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현대 그리스도교 미술 산책] (4) 퓌비 드 샤반느의 ‘방탕한 아들’

조수정 교수(대구가톨릭대학교)
입력일 2014-02-25 수정일 2014-02-25 발행일 2014-03-02 제 2884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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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어리석었나’ … 하느님 떠난 절박함 표현

건조한 색채 단순 구도로 소외된 처지 생생히 표현
이야기 전개 대신 찰나에 느끼는 시각적 언어 추구
마티스 피카소 등에 영향 … 현대 미술 탄생에 공헌
퓌비 드 샤반느.
19세기 후반기에 활동한 피에르 퓌비 드 샤반느(Pierre Puvis de Chavannes, 1824~1898)는 당시 프랑스를 대표하는 뛰어난 실력의 벽화작가로서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았다. 파리의 소르본느 대학 도서관과 팡테옹(Panth&eacuteon), 마르세이유의 롱샹(Longchamp) 궁전, 프랑스 전역의 시청과 공공건물, 그리고 미국의 보스턴 도서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벽화를 남겼다. 리옹에서 태어난 그는 파리에서 수사학과 철학 공부를 하였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이때 이탈리아의 고전적인 프레스코화에 깊음 감명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파리로 돌아와 셰페르(Henri Scheffer)를 비롯하여 낭만주의의 거장인 들라크루아(Eugene Delacroix)와 아카데믹한 화풍의 토마 쿠튀르(Thomas Couture)에게 그림을 배웠지만, 그는 낭만주의도 관학파도 아닌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서서히 개척해 나갔다.

방탕한 아들(Le fils prodigue, 1879),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그의 작품은 어떤 특정한 양식의 카테고리에 묶을 수 없는 복합적인 성격을 띠었고, 사실주의나 인상주의 등 어떤 주류에도 애써 편입하려하지 않는 이런 혁신적인 면모는 오히려 그가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는 요인이기도 하였다. 그는 당대의 화가들과는 달리 근대적인 사회를 작품에 담지 않았다. 그를 사로잡은 주제는 고대 신화와 전설, 그리고 그리스도교였고, 이상적 세계와 인간을 우의적(寓意的)으로 표현하는 작품을 제작하였다. 고대 이탈리아 프레스코화의 영향을 받아 율동적이면서도 단순한 형태와 담백한 색채로 그려진 그의 작품은 고풍스러우면서도 세련된 멋을 풍긴다.

방탕한 아들, 취리히 에밀 G. 뷔엘레 컬렉션.
현재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는 <방탕한 아들(Le fils prodigue, 1879)>은 성경이 전하는 ‘되찾은 아들의 비유(루카 15,11-32)’를 그린 작품이다. 렘브란트를 비롯하여 이미 많은 작가들이 이 주제를 다루었고, 속을 썩이다 돌아온 철부지 아들을 하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얼싸안는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하느님의 용서와 자애로움이 부각되었다. 하지만 퓌비 드 샤반느의 작품은 좀 다르다. 화면은 단도직입적으로 한 남성에게 초점이 맞춰진 특이한 구도인데, 주변적인 모든 이야기는 생략되었고, 중심인물 한 명 만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바닥에 철퍼덕 앉아버린 그의 자세는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에 조각된 헤라클라스를 떠올리게 하지만, 무언가 깊은 마음의 동요에 시달리고 있는 느낌을 준다. 속옷만을 입은 그는 두 손을 심장 쪽에 모은 채 어두운 표정의 얼굴을 아래로 수그리고 있는데, 그를 둘러싼 적막한 공간에는 아무런 인기척도 없다. 안락함, 평온함, 그리고 따스함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절망의 들판에는 무심한 돼지들만 먹이를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다. 작품에 사용된 무미건조한 색채와 단순한 구도는 인간으로부터, 그리고 하느님으로부터 소외된 인간의 처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준다. 퓌비 드 샤반느는 이야기의 전개를 그리는 대신, 작품을 보는 순간 느낄 수 있는 시각적 언어를 추구하였다. <방탕한 아들>이라는 작품의 화면에는 한 남자가 덩그렇게 그려있을 뿐이지만, 이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을 떠난 고통이 어떠한 것인지 알아들을 수 있게 된다. 어느 순간 숨이 막힐 듯이 밀려오는 깨달음과 후회, ‘이토록 어리석었나’라는 자책이 어떤 글보다도 더 효과적으로 표현된 작품이라고 하겠다. 취리히의 에밀 G. 뷔엘레 컬렉션(Foundation E. G. B&uumlhrle Colletion, Zurich)에는, 구도는 약간 다르지만 같은 주제를 그린 그림이 한 점 더 소장되어 있다.

평면적이고 단순한 구도와 독특한 색채, 그리고 목가적인 아름다움과 화면에 가득한 시적 정취는 고갱, 쇠라, 로트렉, 마티스 그리고 피카소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현대 미술의 탄생에 큰 공헌을 했다. 고티에(Th&eacuteophile Gautier)나 보들레르(Charles-Pierre Baudelaire)같은 시인들도 퓌비 드 샤반느의 작품에 찬사를 보냈는데, 관념적이고 내적인 세계를 표현하려 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보이는 세계보다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우선적인 관심을 두었다는 점에서, 그를 상징주의의 선구자로 부르기도 하였다.

조수정 교수는 프랑스 파리1대학에서 미술사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수정 교수(대구가톨릭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