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현대 스테인드글라스 이야기 (19) 무색(無色)의 스테인드글라스- 독일 아헨 대성당 회랑의 스테인드글라스

정수경(카타리나·인천가톨릭대학교 초빙교수)
입력일 2013-09-24 수정일 2013-09-24 발행일 2013-09-29 제 2863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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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선들이 춤추는 무색투명의 독특한 아름다움 …
스테인드글라스 하면 보통 중세 고딕 성당에서 보듯이 다채로운 색유리에 성경의 주요 장면들을 세심하게 묘사하고 전통적인 납선 기법으로 완성한 기념비적인 창들을 떠올리게 된다. 현대의 작품에서도 추상적인 경향이 수용되었지만 역시 색이 도입된 작품들이 대부분인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오늘 소개할 작품은 스테인드글라스에 대한 이와 같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독일 아헨(Aachen) 대성당 회랑의 32개의 창에 설치되어 있는 루드비그 샤프라스(Ludwig Schaffrath, 1924~2011)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무색의 투명한 유리만으로 이루진 독특한 작품이다. 처음 이 작품을 책에서 보았을 때 아무런 색이 없는 투명한 유리에 납선 기법을 사용하여 드로잉 한 것 같은 표현에 매료되어 실제 모습을 꼭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하여 독일 방문 중 쾰른에 머물던 기간에 하루 시간을 내어 이 작품을 보기 위해 아헨으로 향했다.

루드비그 샤프라스(1962~1965), 독일 아헨 대성당 회랑 창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 .
아헨 대성당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서 깊은 아름다운 교회건축답게 볼거리로 가득했지만 필자는 아헨에 도착하자마자 샤프라스의 이 작품을 찾아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녔다. 대성당에 있다고 알고 갔는데 다른 작품들만 있고 필자가 찾는 작품은 아무리 찾아도 없는 것이었다. 아마도 잘못 알고 왔나보다 생각하며 포기하고 돌아가려는데 길가에 작은 입구를 통해 대성당 회랑에 자리한 샤프라스의 작품이 살짝 모습을 드러낸 것을 보게 되었다. 기쁜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가 작품을 마주하였다. 그런데 하나의 창으로만 이루어진 줄 알았던 작품이 회랑 전체를 에워싸고 있는 무려 32개의 창에 설치되어 있었다. 회랑 안쪽 건물은 음악학교로 사용되고 있어 출입이 제한되어 중정에서 보이는 창 바깥쪽을 통해 각 창의 구성을 살펴보았는데 단 하나의 창도 같은 것이 없었다. 아무런 색도 가해지지 않은 무색투명한 유리에는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 질감이 살아있어 바깥의 풍경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아련하게 실루엣으로 비춰지는 효과를 자아내고 있었다. 창밖의 세상과 창안의 내부 공간이 서로 넘나들며 소통하되 지나치게 직접적이지는 않아서 신비로움을 더해주었고 다양한 굵기의 납선들로 자유롭게 드로잉 하듯이 표현된 선들은 자칫 단조로워볼 수 있는 무색의 유리에 힘을 더해주고 있었다. 샤프라스의 무색투명한 스테인드글라스는 빛의 순수성을 보다 직접적으로 마주하게 하며 인간의 감각보다는 정신성에 호소하는 작품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스투트가르트 쿤스트아카데미의 교수였던 루드비그 샤프라스는 이미 여러 차례 언급하였듯이 게오르그 마에스터만에 이어 독일 현대 스테인드글라스를 이끈 거장으로서 다양한 실험정신을 발휘한 작품들을 남겼다. 2011년 서거한 그의 회고전을 준비하면서 그의 제자 티에리 부아셀은 스승에 대한 기억을 다음과 같은 글로 남겼다.

“…그는 마치 살아있는 백과사전 같았다. 그는 스테인드글라스의 역사 전반과 생생한 일화를 포함한 사소한 이야기들 그리고 유리, 빛, 건축이 공간 내에서 서로 주고받는 영향 등 스테인드글라스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이야기를 할 때 그의 음성은 흥분으로 떨리고 있었고 나는 그 모습에 매혹되었다. 백발의 긴 머리에 가죽옷을 즐겨 입던 그는 늘 올곧은 태도로 도도하고 거만했지만, 진정 스테인드글라스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검은 선들이 춤추는 무색투명한 아헨 대성당의 창 앞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사랑하고 그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자 했던 샤프라스의 순수한 열정을 저 너머로 바라보게 된다.

정수경(카타리나·인천가톨릭대학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