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대중문화 속 성(性) (20) 섹스는 정말 게임인가?

이광호(베네딕토· 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 운영위원)
입력일 2012-10-30 수정일 2012-10-30 발행일 2012-11-04 제 2818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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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는 게임’. 유명 가수가 2001년 공표한 말이다. 그가 만든 거의 모든 문화상품의 심층을 흐르는 주제 의식이자, 그의 세계관이다. 사회적 논란이 일자, 처음 만난 남녀의 섹스를 옹호하는 말이 아니라, 성인인 연인끼리 섹스를 즐기라는 의도로 말한 것이라고 수습했다. 정말 성인이 된 연인은 게임을 하듯 마음껏 섹스를 즐겨도 되는 걸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섹스는 게임’ 이라는 생각의 근원을 알아야 한다.

‘섹스는 게임’은 포르노를 많이 봤을 때 무의식적으로 강화되는 생각이며, 섹스를 이용해서 돈을 벌려는 포르노 제작자의 성적 가치관이다. 성숙한 인간이 깊은 고뇌를 통해 깨닫게 되는 고귀한 가치가 아니라, 포르노에 노출된 초등학교 남학생도 쉽게 내면화하고 표현할 수 있는 생각이다. 또한 성범죄를 죄의식 없이 저지르는 사람들의 가치관도 바로 ‘섹스=게임’인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본래 포르노의 성 의식인 ‘섹스=게임’이 그 가수 겸 제작자의 가치관이 되어 공표되었고, 그가 만드는 문화상품의 주제의식이 되었다. 또한 그의 노래를 일용할 양식으로 향유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무의식에 ‘섹스=게임’이 고스란히 흘러들어가 자리를 잡아 버렸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그는 대한민국 최고의 성교육 선생이 된 것이다.

매스미디어 사회에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고전 명작이 아니라, 자극적 영상물에 대한 접근성이 월등하게 좋다. 고전은 멀고 문화상품은 가까운 것이다. 성 의식은 어려서 자주 접하는 내용에 의해서 무의식적으로 형성된다. ‘섹스=게임’은 포르노가 만연한 이 시대의 시대정신이며 청소년들의 내적 정서다. 기획사는 이 암묵적 욕망을 충족시키면서 인기와 돈을 얻는다. 이렇듯 왜곡된 가치관이 침투력 강한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무의식을 파고들 때 발생하는 문제는, 그 규모가 거대하여 인식하기도 쉽지 않다.

섹스는 정말 게임인가? 섹스가 게임이라면, ‘러시안 룰렛’처럼 위험한 놀이임을 알려주고 싶다. 6발 권총에 총알 한 발 넣고, 머리를 향해 방아쇠 당긴다. 죽을 확률은 1/6이다. 현재의 주류 성교육인 콘돔의 임신 예방확률은 85%이며, 15%의 임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당첨되면 십중팔구는 낙태다. ‘러시안 룰렛’이나 ‘콘돔 사용 성관계’나 한 생명 죽는 확률은 비슷한 것이다.

문화상품은 성관계까지 가는 길만 환상적으로 보여줄 뿐, 그 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철저하게 감춘다. 남자친구와 여자친구가 밤새도록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해보라! 임신이 되나? 섹스는 결코 게임이 아니다. 섹스는 게임! 거짓말이다. 한산섬 달 밝은 밤 피리 소리에 시름 깊으셨던 그 분처럼, 기획사가 만든 노래는 필자의 애를 끓는다.

〈블로그 ‘사랑과 생명의 인문학’ http://blog.daum.net/prolifecorpus>

이광호(베네딕토· 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