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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오 신부의 사랑의 둥지 행복의 열쇠 (58) 송영오 신부의 가정이야기 ⑦ 부모님의 새살림

송영오 신부 (수원교구 가정사목연구소 소장)
입력일 2012-09-18 수정일 2012-09-18 발행일 2012-09-23 제 2813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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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늘 갈 수 있는 곳, 우리가 없으면 우리를 그리워하는 곳, 우리가 죽으면 슬퍼해주는 곳, 바로 우리의 가정입니다.

보통 분가(分家)하면 부모와 함께 살던 자식이 살림을 나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우리집은 반대로 부모님이 새살림을 나셨다.

50년을 넘게 장호원 시장통에서 그릇가게를 하시며 3남 1녀를 키워내신 부모님이 이제 남은 삶을 좀 더 편안하고 자유롭게 살게 해 드리고 싶은 것도 있지만, 뇌출혈로 세상에서 작은형과 사별을 하고도 결혼해서 지금까지 25년 이상 부모님을 모셔준 고마운 형수도 편안하게 지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내리신 부모님의 결단이시다.

사람들에게 부모를 내쫓는 것 같이 보일까 걱정이 되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홀로된 형수님도 이젠 숨 좀 편히 쉬며 사는 것이 좋겠고 부모님도 여생을 더 이상 가게에 묶여 그렇게 살게 해 드릴 수가 없기에 단호하게 결정을 권해 드렸다. 우리 가족들이 서로 편안하게 하는 방법이 형수를 분가시키는 것보다 부모님을 분가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어머니는 평생을 그릇가게를 지키시면서도 마음에 드는 그릇 한 번 못 써보시고 늘 깨져서 남는 그릇, 숫자가 안 맞아서 팔 수 없는 그릇들만 가져다 쓰셨다. 대장간에 쓸만한 식칼이 없다는 말처럼 손님이 많이 오면 같은 문양이나 빛깔이 맞는 그릇이 없어 창피하다고 하시지만 늘 여전히 팔리지 않는 그릇들만 가져다 쓰셨다.

그런 어머니가 요즘 신혼살림 장만에 흥이 나신 것 같다. 인테리어를 하는 큰아들이 부모님이 들어갈 집을 수리하고 시집간 여동생이 소파를 마련하고 나는 가전제품을 맡아서 준비해 드렸다. 부모님의 새살림으로 가족들이 오랜만에 마음이 하나가 되어서 고맙고 감사하다.

이제 어머니는 이곳저곳으로 모임을 찾아 나서시며 인생의 말년을 즐기실 수 있으실 것인데 문제는 아버지이시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기시며 늘 함께 하는 식사와 술을 좋아하시는 아버지가 답답한 아파트의 생활을 어떻게 하실 것인지? 50년을 시장통에서 그릇가게와 함께 살아온 지난 세월을 뒤로하고 늘그막에 새로운 삶을 시작하실 아버지가 은근히 걱정된다.

청소기와 세탁기를 돌리는 방법도 아셔야 하고 전기밥솥과 전자레인지 사용법도 배우셔야 하고 여러 가지 걱정이 되지만 우리 아버지는 젊어서부터 300CC 독일제 오토바이를 타시던 멋쟁이셨기에 노년에도 모든 것을 아름답게 이겨내실 것이라 믿는다. 늦게라도 혼자된 불쌍한 형수를 위해, 그리고 부모님 스스로를 위해 훌륭한 선택을 해 주신 아버님이 고맙고 감사하며 자랑스럽다.

입주하시고 몇 개월이 지나 아파트에 가보니 아버지는 벌써 아파트 노인회 회장이 되셨고 입주 신고식으로 노인들에게 운동복을 한 벌씩 해드린 모양이시다. 노인정에 나가셔서 이 사람, 저사람 사귀시며 술 한 잔씩 돌리시며 당신의 존재를 알리고 계셨다.

역시 우리 아버지는 적응도 빠르시고 장사를 하셔서 그러신지 사람들을 사귀시는데 남다른 노하우가 있는 것 같다.

부모님이 따로 사셔서 큰형이나 시집간 여동생, 그리고 나도 집에 들르기가 편안하고 전보다는 훨씬 갈등이 적어진 것 같아 감사하다. 요즘은 내가 딸이 된 기분이다. 어디든 가서 좋은 먹거리가 생기면 어머니 생각이 나고 여기저기서 이것저것을 챙기게 된다.

이제 젊은 날과는 반대로 나날이 바쁜 어머니보다 소일거리가 없어서 집에만 계시려는 아버지를 위해 여행 계획이나 자주 세워야 할 것 같다.

송영오 신부 (수원교구 가정사목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