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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 일치기도 주간에 만난 사람] 대한성공회 김근상 주교

서상덕 기자
입력일 2013-01-08 수정일 2013-01-08 발행일 2013-01-13 제 2828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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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중요한 것 내놓는 게 진정한 형제의 모습”
그리스도인 일치운동 가로막는 큰 장애물은
형제라 부르면서 그에 맞갖은 실천 부족한 것
함께 기도하며 하느님의 놀라우심 체험해야
대한성공회 김근상 주교
우리와 많이 닮았지만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주는 교회, ‘갈라진 형제’ 가운데 가장 끌리는 교회, 그러면서도 정확히 뭐가 같고 다른지 모르는 교회…. 성공회를 바라보는 눈은 얼추 비슷하다.

성공회는 로마교회가 동서로 분리되기 이전의 모든 교리를 인정하는 형제 교회다. 초대교회 전통으로부터 내려오는 사도신경과 니케아신경을 통해 신앙을 고백하는 등 많은 부분 가톨릭과 일치한다. 하지만 차이점도 없지 않아 가톨릭처럼 칠성사를 인정하면서도 성사를 집전하고 받는 사람의 신앙 정도에 따라 그 효력이 다르다는 인효성을 주장한다. 또한 교황 수위권과 무류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사제 독신 의무도 없다.

이러한 다름으로 인해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일상에서는 ‘갈라진 형제’들에 대한 무관심과 편견이 팽배해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으로 믿고 고백하면서도 서로 갈라져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위해 특별히 기도하는 ‘그리스도인 일치기도 주간’(1월 18~25일)을 맞아 형제 교회인 성공회와 함께 일치의 의미를 돌아보는 장을 마련한다.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교구장이자 의장주교로 활동하고 있는 김근상(바우로·61) 주교를 만나기 위해 찾은 서울 정동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주교관. 우리 고유의 건축 양식인 전통 한옥의 멋과 맛을 살리면서도 현대식으로 개량한 주교관은 성공회의 정신과 전통을 들려주는 듯했다.

“자신이 가진 기득권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것을 꼭 움켜쥔 채 형제에 대한 사랑을 얘기하는 게 가능한지부터 돌아봐야 합니다.”

김 주교는 인터뷰 내내 몇 차례나 ‘내려놓음’, ‘비움’의 자세를 역설했다. 모든 사람을 섬기러 이 땅에 오신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모습에서 그리스도인 일치운동의 의의와 필연성을 찾아야 한다는 확고한 소신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우리를 벗이자 형제라 부르신 예수님을 까맣게 잊고 지내는 건 아닌지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쓰다 남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중요한 것마저 내놓는 게 형제의 모습 아닐까요.”

‘형제’라고 부르면서도 그에 맞갖은 실천이 부족한 그리스도인들의 한계가 일치운동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라는 김 주교의 말은 여전히 일치의 울타리를 겉돌고 있는 형제 그리스도인들에게 맹성을 촉구하는 듯했다.

성공회의 중요 기도문 가운데 가톨릭과 유다인들을 위한 기도문도 포함돼 있다고 소개한 김 주교는 성공회와 가톨릭의 분리가 더 좋은 교회를 만들기 위한 긴장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밝혔다.

“성공회는 가톨릭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딱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바티칸과 관계가 없다는 점뿐입니다.”

하지만 이 점이 두 교회의 차이를 드러나게 하는 변곡점이기도 하다. 성공회에는 가톨릭교회의 교회법처럼 헌법 역할을 하는 법전 체계가 없다. 교회가 있는 지역의 문화와 신자들의 품성에 따라 독립성과 자주성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교회의 모든 결정은 의회를 통해 이뤄지는데, 주교단 의회와 성직자 의회, 평신도 의회 등 3개 의회에서 각각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통과된다.

“회의를 주재하는 의장으로서 유리한 면이 없지 않지만 제가 낸 의견이 부결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지닐 수밖에 없는 오류를 최소한으로 줄여보자는 뜻에서 채택한 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 ▲신경 ▲성사 ▲성직 등 지난 1888년 전 세계 성공회 주교들이 모인 람베스회의에서 결의된 4개 조항을 믿으면 어떤 교파와도 형제 교회로 상호 일치와 협력의 관계를 이루려 하는 성공회의 신앙은 겸손을 바탕으로 한 포용의 덕을 잘 보여준다.

“죽어 베드로 사도 앞에 갔을 때 그분께서 혹시 ‘주교가 뭐냐’고 묻지 않으실까요.(웃음) 하느님께서는 종교나 교회의 이름보다는 누가 당신 뜻대로 세상을 변화시켜 하느님나라를 만드는데 함께했느냐 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실 겁니다.”

전통을 중시하는 교회, 하지만 전통의 껍데기만 남고 정신은 사라져가고 있는 교회. 김 주교는 오늘날 이 땅의 그리스도교, 특히 개신교회가 겪는 총체적인 문제의 근원을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 희석되어 가는 현실에서 찾았다.

“세상의 가치기준과 잣대로 평가 받고 싶어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점점 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져가고 있습니다. 교회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합니다.”

세계성공회 종교간대화위원회 공동의장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한 김 주교에게는 반성이 주요 화두로 자리하고 있는 듯했다. 공격적이고 난폭하기까지 한 그리스도인들의 선교 모습을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닌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 김 주교는 “사랑이 없는 실천은 그 어떠한 숭고하고 아름다운 수식어를 붙이더라도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 없음을 드러내는 것밖에 안 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교회는 하느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존재라는 가치를 확산시킬 때 그리스도인들의 존재 의의가 드러납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존재 가치를 수없이 역설하는 김 주교는 같이 기도하는 모임에서 희망의 씨앗을 찾았다.

“지난 그리스도교의 역사 속에서 성령의 역사하심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이뤄져 왔습니다. 인간의 가치나 잣대가 아닌 주님의 손길에 온전히 맡겨드리며 함께 기도할 때 당신의 놀라우심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김근상 주교는

1952년 7월 29일 경기도 평택 안중리에서 태어난 김 주교는 서강대학교(화학과)를 거쳐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신학부(1977년)와 성공회 성미가엘 신학원(1979년)을 졸업하고 사제 서품(1980년)을 받은 특이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교무국장과 구리시 장애인종합복지관장 등을 역임했으며, 성공회 정의실천사제단 총무(A.P.C.R.J.),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청년위원장·통일위원장, 온겨레손잡기운동본부 상임대표 등으로 활발한 대사회활동을 펼쳤다. 2008년 1월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제5대 교구장 주교로 선출된 김 주교는 2010년 6월 대한성공회 제7대 관구장(의장주교)에 취임했다. 2011년 2월부터 세계성공회 종교간대화위원회(NIFCON) 의장으로 활동해오고 있으며, 지난해 11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대표회장에 선임돼 개신교의 일치운동을 이끌어오고 있다.

서상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