현

사회 : 봉헌생활의 해를 보내면서 남녀장상협이 집중하는 부분은 봉헌생활에 대한 홍보와 내적쇄신 문제 등 두 가지라고 알고 있습니다. 특별히 내적 쇄신 문제에 관해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내적 쇄신이라는 말을 계속 하고, 듣고 있지만 정작 실체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또한 내적인 쇄신이 외적인 부분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생각도 합니다. 예를 들면, 밀양과 강정 등 사회 문제가 대두되는 현장에는 수도자들이 꼭 계시는데, 수도자들의 사회적 참여 역시 내적이고 영성적인 동기를 지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사회적 참여는 시대적 요청입니다. 활동수도회는 시대의 아픔과 고통을 겪는 현장에서 이웃과 함께함으로써 예언자적 소명을 실천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요즘에 와서만 두드러지는 것은 아니죠. 80년대에도 수도자들은 거리로 나섰습니다. 90년 대 초반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밤샘 기도회를 했을 때 굉장히 많은 신자들이 참여했습니다. 단지 표현이 달라졌을 뿐 시대에 맞게 활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제는 교회가 아쉬울 것이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때로는 문제입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이 내 문제로 다가오지 않는 것입니다. 80년대에는 시대적인 예언자였던 교회가 지금은 왜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할까요? 이것은 자본주의의 영향이죠. 내 기득권이 잣대가 돼 모든 것을 판단하기 때문에 그에 반하는 현실은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시점에 우리는 신학적인 성찰과 해석을 해야 합니다. 정확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한국 상황에 맞게 어떻게 표현해 낼지 고민해야합니다.

: 낙태, 혼전 성관계 등이 공공연한 비밀로 여겨지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을 해서는 안된다고 외치는 천주교에 대해 청년들은 “왜?”라는 질문을 많이 던집니다. 그러나 이 외침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입니다. 청년들도 처음에는 반감을 갖다가 그 순간이 다가왔을 때 내면으로부터 울림이 있었다고 합니다. 수도자들의 역할은 이처럼 자신의 이익을 잣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정의와 진리에 대해 외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모든 기준이 기득권을 향하고 있는 이 때, 진보나 보수의 세속적 잣대를 버리고 하느님의 정의, 진리를 외칠 수 있는 것은 우리밖에 없습니다.

‘봉헌생활의 해’는 하느님 백성 모두의 것

사회 : 넓게 볼 때, ‘봉헌생활의 해’는 수도자들만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다가올 한 해를 하느님 백성 전체가 어떤 자세로 보내야 할까요?

: 교황께서 봉헌생활의 해를 선포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주교님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지역교회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뜻이 잘 실현되도록 이끄는 것은 주교님들의 몫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교님들께서 봉헌생활의 해에 더 큰 관심을 보여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찌보면, 주교님들께서는 수도회 장상들이 관련 협조를 요청하면 도움을 주자는 정도로 여기고, 지역교회, 즉 교구 안에서 봉헌생활의 해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천하겠다는 생각은 부족해 보입니다.

또한 우리 내부적으로도 깊이 성찰하고 철저한 준비로 이번 한 해를 보내야 합니다. 특히 봉헌생활에 대한 신학적인 성찰이 없다면 봉헌생활의 해가 행사 위주의 이벤트성으로 끝날 수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끝난 이후 있었던 1985년 세계주교시노드의 키워드는 ‘친교’였습니다. 그러나 수도회 내부에 친교가 없다면 밖에서의 연대는 피상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공동체 생활이 얼마나 친교로 넘치는가를 생각해 봐야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 저 역시 우리 모습을 자성하는 시간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에 동감합니다. 수도회가 각 교구와는 원활하게 연대하지만 정작 수도회 안에서 친교가 부족할 뿐 아니라 수도회 간의 나눔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가족 수도회임에도 같은 범주 안에서 사도직을 행하고, 똑같이 경쟁합니다. 남장협 총회나 상임위원회 활동을 하면서도 보면, 함께 있을 때는 좋은 의견을 나누다가도 막상 실행하려면 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기주의에 물든 수도회의 현실이 아닌가 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수도회 외부에 무엇인가를 요구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먼저 우리의 모습을 자성하고 난 후 교구든 사회든 연대를 하면 좋겠습니다.

: 봉헌생활의 해는 봉헌생활자들이 기획하고, 만들어서 무엇인가를 제시하는 해가 아닙니다. 보편교회에서 시작되는 만큼 지역교회가 봉헌생활자들을 초대하고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역교회 전체가 같이 봉헌생활에 대해 성찰할 때, 이번 한 해 동안 맺은 열매가 복음화의 자양분이 될 수 있습니다.

: 교회헌장 6장과 수도생활 관련 문헌들에도 ‘봉헌생활’의 다양한 형태에 대해 나옵니다. 수도회들이 쇠퇴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재속회와 같은 다양한 모습의 수도생활이 오히려 활발하게 이뤄집니다. 봉헌생활의 해 준비도 기존 수도회 중심으로 했을 때는 놓치는 부분이 분명 생기게 됩니다. 봉헌생활의 일부분만 쇄신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50년 동안 다양한 형태로 꽃피고 있는 성령의 활동을 생각하지 못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을 신자들에게 잘 소개할 수 있다면 봉헌생활의 풍요로움을 널리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본당에서 지역의 수도회를 초대해 함께 기도하고 생활하며, 봉헌생활이 무엇인지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주면 좋겠습니다. 또한 수도회 소속 평신도 단체와도 연대해서 수도회의 정신을 알려야 합니다. 비판적으로 말하자면 평신도 단체가 대부분 후원회 성격이 짙죠. 그들을 봉헌생활로 초대해야 합니다. 가정도 봉헌생활의 축소판이기 때문이죠. 이렇듯 구체적인 움직임이 있고, 지역교회와 수도회가 활발히 친교와 소통을 이룬다면 이번 봉헌생활의 해의 취지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리·사진 이지연 기자 (mary@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