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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해 · 창간 86주년 기획 - 현대 가톨릭 신학의 흐름] (32) 죽음과 종말에 관한 묵상 ④ :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향하여

박준양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의신학 교수)
입력일 2013-11-19 수정일 2013-11-19 발행일 2013-11-24 제 2871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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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넘어서는 희망·사랑은 하느님으로부터…
오직 사랑만이 죽음 극복할 수 있는 위대한 힘 지녀
“인간의 사랑도 생명에로 인도할 수 있는 것이라면
더 큰 주님 사랑은 얼마나 영원한 생명을 선사할까”
오늘 우리는 한해의 전례력을 마무리 짓는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맞이하여, 우리의 종말론적 희망에 대하여 묵상하게 된다.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그리스도교 부활신앙과 종말신앙의 핵심은, 하느님께서 그 크신 자비와 위대한 사랑을 통해 우리를 영원한 생명에로 초대하신다는 점에 있다. 다음의 두 가지 실화 이야기는 이처럼 죽음을 넘어서는 희망과 사랑에 대하여 생생히 증언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오스트리아 출신의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1905~1997) 박사는 제2차 세계대전 중 가족과 함께 나치에 의해 체포되어 아우슈비츠와 다하우 등지의 강제수용소에서 3년의 고통스러운 시간(1942~1945)을 보내야만 했다. 그런데 그는 이 기간 동안의 극한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로고테라피’(Logotherapy)라는 정신치료 요법을 계발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Man’s Search for Meaning)를 통해, 극한 상황에서도 사람을 살게 하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생히 증언한다.

프랭클 박사가 아우슈비츠에 처음 끌려갔을 때, 그와 함께 기차로 수송되어온 사람들이 나치 친위대의 한 고급 장교 앞에 줄 지어서 마치 복음서에서 증언되는 것처럼(마태 25,31-46 참조) 일종의 심판을 받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즉, 그 장교는 노동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오른쪽으로, 그리고 병자나 일할 능력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은 왼쪽으로 분류한다. 거기에 도착한 이들의 90퍼센트가 왼쪽으로 분류되었는데, 이들은 목욕탕처럼 생긴 가스실로 끌려가 집단 학살을 당하게 된다. 프랭클 박사는 다행히 노동 가능하다고 분류되어 살아남게 되지만, 곧바로 수용소의 비참한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그는 먹을 것도, 갈아입을 옷도, 씻을 물도 제대로 없는 극한 상황에서 인간 이하의 모욕적인 취급과 폭력을 당하며, 강추위 속의 중노동에 임하게 된다.

이처럼 지옥과도 같은 상황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잃고 죽어갔다. 여기에서 죽는다는 것은 참 간단한 일이었다. 반드시 살아남아야만 한다는 이유와 의미를 발견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는 정신적·육체적 저항력이 점차로 약화되어갔다. 그러한 상태에서 조금만 자기관리를 소홀히 하여 독감이나 폐렴에 걸려 열이 나고 기침을 한다든지 혹은 손발에 동상이 걸리게 되면, 결국 노동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어 가스실로 끌려갔기 때문이다.

프랭클 박사는 이렇듯 고통스러운 극한 상황 속에서도 사람을 생존하게 만드는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의미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런데 프랭클 박사를 생존하게끔 버틸 수 있도록 이끈 원동력은 바로 ‘사랑’이었다. 그는 사랑하는 자신의 아내를 생각하면서 수용소의 어려운 고비들을 모두 헤쳐 나간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놀라운 진리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내 생애 처음으로 그토록 많은 시인들이 노래 부르고 그토록 많은 사상가들이 궁극의 지혜라고 주장하는 진리를 보았던 것이다. 그 진리란 사랑이야말로 인간이 열망할 수 있는 궁극적이며 지고의 목표라는 것이다. 그제야 나는 인간의 시와 인간의 사상 및 인간의 신앙이 말하려고 하는 가장 위대한 비밀의 참뜻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인간의 구원은 사랑을 통해서, 그리고 사랑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프랭클 박사가 발견한 ‘삶의 의미’는 한 인간의 존재에 독자성과 존엄성을 부여하는 본래적 힘이다. 바로 이 때문에, 지옥과도 같은 수용소의 상황이라 하더라도 생존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끝내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프랭클 박사는 말한다. “애타게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한 인간을 향해, 또는 채 끝내지 못한 일에 대해 책임을 느끼게 되면 그는 결코 자신의 목숨을 내던질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존재해야 할 이유를 알게 되었으니, 어떠한 방식에도 참고 견딜 수가 있을 것이다.”

빅터 프랭클은 강제수용소와 같은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사랑’을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어려운 고비를 견뎌냈다. 사진은 2005년 아우슈비츠와 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 해방 60주년 기념식에서 생존자가 희생자들의 기념비 앞에 촛불을 놓고 있는 모습. 【CNS】

인간의 대지(大地)

빅터 프랭클 박사의 체험과 비슷하게, 프랑스의 비행조종사인 동시에 소설가였던 앙투완 드 생텍쥐페리(1900~1944) 역시 자신의 대표 소설인 「인간의 대지」를 통해 사랑의 위대한 힘에 관한 아름다운 메시지를 전한다. 그는 여기에서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와 애정을 고백한다. 생텍쥐페리는 격변의 20세기 전반을 살아온 세대에 속한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년), 러시아 혁명(1917년)과 공산주의의 출현, 이탈리아 파시즘과 독일 나치즘의 등장, 1930년대 전 세계를 휩쓴 경제 대공황, 그리고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에 이르기까지, 그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인간의 어두운 본성과 비극적 사건이 많이 드리워졌던 시대를 살았다. 그리고 그 자신 역시 이런 암울한 시대의 희생자가 된다. 생텍쥐페리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참전하여 정찰 비행을 하다가, 끝내 독일군 전투기에 의해 격추됨으로써 길지 않은 생을 마감하였다.

이렇듯 비극적인 역사적 시기를 살면서 인간의 어두운 면과 잔인성을 깊이 체험했음에도, 생텍쥐페리의 작품들 안에서는 오히려 인간의 선함과 존엄성에 대한 신뢰와 경의가 배어난다.

특히 그는 대표작 「인간의 대지」를 통해, 인간성의 고귀함에 대한 긍정과 희망을 드러낸다. 우리는 동일한 비극적 사건을 깊이 체험하면서 인간에 대한 근본적 신뢰와 기대를 아예 상실하게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반대로 인간에 대한 애정과 희망을 더욱 굳건히 할 수도 있다. 어쩌면 그 선택은 내 안에 과연 무엇을 간직하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이 가진 그대로, 그리고 자기 내면의 모습 그대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생텍쥐페리는 자신 안에 간직한 인간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문학 작품을 통해 드러냄으로써, 그 어두운 시대의 절망과 대결하고 인간에 대한 냉소주의와 비관주의에 도전하려 했던 것 같다.

생텍쥐페리는 「인간의 대지」를 동료 비행사인 앙리 기요메에게 헌정하였는데, 친구 기요메가 실제로 겪은 체험에 대해 이 소설 속에서 이야기한다. 기요메는 우편 행랑을 전달하기 위하여 한겨울에 남미의 안데스 산맥 위를 횡단 비행하던 중, 갑자기 하강 기류에 휩쓸려 깊은 산중에 비상 착륙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살아남기 위해 해발 400~500미터가 넘는 고지대에서 영하 40도의 혹한을 견디며 끊임없이 걸어야만 했다. 그 어느 누구도 한겨울에 안데스 산맥으로 구조하러 올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피로와 굶주림, 뼈를 에이는 추위와 동상 등과 싸워가면서 그는 며칠간 계속 걸어갔지만, 끝내 탈진해서 미끄러져 쓰러지고 만다. 완전히 지쳐버린 그는 이제 잠의 유혹 속으로 빠져들기 직전이었다. 그리고 그 잠은 영원히 깨어나지 않는 휴식을 그에게 선사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눈을 감기 직전의 마지막 순간, 경사지고 눈 덮인 비탈에 쓰러져 있던 그는 바로 50미터 앞에 큰 바위가 하나 있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는 생각한다. 만일 자신이 여기에서 죽는다면 그 시체는 겨울철의 잦은 눈사태에 휩쓸려 계곡 깊숙이 빠져들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신의 시신이 언제 발견될 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그러면 자신은 실종자로 처리될 것이고, 당시 프랑스 법률에 의해 공식 사망 처리는 실종된 지 4년 후로 연기될 것임을 상기하게 되었다. 그러나 만일 50미터만 더 걸어가서 앞에 있는 그 큰 바위 위에서 죽는다면 자신의 시체는 봄이 다시 찾아올 때 곧 발견되어 사랑하는 아내가 자신의 명의로 된 보험금을 즉시 수령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에 생각이 미친다. 그러자 그는 주저없이 다시 일어선다. 그리고 그렇게 한번 일어선 그는 그 바위마저도 지나 이틀 밤과 사흘 낮을 계속 걸어간 끝에 결국 구조되기에 이른다.

이 이야기를 전하는 마지막에, 생텍쥐페리는 동료 기요메를 살린 위대한 힘에 대해서 말한다. 그것은 바로 아내에 대한 사랑이었고 또 동료들에 대한 책임감이었다. “그의 위대함은 자기의 책임을 느끼는 데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우편물에 대한, 또 기다리는 동료들에 대한 책임.” 결국 생텍쥐페리가 「인간의 대지」를 통해 전하는 친구 기요메의 이야기에서도 인간을 살리는 ‘삶의 의미’는 바로 사랑이었다. 가족과 동료들, 그리고 자신이 책임진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이야말로 기요메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귀환시킨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빅터 프랭클 박사와 생텍쥐페리가 공통적으로 증언하는 것은, 사람을 죽음에서 구해내는, 삶의 근본 의미로서의 사랑에 대한 메시지이다.

그렇다. 오직 사랑만이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위대한 힘을 지니고 있다. 위의 두 이야기에서 보듯이, 인간의 사랑도 이처럼 인간을 죽음으로부터 생명에로 인도할 수 있는 것이라면, 하물며 하느님의 크고 위대한 사랑은 우리에게 얼마나 아름답고 영원한 생명을 선사할 것인가? 우리는 하느님의 영원한 사랑을 알기에, 정녕 그 위대한 사랑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향해 나아간다.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죽음의 심연으로부터 들어 올리시어 다시는 죽지 않는 새로움에로 인도하실 것이다.

※주요 참고문헌 : 박준양, 「종말론, 영원한 생명을 향하여, 생활성서사」, 2011, 124~131쪽 박준양, 「그리스도론, 하느님 아드님의 드라마!」, 생활성서사, 2009, 103~107쪽의 내용을 발췌하여 수정, 보완함.

박준양 신부는 1992년 사제로 서품, 로마 교황청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교의신학 전공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신학과 사상학회 편집위원장 및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위원, FABC 신학위원회 전문신학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박준양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의신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