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수의 현대인들 마음속 영어 사전에 없는 단어가 있다. 기브(give, 주다)가 바로 그것이다. ‘주고받다’(give and take, exchange)가 없고 테이크(take, 받다)만 있다. 우리는 어쩌면 받는 데만 너무 익숙해져 있는 것은 아닐까. 부모로부터, 자연으로부터, 이웃으로부터, 창조주로부터 받는 데만 길들어 있다 보니 주는 연습을 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결혼도, 사회도, 문화도, 정치도 삐걱거리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랑도 남발되다 보니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주로 성적(性的)인 의미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사랑은 아끼는 것이고, 주는 것인데 사랑도 나 자신의 쾌락 혹은 받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창조주의 섭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세상 만물은 주고받으면서(give and take) 그렇게 움직인다. 하느님께서 그렇게 창조해 놓으셨다. 인간관계도 주고받으면서 서로 성장하는 것이다. 신앙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주어야 하는 섭리를 잊고, 받으려고만 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심지어 성직자와 수도자들도 주는 것 보다는 받는 것에 익숙한 모습을 일부 보게 된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어떤 수도자가 주지는 않고 받으려고만 한다면 이는 수도생활의 근본을 모르거나, 수련이 엉망으로 됐기 때문이다.
지난 한 주 과연 우리가 만난 사람들과 나는 무엇을 주고, 또 받은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자. 대체로 받은 것이 많을 것이다. 받으려고만 하다 보니 주어야 한다는 것을 잊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주는 것을 듬뿍듬뿍 많이 주라는 것이 아니다. 통장 잔고가 바닥이 드러나도록 친구들에게 술과 밥을 사주라는 말이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을 노숙자에게 내어 주라는 말이 아니다. 내가 입고 있는 옷을 다 벗어서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 주라는 말이 아니다.
줄 수 있는 것은 참으로 많다. 간단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것도 주는 것이다. 성냥갑 같은 아파트서 살면서 우리는 인사를 잊어버렸다. 주는 것은 대단한 그 무엇을 주는 것이 아니다.
나눈다는 것은 초월적 시간 안에서 나의 인격을 이웃에게 주는 것이다. 이때 받을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엄청나게 많은 것을 받았는데 또 무엇을 받으려고 하는가. 더 받을 것이 뭐가 있는가. 혹시 그동안 조금 모자라게 받았다면 하느님이 때 되면 다 알아서 주신다.
잠깐 눈을 감자. 내가 이웃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줄 것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늘에 떠 있는 태양에도 엄청나게 많은 것을 받았기에 무엇인가 주어야 한다. 땅과 나무에도 많은 것을 받았기에 뭔가 나눠 주어야 한다. 우연히 차를 타며 스쳐 지나왔던 그 들판에 핀 한 꽃송이에도 무엇인가 되갚아야 한다.
이렇게 세상과 자연과 이웃에게 뭔가 나눠주려고 하다 보면 내 몸이 예뻐진다. 얼굴과 몸을 예쁘게 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이들이 왜 진정한 예뻐짐에는 관심이 없는지 모르겠다. 인생의 맛은 이처럼 나 자신을 나눔을 통해 예쁘게 성형 수술 하는 데 있다.
그동안 세상에 나온 수많은 철학책과 신학책을 읽었다. 위대한 사상가의 어려운 말 가득한 책들도 많이 읽었다. 그 책들이 말하는 결론은 오직 하나였다. ‘나 자신을 예쁘게!’ 였다. 예쁜 눈으로 세상을 보고, 예쁜 입으로 생각을 말하고, 예쁜 손과 발을 사용하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내가 매일 만나는 모든 것들이 하느님과 밀접하게 접촉되어 있다. 해와 바다와 산, 고등어, 갈치, 멸치, 참새, 기러기 모두 하느님과 접촉되어 있다. 심지어 오늘 하루를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해 준 침대,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해준 책상,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해 준 숟가락 젓가락도 모두 하느님과 접촉되어 있다. 모두 하느님으로부터 나왔기에 그렇다. 이런 모든 것들이 나와 연결되어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런 모든 접촉하는 것으로부터 받기만 했다. 기브 엔 테이크가 아니라 테이크만 했다. 이젠 기브(give)가 필요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인간이 생각하는 모든 계획을 초월한다. 실제로 “해가 왜 일찍 지나… 더 하늘 위에 떠 있었으면 좋겠는데…”라고 말한다고 해서 해가 천천히 지는 경우는 없다.
하느님은 인간이 낮 시간의 소란함을 벗어나 조용히 초월적 시간을 가지라고 밤을 창조하셨다. 하지만 인간은 교만해서 그 밤 시간에 정신적 시간만 가진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포만감이라는 선물을 주셨다. 밥을 먹었으면 쉬라는 뜻이다. 초월적 시간을 가지라는 뜻이다. 그런데 교만한 인간은 밥을 먹으면서 영어단어를 외우고, 수학공식을 외우고, 일을 생각한다. 이렇게 살아서야 되겠는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과 우주 만물과 주고받는 삶, 이웃과 주고받는 삶, 초월적 시간 안에서 좀 더 예뻐지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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