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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공동기획 - 신앙의 해, 신앙의 재발견] (34) 영성의 샘, 수도회

이지연 기자
입력일 2013-11-05 수정일 2013-11-05 발행일 2013-11-10 제 2869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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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 복음 증거자 되어 ‘영성의 빛’ 밝혀야
‘영성시대’에 교회 보화 ‘가톨릭 영성’ 드러내는 첨병
전통적 관습 포기·세속주의 위협에 쇄신 요구돼
고유 카리스마·성경 중심으로 예언자적 역할 필요
기도·영적전문가 양성 되도록 영적 양성 우선돼야
한 수도자가 예루살렘의 한 성당에서 초를 밝히며 기도를 바치고 있다. 수도자들은 각 수도회의 카리스마와 성경에서 기초한 ‘영성의 빛’을 통해 신자들에게 내면적 도움을 줄 수 있는 역할을 찾아야 한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윌리엄 하랄 교수(조지워싱턴대)는 “2020년 정보화시대가 끝나고 지식 이상적 가치와 목표를 중시하는 영성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세계미래학회에서도 역시 영성이 이성과 지식의 다음 화두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기술이 발달하고 급변하는 사회의 흐름 안에서 인간의 본성 회복과 정신적·감정적 안정을 추구하는 시대가 온다는 의미다. 이미 글로벌기업들은 ‘영성’을 기업 경영전략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상에서 말하는 ‘영성’은 갈피를 잃었다. 영성의 근본을 이해하기 보다는 상품으로 바라보고 상업적으로 이용하기에 바쁘다. 때문에 오래전부터 영성을 가톨릭의 보화로 여겨온 교회의 행보가 눈길을 끈다. 다양한 교회 조직 중에서도 특히 영성의 샘이라 불리는 ‘수도회’의 역할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교황 바오로 6세는 「수도 생활의 쇄신」(1971)에 대한 사도적 권고에서 “인류 전체가 개인 간에 있어서나 국가 간에 있어서나 형제답게 살아보려는 소망은 관심과 정신과 양심의 변혁을 요구하고 있다”며 “이런 사명은 하느님의 백성 전체의 공동 사명이지만 특별한 이유로 수도자들의 사명인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어 “하느님을 체험함에서 얻어지는 천상 사정의 맛을 모르고서야 어찌 이런 사명을 수행할 수 있으랴?”고 덧붙여 이 시대에 수도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하느님을 체험하고, 구원의 신비를 관상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수도회이야 말로 다가올 ‘영성의 시대’에 교회의 보화 ‘가톨릭 영성’을 드러내는 첨병인 셈이다.

영성의 샘 수도회 Vs 위기의 수도회

교회는 수도생활을 ‘각별한 선물’로 인식하고 있다. 수도생활은 “주 그리스도께서 선택하시고, 그 모친 동정 마리아께서 택하신 동정과 청빈의 생활을 보다 충실히 본받는 삶”(「수도생활의 쇄신」 2항)이라고 강조한다.

그렇지만 급격하게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 안에서 각별한 선물인 수도생활은 많은 도전을 받고 있다. 수도자 수는 현격하게 줄어들고 있고, 수도 공동체 안에서의 문화적 이질성, 중산층 의식, 소비주의적 사고방식이 팽배해졌다. 가톨릭의 보화 ‘영성’을 품고 있는 수도회는 그 빛을 잃어가고 있다.

교황청 수도회성 장관 프랑크 로드 추기경은 “오늘날 수도자들이 겪는 위기는 전통적 관습에 대한 포기와 세속주의에서 비롯됐다”며 “이러한 문제와 위기는 수도자의 수적 감소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새천년을 앞두고 많은 수도회가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에 몸살을 앓았다. 교황청 수도회성에서도 훈령 「그리스도로부터의 새로운 출발, 제삼천년기 봉헌생활의 쇄신된 투신」(2002)을 발표하고, 현대 세계와 교회 안에서 수도회가 어떻게 자신의 소명에 응답할 것인지, 시대가 요구하는 쇄신은 어떤 방향으로 추진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세세하게 담아냈다.

경제개발논리와 물질만능주의로 인해 한국교회는 변화를 겪어야했다. 영성의 샘인 수도회는 교구 중심의 한국교회 안에서 본래의 영성을 잃고 교구 사목 지원자로서 인식되고 있었다. 수도회들은 이러한 현실을 탈피할 필요가 있었다.

결국 많은 수도회가 고유한 사명과 역할에 대해 고찰을 하고,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2009년 인보성체수도회는 전문적인 연구와 세미나 등을 통해 수도회가 실현해야 할 방향을 세우고, 본격적인 실천에 나서 관심을 모았다. 사랑의 씨튼 수녀회도 한국 진출 50주년을 맞아 진단식별과정을 거쳐, 쇄신을 다짐하기도 했다.

이러한 고민은 각 수도회에서 멈추지 않았다. 한국 남자 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와 한국 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는 물론 국내에 총원을 둔 여자수도회 총원장 모임인 세계여자수도회총원장연합회(UISG)도 시대적 요청에 따라 어떻게 수도회 카리스마를 살아낼 것인지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영성의 시대를 준비하며

현재 수도회가 겪고 있는 위기를 당연한 현상이라고 바라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세속화된 물질문명 속에서 개인의 가치가 높아지고 영적 가치가 상대화 되고 있는 외부적 문제와 더 이상 매력을 창출하지 못하는 수도생활의 내부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생긴 결과라는 해석이다.

때문에 미래학자들이 전망하는 ‘영성의 시대’를 준비하면서, 수도회는 각 카리스마에 전적으로 투신해야한다고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한국의 수도회가 그동안 제도를 갖추기 위한 시간을 보냈다면, 이제부터는 내실을 다져야 한다는 의미다. 기존에 소유했던 것들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예루살렘 공동체처럼 작으면서도 신자들과 더불어 사는 삶을 추구해야한다는 것.

무엇보다 수도회 역할과 이미지를 바꿔야한다는 의견도 있다. 수도자들이 ‘현장’에서 뛰는 데 급급해 기도의 전문가, 영적 상담자로서 역할을 잃어가고 있다. 따라서 수도자 본연의 특성에 어울리는 기도와 영적 전문가로서 양성될 수 있도록 영적 양성에 우선적 관심을 가져야 한다.

박문수 박사(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부원장)는 「한국 천주교회 활동수도회의 현황과 전망」을 통해 “한국교회의 질적 성숙기에 걸맞은 형태로 수도자들의 역할 조정이 이뤄져야 한다”며 “기존의 역할에서 벗어나 신자들의 내면적인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역할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박 박사는 이어 “이는 본당뿐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의 쇄신과 활력에 관계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쇄신의 중심에는 각 수도회의 카리스마와 성경이 중심이 돼야 한다. 성소의 증감을 고민하기에 앞서 “우리가 과연 이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며 복음을 살았는가?” “복음대로 살려고 노력했는가?”를 먼저 진지하게 성찰해 봐야 한다. 즉, 하느님 말씀을 구현하기 위해 복음을 생활 가운데 실천하는 자세를 겸비해야한다. 이렇게 할 때, 살아 있는 말씀으로써 복음을 통해 이 시대의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수도회가 될 수 있다.

최혜영 수녀(성심수녀회)는 “영성은 설립 정신에 기초해야 하며, 사도직은 시대 요청에 응답하는 예언자적 사명 실천으로 구현돼야 한다”며 “수도생활의 쇄신 적응을 위한 기준은 복음과 설립자의 카리스마이며, 이를 통해 변화하는 시대상황에 적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더불어 친교와 화해를 통한 동반자적인 삶을 사는 예언자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준 섬김의 자세를 본받아야 한다. 수도회의 쇄신은 곧 신자들의 신앙생활과도 연결된다. 많은 신자들의 신앙의 뿌리는 수도자들과 연결돼 있다. 본당 수녀들에게 교리를 배우고, 영적 생활의 성장을 얻을 수 있다. 수도자가 온전히 예언자적 사명에 참여하며, 세상 속에서 복음의 증거자가 됨으로써 가톨릭의 보화 ‘영성’은 빛을 발할 수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늘 수도자들에게 당부한 말은 수도회가 어떻게 ‘영성의 시대’를 준비해야할지 알려준다. “십자가의 표징이 수반되는 여러분의 일상생활을 통해 그리고 성실한 봉사와 끈질긴 희망을 통해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사랑에 대해 깊은 신앙을 드러내 보이며 악보다 강력하고 죽음보다 힘 있는 사랑을 증거하십시오.”

이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