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173) 우리에게 남은 시간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2-12-31 수정일 2012-12-31 발행일 2013-01-06 제 2827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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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동창 신부님의 부친께서 갑자기 선종하신 때 일입니다. 워낙 건강하신 아버님이셨기에 믿기지 않았답니다. 저는 당시 수녀원 피정 지도를 하고 있었기에, 장례미사 후에야 선종 소식을 들었습니다. 동창 신부 아버님 장례미사를 함께 하지 못한 마음에 그 신부님과 가족들이 드리는 삼우미사는 함께했습니다.

그 후, 그 신부님을 만나 식사를 하는데 신부님은 아버지 선종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나도 아버지 임종 소식을 토요일에야 들었어. 목욕탕에서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는데, 곧바로 병원 영안실로 모시고 갈 수가 없었어. 사망 원인에 대해 목욕탕 측 과실은 없었는지, 경찰 입회 하에 복잡한 조사 및 서류들을 써야 했고, 사고 수습 등으로 정신이 없어서 하마터면 장례미사 날짜를 잡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지.

결국, 월요일 오전에 장례미사를 치를 준비를 했기에 연락할 겨를조차 없을 정도로 바빴어. 아무튼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모든 절차가 순조롭게 잘 돼 아버지를 병원 영안실에 모신 후, 장례를 치를 수 있었지.

그런데 당시 몇몇 분들의 증언에 의하면 아버지는 목욕탕 사우나 모래시계를 쳐다보시면서 선종하셨다고 해. 그 말이 늘 마음에 걸리더라. ‘왜 아버지는 모래시계를 보면서 돌아가셨나.’ 그런데 이제 좀 그 의미를 깨닫는 것 같아. 사실 우리 각자는 자기 삶 속에 모래시계를 가지고 있고, 모래시계의 모래가 다 흐르면 하느님께 돌아간다는 생각을 해. 그런데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모래시계의 모래가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잖아. 우리 아버지도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건강하셔서 아버지는 거대한 모래시계를 가지고 계신다고 생각했고, 100세 정도는 거뜬히 사실 줄 알았어. 아버지의 모래시계에는 아직도 너무 많은 모래가 남아있다고만 생각했던 거야.

하지만 그건 결국 우리의 생각이었고, 아버지의 모래시계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지. 아버지는 ‘우리의 시간은 오직 하느님 것’이라는 사실을 나와 가족들에게 유언을 남겨주듯 모래시계를 바라보면서 선종하신 것 같아.”

우리 삶이란 각양각색의,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모래시계와 같습니다. 하지만 날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의 시간, 모래시계 안에 모래가 흐르듯 그렇게 다 흐르면 다시 거꾸로 뒤집거나, 아니면 그대로 멈추거나 결국은 그분의 뜻입니다. 그분이 모래가 다 흐른 우리의 모래시계를 보고 ‘오늘’이라는 또 하루를 더 살라고 하신다면 뒤집어주실 것이고, 모래시계의 흐름이 멈추듯 오늘 하루가 생의 마지막이라면 그 분께 돌아가면 됩니다.

그러기에 나의 모래시계만은 영원히 흐를 것이라는 착각을 접고, 가끔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지금 할 수 있는 작고 소중한 일에 최선을 다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그 일로 인해 또 다시 내일로의 이음새가 될 수 있을지 모르잖아요.

‘언젠가’, 하지만 ‘곧’ 멈출 수 있는 우리 각자의 모래시계! 어쩌면 그 시계가 있으므로, 내가 지금 움켜쥐고 있는 것을 놓을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나의 모래시계는 지금의 내 모습 안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시계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