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생명윤리] 33 생명윤리와 윤리원칙 2

소병욱 신부ㆍ대구 효성가톨릭대교수
입력일 2012-09-06 수정일 2012-09-06 발행일 1995-12-03 제 1981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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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적 협조 경우 정당화 되기 쉬워
5. 정당한 협조(legitimate cooperation)의 원칙

우리는 지난 연재 23에서 스스로는 낙태수술에 동의하지 않으나 근무하는 병원에서 수술팀의 일원이 되지 않을 수 없는 의사의 예를 들어보았다. 이 의사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이러한 경우 우리는 정당한 협조의 원칙을 가지고 양심의 판단을 하고 그 판단에 따르는 행위를 해야 한다.

원칙적으로 타인의 행위가 비윤리적일 때 그 행위들에 직접 협조하거나 그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다른 일에 협조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악에의 협조는 우선 두가지로 나눌수 있다. 그 하나는 본질적 협조(formal cooperation)로서의 악행에 직접 참여하거나 악행을 권고, 보조해 주며 상담을 해주는 일이다. 즉 의도적으로 나쁜 목적을 가지고 협조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질료적 협조(material cooperation)로서 나쁜 의도는 없었으나 결과적으로 악행에 협조하는 것이다.

질료적 협조는 그 양상에 따라 직접적인 질료적 협조(immediate material cooperation)와 간접적인 질료적 협조(mediate material cooperation)로 나눌수 있다. 직접적인 협조와 거의 비슷한 정도의 협조이다. 즉 자신의 마음과는 달리(하는 수 없이, 용기있게 거부하지 못하고)직접적으로 협조하는 것으로서 윤리적 책임도 본질적 협조의 그것과 비슷하다. 위에서 해당한다. 개인적으로 낙태에 동의하지 않으나 수술팀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본질적인 악행협조와 비슷한것이다.

간접적인 질료적 협조 역시 그것이 악에의 협조인 이상 최대한 피해야 하나 여기에는 분별력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 협조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조건하에서는 정당할 뿐 아니라 가끔은 필수적으로 해야만 할 경우도 있기 때문이며, 그러한 협조마저 하지 않을 경우 더 큰선을 실천하지 못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지난주 연재 참조). 그 조건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협조가 간접적일 수록 정당화되기 쉽다. 예를 들면 모르핀(morphine)을 생산하는 사람은 누가 그것을 마약으로 이용하더라도 그에 대한 책임은 없다. 왜냐 하면 그의 의도는 진통 등 의학적 사용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르핀을 더욱 가까이 협조하기 쉬우므로 생산근로자 보다 더욱 많은 주의를 기울여서 법규정을 지켜야 한다. 구입자가 오용할 경우 판매자의 윤리적, 법적 책임이 크기 때문이다. 둘째, 악에 협조함으로써 얻게 된 선이 그 악의 정도를 능가해야 한다. 예를 들어 낙태수술 전문병원에서 청소를 하는 부인이 그 직업 외에 다른 직업을 구하기 어려울뿐 아니라 자신과 가족의 생계가 그 자신에게 달려 있을 경우, 그 부인 스스로는 낙태에 동의 하지 않고 하는 수 없이(직업상)낙태수술 뒷처리를 한다면 그 정도의 협조는 인정될 수 있다. 왜냐 하면 그 협조가 본질적인 협조가 아닐 뿐 아니라 그녀의 질료적 협조는 간접적 협조이며, 실직은 자신과 가족들에게 중대한 일이기 때문이다. 셋째, 공동체화 관련된 일에 있어서 가장 멀고도 간접적인 질료적 협조(remote material cooperation)는 해야만 하는 경우들이 있다. 따라서 그것을 하지 않으면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omission) 죄를 범하게 된다. 선행을 이렇게 볼때 한가지 행동이 보다 작은 악을 빚는 결과도 만들어 내지만 더 크고 좋은 목적으로 수행될 때 그 행동을 정당화시키는 이중결과의 원칙과 위 정당한 협조의 원칙은 서로 연관됨을 알수 있다.

6. 신의와 통교(confidentiality communication)의 원칙

오늘날 같은 복합적인 사회에서는 모든 진실이 한 개인의 노력만으로써는 얻어지지 않는다. 상호 긴밀한 사회적 협조로써 생명보호의 정보가 교환되는 것이다. 특히 환자에 관한 모든 정보의 교환, 의료진과 환자 사이의 통교와 신의. 의료진 사이의 통교는 필수 불가결하다. 이를 위해서는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 정보를 가진 이들끼리의 성실한 접촉, 정보의 분석, 통교의 실패를 회복하기 위한 끊임없는 반성 등이 요구된다.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려면 우선 관계자들끼리 감정적 관계가 좋아야 한다. 따라서 모든 조직내에서 감정적 상호개방은 매우 중요하다.

신의와 통교의 원칙에서 보면 의료진은 환자에 대한 봉사직 수행에 있어 다음과 같은 책임이 있다. 환자와 감정적, 이성적 차원에서의 신뢰를 구축하고 보존할 책임은 우선적으로 의료진에게 있다. 또한 관계 의료진에게 정당하고 확실한 양심판단을 할 수 있도록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올바른 정보를 성실하게 제공할 책임이 있으며, 나아가서 거짓과 잘못된 정부를 막을 책임도 있다. 또한 의료진은 합법적이지 않은 사람들에게 환자에 관한 비밀을 유지할 책임이 있다. 비밀을 지켜주지 못할 경우 의료진과 환자 사이의 신뢰는 파괴되고 치유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스도인 의료진이 직업상의 신뢰를 유지하는 것은 환자에 대한 사랑과 그의 인간적 존엄성을 드러내는 일이다.

소병욱 신부ㆍ대구 효성가톨릭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