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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스테인드글라스 이야기 (14) 런던 왕립 병원 의학도서관 스테인드글라스(2002)

입력일 2013-07-02 수정일 2013-07-02 발행일 2013-07-07 제 2853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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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색채 통한 과학 예술의 성공적인 소통
영국 런던 왕립 병원의 의학 도서관에 설치된 요하네스 슈라이터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은 독일 하이델베르크 성령교회를 위해 디자인했으나 제작 설치되지 못했던 작품 주제의 일부를 재해석하여 제시한 작품이다. 요하네스 슈라이터는 1977년 하이델베르크 성령교회(Heiliggeistkirche)를 위한 총 22개의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디자인하였다. 그는 한 때 이 교회에 소장돼 있었던 방대한 서가인 ‘비블리오테카 팔라티나’(Biblioteca Palatina)에 대한 경의를 표하면서 서구 문명의 축소판과 다름없는 이 서가를 자신 작품의 주제로 삼고 디자인을 진행했다. 창의 주제로는 문학, 철학, 음악 등과 같이 역사가 깊은 학문 분야에서부터 화학, 생물학, 의학, 물리학, 경제학, 미디어, 교통 등 현대의 새로운 연구 분야들도 함께 다루어졌다. 슈라이터는 지도, 신문, 텔레비전, 그래프에서 차용한 이미지들에서 출발하여 작가의 성숙한 미학적 비전에 따라 재해석된 예술적 이미지를 제시하였다. 유감스럽게도 하이델베르크 성령교회를 위한 슈라이터의 디자인은 하이델베르크 시가 거절로 실현될 수는 없었지만 이후에 영국 왕립병원 의학도서관에서 그 생명을 되찾을 수 있었다.

요하네스 슈라이터, 분자생물학 스테인드글라스 창, 영국 런던 왕립병원 의학도서관, 2002.
슈라이터의 영국 왕립병원 의학도서관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은 1990년 빅토리아 앨버트 뮤지엄에서 있었던 ‘의미의 추구’(Search for Meaning)라는 컨퍼런스를 계기로 설치될 수 있었다. 컨퍼런스에서 소개되었던 요하네스 슈라이터의 하이델베르크 성령교회 스테인드글라스 디자인을 접한 왕립 의과 대학 신경학과 교수인 마이클 스워시(Micheal Swash)는 성령교회에 제안됐던 디자인이 의학도서관 건물의 네이브에 위치한 여덟 개의 창에 설치되었을 경우 공간의 의미를 새롭게 하고 시각적으로도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보고 슈라이터에게 작품을 의뢰할 것을 제안하였다. 각각의 창에 그려진 과학의 이미지들은 당시 의학 연구 성과들이나 이슈가 되었던 문제들 그리고 과거 의학사를 기념하는 내용들로 꾸며졌다. 각 창에 필요한 의학과 과학의 자료들은 성 바르톨로메오 병원과 런던 왕립병원에서 의료에 종사하거나 연구직을 수행하고 있던 각 분야의 교수들에 의해 선택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취합된 자료들에서부터 출발하여 요하네스 슈라이터는 작가 자신만의 과학, 의학의 이미지들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 예술과 과학 간의 효과적인 대화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연구자들이 자신의 분야를 가장 상징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이미지와 그래프 등을 적절하게 선택하고 이것을 작가 고유의 조형언어로 시각화 시킬 수 있도록 설명하고 돕는 중재자의 역할을 필요로 했다.

런던 왕립병원 의학도서관의 스테인드글라스 창에는 따뜻하면서도 고귀한 실내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특별히 제작한 세 개 층으로 이루어진 불투명 유리가 사용되었다. 가운데 흰색을 놓고 앞뒤로 다른 색을 겹쳐 만든 이 유리는 밤에는 시원한 보라색의 인상을, 낮의 태양광선에서는 부드러운 연자주색 톤을 연출하고 있다. 이렇게 영국 왕립병원 의학도서관 스테인드글라스 창은 각각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내면서도 상호간에 밀접하게 연결된 하나의 커다란 틀 안에서 공존하고 있다.

슈라이터의 영국 왕립병원 의학도서관 스테인드글라스는 빛과 색채를 매개로 과학과 예술의 성공적인 소통이 만들어낸 이상적인 공간으로서 우리에게 제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