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지도 (4) 전주 전주천

김진영 기자
입력일 2013-06-04 수정일 2013-06-04 발행일 2013-06-09 제 2849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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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천 물길 따라 흐르는 순교자들의 신앙

숲정이·치명자산 … 선연한 선조들의 핏자국
느린 걸음속에서 느끼는 삶의 진정함·여유
콩나물 국밥, 장터국수 등 맛집 찾는 순례는 덤
■ 순교자들의 피가 마를 날이 없었던 숲정이

전주 고속버스터미널이나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렸다면 숲정이 성지까지는 걸어볼만한 거리이다. 곳곳에 들어선 아파트나 건물들 때문에 멋스러움은 느낄 수 없지만 예전에 이곳은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숲정이’ 혹은 ‘숲머리’라 불렸다. 가끔 숲정이성지를 찾아 숲정이성당을 가는 순례자들이 있는데 이는 순교터가 현재 성지의 위치와 조금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실재 순교터는 현재 성지의 담을 끼고 150m 정도 가면 길모퉁이에 위치한 유치원과 아파트 사이 ‘순교자 현양탑’이 서있는 곳을 중심으로 한 그 주변으로 추정되며, 이곳에서 신유박해 때 순교한 이순이 루갈다, 신희, 이육희, 유중성 마태오를 비롯해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가 흘렀다. 현재의 숲정이 성지는 성지에서 옮겨 온 토사로 조경이 돼 있고 십자가와 순교자 현양탑이 우뚝 서서 순교의 영광을 기리고 있다.

찾기 어렵다면 전주 진북초등학교 근처에 있으니 참고하거나 전주교구 윤호관으로 검색하면 찾을 수 있다.

곳곳에 들어선 아파트나 건물들 때문에 멋스러움은 느낄 수 없지만 예전에 이곳은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숲정이’ 혹은 ‘숲머리’라 불렸다.
숲정이 성지에 위치한 ‘윤호관’은 한때 해성중·고등학교 체육관으로 사용되던 건물이며, 현재 전주교구 가톨릭교리신학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 어린 나이에도 굳건한 주님을 향한 마음, 서천교와 초록바위 순교지

숲정이 성지에서 나와 전주천을 거슬러 2km 남짓한 거리를 걷다보면 성 조윤호 요셉이 순교한 서천교에 다다르게 된다. 18세라는 어린 나이에 순교한 조윤호 성인은 서천교 밑에 살던 거지들이 성인의 목에 여러 끈을 감은 뒤 서로 조르게 하는 방식으로 처형당했다. 거지들은 순교자의 시체를 질질 끌고 다니며 밥을 빌어먹었는데 시체가 하도 참혹해서 누구든지 겁에 질려 밥을 줬다고 한다.

전주천을 따라 계속 오르다보면 병인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한 성 남종삼 요한의 큰 아들 남명희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홍봉주 토마스의 아들이 처형된 초록바위에 도착하게 된다. 이들은 나이가 너무 어려 성인(15세)이 되는 이듬해까지 처형이 연기됐다가 나이가 찬 이후 초록바위에서 전주천으로 떠밀려 순교했다. 지금은 어떻게 여기서 밀어서 전주천에 수장을 시킬 수 있었을까 하는 의아한 생각이 들지만 20세기 초까지도 전주천에는 많은 물이 흘러 익사하는 사람이 종종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배가 이곳까지 올라왔다고 한다. 또한 현재의 초록바위는 1936년 홍수로 제방공사를 하면서 상당부분 깎여서 완전한 모습을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을 알아두자.

서천교와 초록바위에는 각각 순교지를 설명하는 비석과 함께 순교자들의 모습을 표현해놓은 조각무늬 그림이 서있다. 이 그림판은 남종삼 성인의 후손인 숙명여대 남용우 화백의 작품이다. 아울러 이곳은 이팝나무 군락지라 5월경 개화기에 하얀 꽃구름을 연상시킬 정도로 아름다운 자태를 감상할 수 있다.
조윤호 요셉 성인이 순교할 당시의 모습을 표현해놓은 조각무늬 그림. 거지들이 성인의 목에 끈을 걸고 잡아당기고 있다.
전주천

■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치명 순교터, 전동성당

싸전다리를 지나 남부시장에 도착하면 재래시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독특함을 느낄 수 있다. 유명한 남부시장 콩나물 국밥을 비롯해 순대국밥이나 장터국수 등 시장 곳곳에서 있는 맛집을 찾아가는 것도 순례의 즐거움 중 하나다. 혹은 이색적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남부시장에 있는 청년몰에 가보는 것도 추천해주고 싶다.

풍남문은 한국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과 권상연 그리고 호남의 사도 유항검과 초대 전주 지방 교회의 지도급 인물들이 처형되고 그 시신이 내걸렸던 장소이다. 특히 유항검의 목은 풍남문 누각에 매달렸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윤지충과 권상연의 시신은 처형되고 9일 간 풍남문에 내걸렸는데 두 사람의 시신은 조금도 썩은 흔적이 없고, 형구에 묻은 피는 금방 흘린 피처럼 선명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전동성당은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치명 순교터에 자리 잡고 있다. 더욱이 성당의 주춧돌은 성인들의 시신을 지켜본 풍남문 주변 성벽에서 나온 흙과 돌로 이뤄졌다. 정면 종탑부와 양쪽 계단탑에 비잔틴 풍의 총화형 돔을 올린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름다운 교회 건축인 전동성당은 대구대교구 계산동 성당과 함께 초기 성당으로서는 드물게 평지에 위치하고 있다.
풍남문은 한국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과 권상연 그리고 호남의 사도 유항검과 초대 전주 지방 교회의 지도급 인물들이 처형되고 그 시신이 내걸렸던 장소이다.
전동성당.

■ 한국의 몽마르트르, 치명자산

전주천을 따라 걷다보면 도심에서 벗어나 치명자산에 도착했음을 알게 된다. 바로 산에 오르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여유가 된다면 주차장에 있는 옹기가마 경당을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사순시기에는 새벽미사가 봉헌되기도 하는데 많은 신자들이 참례한다고 한다.

치명자산에는 호남에 처음 복음을 전하고 선교사 영입과 서양 선진 문화 수용을 하다가 국사범으로 처형된 유항검 아우구스티노과 그의 처 신희, 동정부부로 순교한 큰 아들 유중철 요한과 이순이 루갈다, 제수 이육희, 아들 유문석 요한과 조카 유중성 마태오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순교자묘 바로 밑에는 이분들의 순교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4년 5월 9일 건립된 기념 성당이 있고, 그 아래 왼편에는 십자가의 길이, 오른편에는 전주교구 성직자 묘지가 조성돼 있다.

유항검 일가의 묘소 바로 위에는 십자가와 함께 기암이 하나 있는데, 보는 각도에 따라 성모님이 앉아 있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고 반대편에서 바라보면 겟세마니에서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고 계시는 예수님처럼 보이기도 한다. 치명자산 성당까지 올라왔다면 멈추지 말고 끝까지 올라가서 보길 바란다.

호남교회사연구소장 이영춘 신부는 “순례란 모든 것을 놓고 떠나는 여정”이라며 “순례를 통해 뭔가 느끼고자 하는 바람조차도 놓고 떠나는 것이 진짜 순례”라 말했다. 그냥 마음에 여유를 갖고 천천히 걸어보자. 숨을 쉬는 한, 희망은 있다.

전주 한옥마을 전경 모습.
성인묘역에서 바라본 바위는 마치 예수님이 겟세마니에서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고 계시는 모습으로 보인다.
매년 성금요일에는 교구장 이병호 주교와 함께하는 십자가의 길이 있으며, 사순시기가 아니더라도 십자가의 길을 바치는 신자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치명자산성당(위), 전주교구 성직자 묘지(아래)

김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