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신문-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공동기획 - 신앙의 해, 신앙의 재발견] (38) 내 눈 속의 들보

서상덕 기자,박지순 기자
입력일 2013-12-03 수정일 2013-12-03 발행일 2013-12-08 제 2873호 8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교회 구조적 문제로 상처받고 등 돌린 신자들
냉담신자 회두 위해 안간힘 쓰고 있지만
한 번 떠난 이들 마음 돌리기는 어려워
권위주의적 자세와 성찰 부족이 문제 뿌리
서로 존중·격려하는 공동체 구조 만들어야
한국교회에 경고등이 켜진 지 오래임에도 교회를 떠나는 신자 행렬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교회 안에 청년이 보이지 않는다’는 소리가 일상화되었고, 통계에 따르면 청년층(20~35세) 미사 참례율은 7%에 불과한 실정이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루카 6, 41)

주님의 계명과 말씀을 세상에 전하고 선포하는 교회는 스스로 자신이 선포하는 복음을 살아가야 한다. 그럴 때에만 자신이 말하는 진리가 사람들에게 올바르게 전해질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다른 이의 사소한 잘못들은 큰 소리로 책망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큰 흠들에는 눈을 감으려는 마음을 꾸짖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면 오늘의 교회는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 예외일 수 있을까?

무엇이 교회를 위한 길인가

수도권 교구 한 본당에서 레지오 마리애 단원을 거쳐 오랫동안 단장으로 활동해온 A씨는 요즘 무척이나 혼란스럽다. 자칭타칭 ‘열성신자’로 교회 활동을 하느님이 주시는 훈장으로 여겨온 그는 단원이 줄어 해체 직전에 있던 쁘레시디움을 맡아 단원수를 7~8명으로 늘릴 만큼 혼신의 힘을 쏟았다. 세상 속에서의 교회의 역할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단원들과의 친목은 물론 외부 봉사나 활동에도 나름 적잖은 공을 들였다.

A단장은 특히 교회 내 신심단체 중 유일하게 ‘교본’을 갖고 있는 레지오에 대한 자부심과 남다른 십자가를 강조해왔다. 레지오 활동과 관련해 조금이라도 의문이 생기면 교본을 찾아 철저히 따랐고, 그래도 의구심이 남으면 상급 평의회에 문의해 답변을 받아서라도 활동방침을 정할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제 주머니 털어가며 활동에 열심인 A단장이 어느 때부터 맞닥뜨리게 된 어려움 가운데 하나는 ‘돈’과 관련된 것이었다. 자신이 금과옥조처럼 여겨온 레지오 마리애 교본에는 레지오 활동과 관련해 어떠한 금전도 주고받을 수 없다고 규정돼 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지오도 교회 구성원이다 보니 금전 문제를 놓고 본당 내 타 단체나 사목회와도 종종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 번은 본당 사제 축일을 앞두고 본당 사목회에서 일방적으로 물적 예물로 ‘레지오 단원 1인당 000원’이라는 공지를 한 일이 있었다.

A단장은 레지오 활동 원칙에 어긋날 소지가 있다는 생각에다, 형편이 어려운 단원들에 대한 고려 없이 일률적으로 1인당 얼마씩을 공개적으로 갹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고심 끝에 본당 카페 게시판에 의견을 구하는 글을 올렸다. 그저 다른 교우들의 생각을 들어보자는 순수한 생각에서였다.

이튿날 카페 게시판을 다시 찾은 A단장은 자기 눈을 의심했다. 자신의 글이 오간 데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꾸리아 단장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본당 내에서 불미스런 행동으로 비춰져서는 안되고, 오래전부터 관례인데 사목회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쯤은 알 텐데….”

못마땅해하는 표정을 짓던 꾸리아 단장은 A단장의 해명을 듣기도 전에 간접적으로 단장직을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A단장은 자신의 뜻은 문제를 만들자는 게 아니라 본당 신자들의 의견을 들어보자는 것이었을 뿐이라고 밝혔지만 결국은 동고동락했던 단원들에게 제대로 인사도 못 한 채 단장직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제가 사랑했고 열과 성을 바쳐 온 교회가, 2000년을 넘게 살아온 교회가 이런 모습일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A단장은 근근이 주일미사만 드릴 뿐 본당 내에서 어떠한 활동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무슨 큰 죄를 지은 죄인처럼 사람들의 눈을 피하게 됐다. 그토록 기쁨과 보람을 안겨주던 미사는 무거운 십자가가 되고 말았다.

“뭐가 문제였던 걸까요?” A단장의 물음에 깊은 한숨이 묻어났다.

누가 용서를 청해야 할까

B씨의 고백이 이어졌다.

“도저히…, 털어놓을 용기를 낼 수 없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느님을 부를 수조차 없어…, 감히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죽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교회 내 기관에서 일해 온 지 20년이 가까워져 오는 B씨, 그를 그토록 괴롭혔던 것은 같이 일하던 동료 C씨의 일탈이었다. 직무상 팀워크를 필요로 하고 외부인과의 접촉도 많은 부서에 같이 근무하던 B와 C씨는 술자리를 할 기회도 잦았다. 빤한 급여에도 불구하고 씀씀이가 ‘시원해’ 부서원들은 물론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던 C씨가 공금에 손을 대고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B씨는 고민에 빠졌다. 어쩌면 C씨와 자주 시간을 함께 보냈던 자신도 그의 일탈에 책임이 없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미 사태는 C씨 혼자서 수습하기 힘든 지경에 처해있었다.

“어쩔 생각이야?”

무슨 도움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에 용기를 냈지만, 오히려 사태는 꼬이기 시작했다. 직장 안에서 B씨를 둘러싼 나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확인할 길 없는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B씨를 괴롭혔다. 소문도 소문이지만, 그 소문 대부분이 C씨의 입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에 분노까지 일었다.

“용기를 내기까지 정말 많은 갈등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용기를 내지 않으면 더 많은 이들이 더 큰 상처를 입을 것이라는 말에….”

결국 C씨가 조용히 그만두는 것으로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이미 B씨를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는 너무나 큰 상처를 남긴 뒤였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상사는 물론 주위로부터 늘 따가운 시선이 따라다녔다. ‘배신자’라는 주홍글씨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그를 우울증이라는 구렁으로 밀어 넣었다. 남몰래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B씨는 요즘 부쩍 생각이 많아졌다.

“교회 안에서, 교회를 위한다는 생각에…, 자부심을 가지고 정말 기쁘게 일해왔는데…. 갈수록 견디기가 힘듭니다. 그만둬야 할까요.”

B씨와 같은 일을 겪은 이들을 격려하기는커녕 품어 안지 못하는 교회 내 조직이나 기관은 의외로 많다.

“저는 누구를 위해 기도해야 할까요. 저 자신, 아니면 교회….”

내 눈 속의 들보 왜 보지 못하는가

이미 한국교회에 경고등이 켜진 지 오래임에도 교회를 떠나는 신자 행렬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청년들의 경우는 더 심각해서 이제 ‘교회 안에 청년이 보이지 않는다’는 소리가 일상화되다시피 했다. 통계에 따르면 청년층(20~35세) 미사 참례율은 7%에 불과한 실정이다. 교구와 본당마다 냉담 중인 신자들을 다시 교회 공동체 품으로 이끌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한 번 교회를 떠난 이들의 마음을 돌리기란 그리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신자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에 대해 많은 분석이 있어 왔지만, ‘사목자와 다른 신자들에 대한 불만’이 늘 앞자리를 차지해왔다. 신앙생활을 하며 쉽게 만날 수 있는 공동체 구성원에게 책임을 돌리고, 또 그럴 수 있는 요인이 교회 구조 안에 적지 않다는 말이다. 이웃종교의 통계이지만 개신교단 목회사학연구소가 지난 4월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신자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 중 목회자(24.3%) 또는 교인(19.1%)에 대한 불만이 도합 43.4%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통계는 가톨릭교회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교회 내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실에 대해 ‘내 눈 속의 들보’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성찰의 부족에서 문제의 뿌리를 찾는다.

두물머리복음화연구소 황종렬(레오·대구가톨릭대학교 겸임교수) 소장은 “교회의 ‘들보’ 다시 말해 교회의 구조적 문제로 인해 신자들이 상처받고 교회를 떠나는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이유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교회와 신자들의 모습이 있고 이러한 모습이 신자들에게 받아들여지면서 일반화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황 소장은 또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문제로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멀어져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랑하는 가족 안에서도 원치 않는 상처가 생기고, 때로는 상처를 주는 줄도 모르게 상처를 줄 수도 있는데 그러면서도 이를 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어쩌면 이것이 오늘날 우리 교회의 모습일 수 있다”면서 “교회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되새기며 사제와 평신도, 예비신자가 서로 격려하는 문화를 만들어나가야 구조적 문제가 치유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심상태 몬시뇰(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장)은 “오늘날 세상 속에서 교회는 힘과 영향력을 지닌 막강한 권력 집단이 됐으며, 그 권력의 중심에 성직자들이 있다”면서 “많은 신자들이 교회를 떠나는 근본적인 이유는 성직자를 비롯해 교회 안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이들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심 몬시뇰은 이어 “사목자들의 성당 안 모습과 성당 밖 모습이 다르다는 지적이 있다”면서 “겸허한 성찰과 통렬한 반성을 통해 교회 내 모든 구성원들이 서로 존중하는 구조를 만들어나갈 때 교회 내 고질적인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심 몬시뇰은 특히 “교회 구성원들이 그리스도의 지체로 서로의 역할과 활동에 가치를 두고, 끊임없이 소통하는 공동체상을 만들어나갈 때 교회가 맞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서상덕 기자,박지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