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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주일 특집] ‘예비역’ 군종신부 ‘원대 복귀’ 하던 날

서상덕 기자
입력일 2013-10-01 수정일 2013-10-01 발행일 2013-10-06 제 2864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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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모인 군 선교 주역들 … “아직도 군사목은 내 운명”
군종교구, 10년 이상 장기복무 사제 초청 간담회 
김관진 국방장관 등 군 고위 인사 다수 참가해 눈길
“전역 사제 모임 필요 … 자주 ‘복귀’ 명령 받았으면”
9월 24일 군종교구청을 예방한 김관진 국방장관이 유수일 주교와 장기복무 전역 사제들과 함께 환담을 나누고 있다.
원대 복귀’를 명 받았습니다!

9월 24일 오전. 국방부가 지척인 서울 용산에 자리한 군종교구청. 그 어느 때보다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군종교구청을 오가는 이들의 동작이나 몸짓 하나하나에서도 평소와 다른 느낌이 전해져 왔다. 교구청을 감싸고 있던 묘한 기운은 머리에 흰눈이 내린 신부들이 하나둘 찾아들면서 이내 웃음과 찬탄의 소리로 바뀌었다.

이날 군종교구청을 찾은 주인공들은 군 일선에서 10년 이상 군사목을 하다 전역한 ‘예비역’ 군종신부들. 가까운 서울뿐 아니라 대전, 충남 홍성, 경북 안동, 대구, 부산, 경남 진주 등 전국 각지에서 뿔뿔이 흩어져 지내다 ‘원대 복귀’를 명받은 은발의 사제들은 군용 ‘더블백’ 대신 제의가방을 ‘지참’하고 용산을 찾았다.

군종교구가 장기복무 사제들을 초청해 교구 발전을 위한 의견을 듣기 위해 처음으로 마련한 간담회 참가가 짧게는 1년, 길게는 40년 만에 이들에게 떨어진 ‘명령’이었다.

군종교구장 유수일 주교를 필두로 교구 관계자들도 몇 달 전부터 군사목의 ‘대선배’들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에 공을 들여왔다.

그렇게 해서 한 자리에 모인 신부들은 ‘최고참’인 김계춘 신부(83·부산교구 원로사목자·1962~1984년 복무)와 김득권 신부(79·서울대교구 원로사목자·1962~1972년 복무)부터 공군 군종병과장으로 활동하다 지난해 전역한 막내 조정래 신부(50·서울 방배동본당 주임·1994~2012년 복무)까지 모두 17명.

‘예비역’ 군종신부라고 군사목에 대한 열정마저 과거에 묻고 온 것은 아니었다. 노사제들은 군종교구의 면면을 돌아보는가 하면 후배 군종신부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지며 오래도록 묵혀온 군사목에 대한 애정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전 육군에 군종신부가 단 한 명 있었던 시절이 있었어요. 지금으로선 상상이 안 되는 일이죠. 내가 힘들어서 이 자리에서 물러서면 다음 신부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에 사명감을 되새기고는 했지요.”

김계춘 신부는 ‘원대 복귀’의 소감으로 자주 복귀 명령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뜻을 털어놓았다.

“군사목 현장에서 하느님을 위해 헌신하는 군종신부의 모습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체험을 나눈다면 더 아름다운 모습도 일궈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대장보다 높으신 신부님

‘예비역’ 군종신부들의 ‘원대 복귀’ 소식에 ‘별’들도 떴다.

지금도 ‘전설’이라고 불리는 조용걸 신부(75·부산교구 원로사목자·1971~1991년 복무)가 육군사관학교 화랑대본당에서 사목하던 시절 생도로 인연을 맺은 정승조(모이세·60) 전 합참의장을 비롯해 김관진(아우구스티노·64) 국방장관 등 군 고위 인사들이 지난 추억 속에 아련히 남아있던 ‘군종신부님’들을 보기 위해 군종교구청을 찾았다.

“제가 찾아갈 때마다 너무 잘해주셨습니다. 비록 그때는 가톨릭신자가 아니었지만 신부님과의 추억이 너무 진하게 남아 결국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게 된 것 같습니다.”

기억에 남을 선물을 한아름 싸들고 온 정승조 장군은 “다시 신부님을 뵈니 군문에 발을 들여놓던 때가 떠올라 초심으로 돌아가는 기분”이라고 했다.

갓 소위 계급장을 단 초임장교 때 처음 조 신부를 만난 김관진 장관도 회고담을 풀어놓는데 빠지지 않았다.

“그 때 너무 따뜻하게 대해주셨죠.”

“제가요.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신부님 덕에 나중에 세례도 받았습니다. 여전히 초보 신자이지만 말입니다.”

“장관으로서 막중한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고 듣고 있어요.”

‘예비역’ 군종신부와 장군들의 대화는 이미 20~30년을 넘나들고 있었다.

이들의 만남을 지켜보던 유수일 주교는 “사목방문을 할 때마다 군사목 역사의 주인공은 군종신부임을 깨닫게 된다”면서 “군종 역사는, 선배들이 뿌린 복음의 씨앗이 당장 움을 틔우지 못한다 할 지라도 죽지 않고 살아 언젠가는 훌륭한 열매를 맺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간담회에 참가한 장기복무 전역 사제들과 내·외빈들이 국군중앙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군사목 ‘살아있는 전설’ 조용걸 신부

“시간날 때마다 초소 방문 장병 위로 … 기분좋은 추억”

조용걸 신부
“군 장병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든 군종신부가 있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군사목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하는 조용걸 신부(75·부산교구 원로사목자)는 어느새 20여 년 전의 따뜻한 군종신부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자원해서 육군사관학교 화랑대본당에서 사목하던 6년 동안 딱 한 번 휴가를 받아 자리를 비울 정도로 ‘독하게’ 군종신부 시절을 보낸 조 신부는 지금도 인재 양성의 중요성을 힘주어 말한다.

“군의 미래를 끌고 갈 사관생도들을 잘 길러내면 군에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앞장서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지요.”

조 신부는 이런 생각으로 화랑대본당에서 사목하는 내내 매년 육사 생도의 3분의 1을 교회로 이끌어 미래의 간성들을 가톨릭화시켜 나가는 전설을 일궈냈다. 이런 그의 노력이 밑거름이 되었을까, 지금도 그가 직접 키워낸 장교들부터 육군 장성의 30% 이상을 가톨릭신자가 차지할 정도로 군사목은 튼튼한 울타리를 갖게 됐다.

“우리의 힘은 기도에 있지 교제나 인간관계에 있지 않아요. 특히 군종신부는 기도하며 주님이 지워주신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가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결과는 하느님이 하시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고(故) 서정덕 신부(전 대구대교구 보좌주교, 1985년)에 이어 두 번째로 군종병과 최고책임자인 육군 군종감에 오르기도 했던 조 신부는 늘 겸손하고 따뜻한 사제로 주위에 각인돼 있다. 소령 때까지는 가까운 곳에 장례라도 생기면 묘지까지 따라가 아픔을 함께해 줄 정도로 마음을 다했다.

“매 순간 주님은 우리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그 좋은 기회를 잘 활용해 복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입니다.”

군종신부 시절 잠자는 시간을 빼곤 시간날 때마다 초소를 돌며 장병들을 위로하던 기억을 기분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는 조 신부는 “누가 힘들어 할 때 옆에 있어줄 수 있는 사제가 가장 훌륭한 사제”라고 말한다.

“젊을 때 그 혈기를 하느님을 위해 써야지 누굴 위해 쓰겠습니까. 그것이 주님을 향할 때 아름다울 수 있음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하느님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낸 ‘예비역’ 군종신부의 말은 우리 모두를 향한 것 같았다.

■ 선배가 후배에게

“사명감 갖고 지향은 늘 주님께”

- 김계춘 신부(83·부산교구 원로사목자·1962~1984년 복무) : 군종신부는 잠시라도 사명감을 늦춰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그 지향은 무엇보다 하느님을 향해 있어야 합니다.

- 김득권 신부(79·서울대교구 원로사목자·1962~1972년 복무) : 장교는 공소회장 역할을 할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군사목 활성화를 위해서는 지난 역사를 잘 돌아보고 관리할 줄 하는 혜안이 필요합니다.

- 이종남 신부(62·서울대교구 중견사제연수·1976~1991년 복무) :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군사목과 하느님을 위한 길입니다. 정서적으로나 마음으로 통할 수 있는 군종신부가 되길 바랍니다.

- 최봉원 신부(61·마산교구 신안동본당 주임·1980~2003년 복무) : 지금도 ‘군사목’ 하면 당장이라도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일어납니다.

군문을 떠나서도 잠시도 눈길을 떼지 못할 정도로 군사목은 매력적인 장입니다. 군종교구에 힘을 보탤 수 있을 틀을 마련하면 좋을 듯합니다.

- 이성운 신부(58·서울 천호동본당 주임·1985~2005년 복무) : 하느님이 우리의 든든한 ‘백’임을 실감할 수 있는 곳이 군입니다. 군사목 활성화를 위해서는 군종신부들이 전역한 후에도 만나서 뜻을 모아나갈 수 있는 틀이 필요합니다.

서상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