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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병자의 날 특집] 이우현 기자의 원목실 체험 ‘착한 사마리아인 되기’

이우현 기자
입력일 2013-02-05 수정일 2013-02-05 발행일 2013-02-10 제 2832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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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받는 이웃 곁에서 위로·복음 전하는 주님의 도구
미사, 환자 방문, 병자성사 등 환자에게 영적 도움 주고
의료 종사자들에게도 교우회 등 신앙 보금자리 제공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제21차 세계 병자의 날 담화’를 통해 고통으로 신음하는 이웃을 위한 돌봄과 나눔을 실천한 ‘착한 사마리아인’(루카 10,25~37)을 성찰해 볼 것을 제안했다. 이 복음서의 비유를 통해 모든 사람, 특히 질병과 고통으로 아파하는 이들에 대한 하느님의 깊은 사랑을 예수님께서 일깨워주심을 다시 한 번 상기하려는 것이다.

11일 ‘세계 병자의 날’을 며칠 앞둔 지난 2일, 기자는 서울 아산병원 원목실(실장 이상수 신부)에서 사무장이 돼보기로 했다. 병원 원목실에서 하루를 보내며, 병자들의 안식처인 원목실의 존재 이유를 살피는 한편, 병자들과 가까이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원목 사제, 수도자, 자원 봉사자들의 모습에서 우리 시대에 필요한 ‘착한 사마리아인’의 역할을 찾아보기 위함이다.

■ 필요로 하는 곳에 더 가까이

아산병원 원목실은 매주 화, 목, 토요일 각각 자원 봉사팀을 운영하고 있다. 당일 오전 9시30분이 되자, 자원 봉사자들이 하나둘씩 원목실로 모여들었다. 한 자리에 둘러앉은 10여 명의 봉사자들은 원목실장 김지형 신부(12일부 서울대교구 사제인사 전, 현재 삼성서울병원 원목실장)를 비롯한 원목실 식구들과 시작기도를 봉헌했다.

이들의 기도 지향은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시어 심신의 질병으로 고통 받고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치유해주심을 더욱 깊이 이해함으로써 하루하루 만나는 병자들에게 하느님 안에 진정한 쉼 자리를 전달하는 데 있다.

“천주교 원목실에서 나왔습니다.”

토요일 자원 봉사팀장 박은숙(미카엘라·61)씨를 따라 병동 방문에 나섰다. 토요일 자원 봉사자들은 환자들과 보호자들을 위로하는 말벗이 돼주는 것은 물론, 주보와 교계신문을 전달하고 봉성체와 미사 안내 등을 맡고 있다.

병실 문을 노크하기 전, 박씨는 환자들을 생각하며 짧은 화살기도를 봉헌한다. 박씨는 “환자들을 만나는 것은 언제나 떨리는 일”이라며 “그들이 병실 방문, 봉성체 등 도움을 필요로 할 때, 그 목소리를 듣고 제때 도움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봉사자들의 역할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씨를 비롯한 자원 봉사자들은 자리에 없는 환자라도 순서의 마지막에 다시 찾아가 잠시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한다. 또한 매주 화, 목요일 봉사팀은 환자 방문 후 그날 있었던 일을 서로 나누며 각 환자들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때로는 병마와 싸우느라 지쳐버린 환자들과 보호자들의 냉대에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고통으로 일그러졌던 그들의 얼굴에 미소를 찾아주는 일은 자원 봉사자들에게도 큰 힘이 된다. 박씨는 “이곳에 오면 봉사한다는 마음보다 오히려 위안을 얻고 힘을 얻어 가는 것 같다”고 전했다.

■ 병원 안의 작은 본당

암환자 김경애(로사·52)씨가 원목실을 찾았다. 병자들에게 원목실은 고된 병원 생활의 쉼자리이다. 원목실 식구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눈 김씨는 “입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오늘 처음으로 이곳 원목실을 찾았다”며 “삭막한 병원에도 이처럼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고, 위로가 되는 자원 봉사자들이 있어 반갑다”고 말했다.

오전 11시30분, 병원 직원들의 세례식을 앞두고, 전례 봉사자들이 빠른 손놀림으로 세례식에 필요한 제대를 꾸며 놓았다. 병원 원목실은 병자들을 위한 공간은 물론, 병자들을 돌보는 의료 종사자들이 신앙을 찾는 신앙생활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생사를 다루는 긴장선 상에 있는 의료 종사자들에게 신앙은 삶의 위안과 휴식을 얻는 버팀목인 셈.

김 신부는 세례를 받는 이들의 손바닥에 성유를 바르고, 안수기도를 했다. 이어 머리에 성수를 부음으로써 이들은 그리스도 신앙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날 세례를 받은 울산의대 4학년 강현지(마리아·26)씨는 “학업과 바쁜 병원생활 안에서 이처럼 세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에 기쁘고 감사할 따름”이라고 특별한 세례식의 소감을 밝혔다.

아산병원 원목실은 평일·주일미사와 환자 방문, 봉성체, 병자성사, 고해성사 등 주요 역할 외에도 병원 직원·환자·보호자를 위한 예비자교리, 성경공부, 교우회 모임(젊은 간호사, 중견 간호사 모임), 의대생 모임, 연령회, 자원 봉사자·교우회 피정 및 야유회 등을 마련하고 있다. 매주 축일을 맞은 직원들을 직접 찾아가 카드와 꽃을 전달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낮 12시30분, 토요 특전미사가 봉헌됐다. 환자와 보호자를 비롯해 막 세례를 받은 병원 직원들과 자원 봉사자들이 원목실을 가득 채웠다. 열기가 더해져 김 신부도, 신자들도 연신 흐르는 땀을 닦으며 미사를 봉헌했다.

하루종일 이어지는 바쁜 일정 중에도 원목실을 찾아오는 환자들과 보호자들을 만난 김 신부는 점심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병실 방문과 장례미사 주례를 위해 원목실을 나섰다.

“가장 아프고 힘들 때 신앙적인 돌봄은 물론, 누군가가 건넨 작은 위로가 힘들고 외로운 병원 생활을 이겨내는 힘이 되지요. 이것이 원목실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아울러 사제, 수도자가 있긴 하지만 그 많은 병동을 면밀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여건이 아니기에, 원목 봉사자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영적 돌봄에 동참할 수 있는 평신도 봉사자 양성에 관심을 기울였으면 합니다. 또한 봉사자들도 따뜻한 마음과 경청의 자세로 환자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귀 기울이려는 노력을 해야할 것입니다.”

원목실에서 봉헌되는 토요 특전미사 모습. 환자와 보호자, 병원 직원 등이 원목실을 가득 채웠다.
병실 방문 중 자리에 없는 환자의 침대 위에 주보와 함께 가톨릭신문이 놓여있다. 주보 위에 쓰여진 “안 계셔서 주보와 신문 놓고 갑니다”라는 짤막한 편지를 통해 봉사자의 마음도 함께 전해진다.
2일 아산병원 원목실에서 진행된 세례식.
병실을 찾아가 환자들을 만나고 있는 자원 봉사자. 자원 봉사자는 환자와 보호자의 말벗이 되어주기도 하고, 주보와 교계신문을 전달하며 미사 안내를 하는 등의 역할을 한다.
자원 봉사자들의 하루 일과는 기도로 시작된다. 원목실 식구들이 모여 시작기도를 봉헌하고 있다.

이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