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송영오 신부의 사랑의 둥지 행복의 열쇠 (57) 송영오 신부의 가정이야기 ⑥ 바른 생활과 즐거운 생활

송영오 신부 (수원교구 가정사목연구소 소장)
입력일 2012-09-11 수정일 2012-09-11 발행일 2012-09-16 제 2812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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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늘 갈 수 있는 곳, 우리가 없으면 우리를 그리워하는 곳, 우리가 죽으면 슬퍼해주는 곳, 바로 우리의 가정입니다.

장호원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소신학교에 입학하려고 했지만, 누구보다 개방적인 아버지는 일찍 매이는 생활보다 좀 더 세상을 배우는 것도 바람직하다며 수원에 있는 Y고등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해 주셨다. 돌아보면 3형제 중에 유일하게 고향을 떠나 3년 동안 기숙사 생활을 하며 많은 친구들을 만났고 재미있던 시간이었다.

부모님은 기숙사에서 공부만 열심히 하는 모범생이 될 것을 기대하셨지만 낯선 타향에서 정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기란 쉽지 않았고 어쩌면 고향을 떠난 고등학교 시절부터가 나의 부초 같은 떠돌이 인생은 시작되었던 것 같다.

개신교 미션스쿨이었던 고등학교에서 여러 가지 종교적 갈등도 경험했고 시골과는 다른 높은 학력 수준의 벽 속에서 수많은 좌절을 맛보아야 했지만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런 고등학교 시절이 추억 속으로 사라져 간 나에게 어느날 동창들이 찾아왔다. 가톨릭 사제라는 특별한 상황 속에서 친구들을 자주 만나기란 어려운 일인데 너무나 정겨운 만남이었고 내가 성직자라고 깍듯하게 “신부님, 신부님”하고 부르는 소리가 듣기 거북했지만, 친구들은 고등학교 동창 중에 신부가 있다는 것이 몹시 자랑스러운 모양이다.

오랜만의 만남 속에 30년의 세월을 다 얘기 하기엔 시간이 너무나 짧았지만, 모두가 반가웠고 순수하고 행복한 모습들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고등학교 시절 모범생이고 공부를 잘하던 바른 생활의 친구들은 대부분 국가 공무원이나 고위 공직자들이 되어 있었고 이런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들과는 달리 가끔은 수업 중에 ‘땡땡이’를 치고 ‘짤짤이’를 하다 걸려서 벌을 받고 학생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들(담배 피우고, 술 마시고,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를 즐겨보며, 여학생들과 미팅하고 산으로 강으로 놀러다니는 등)을 즐기던 소위 놀던 친구들은 대부분 개인사업을 하는 사장이 되고 큰 보험회사의 본부장이 되어 있었다. 사교성이 많아서 사람들과 잘 사귀고, 아마도 노는 것도 잘해서인지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다는 것이었다.

물론 학교를 다닐 때는 공부를 잘해야 하고 바른 생활을 해야 하지만 추억은 공부와는 다른 즐거운 생활 속에서 더 많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바른 생활? 즐거운 생활? 나는 어디에 속했을까?를 떠올리며 조용히 웃음을 짓는다…. 후후후)

꿈많은 고교 시절, 대학을 가기 위해 공부도 중요했지만 어디선가 얻어맞고 들어온 친구를 위해 주먹을 불끈 쥐며 싸움판으로 뛰어들던 의리가 있었고, 내용도 잘 모르는 팝송을 흥얼대며 배꼽 바지로 멋을 부리고 반월저수지에 배를 띄우고는 도도하게 흐르는 달빛 아래서 시조를 하나씩 읊으며 몰래 술잔을 기울이던 문과생의 기개(氣槪)도 넘쳐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우리에겐 멋이 있었고 슬프면 울고 기쁘면 함께 웃어주는 다정한 우정이 가득했던 시간이었다. 솔직히 사제로 사는 나는 바른 생활의 친구들보다 즐거운 생활을 하던 친구들에게 더 정감이 가는 것은 어쩌면 세상을 사는 인간적인 맛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요즘 학생들은 공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자신의 꿈도, 취미생활도 잃어버린 채 모두가 바른 생활을 강요받고 과외와 학원으로 정신이 없다. 그저 눈앞에 대학입학이라는 목표를 가지고는 모두가 경쟁자요, 라이벌 의식 속에 갈수록 사랑도 우정도 없는 식물인간처럼 너무나 무미건조한 일상 속에 파묻혀 살아간다.

세상은 공부를 잘하는 바른 생활도 필요하지만, 멋과 의리를 아는 즐거운 생활도 필요하다. 어쩌면 예수님도 시대의 반항아로서 율법적 바른 생활보다 소외된 세리와 창녀들의 친구로 즐거운 생활을 하며 그들의 공통과 아픔을 함께하신 정감있는 분이셨던 것 같다.

송영오 신부 (수원교구 가정사목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