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생명윤리] 32 생명윤리와 윤리원칙 10

소병욱 신부ㆍ대구 효성가톨릭대교수
입력일 2012-09-06 수정일 2012-09-06 발행일 1995-11-26 제 1980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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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결과의 원칙 윤리적 갈등 동시 발생할 때 적용
4. 이중결과(double effect)의 원칙

우리는 지난 연재 23에서 자궁암에 걸린 임산부의 예를 보았다. 이 경우 산모를 살리기 위하여 자궁을 적출한다면 그 한가지 행위를 통하여 두가지(이중의)결과가 나올 수 있다. 하나는 좋은 결과로서 산모를 살리는 일이고 또 다른 하나는 나쁜 결과로서 자궁안의 태아가 죽는 것이다. 이중결과의 원칙은 이처럼 선한 결과를 의도하는 한가지 행위를 통하여 안한 결과도 동시에 일어날 것이 예상될 때 적용하는 윤리원칙이다.

우리는 살다보면 이러한 가치의 충돌 때문에 고민하는 때가 자주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선한 결과를 의도하여 어떤 행동을 하려고 하나 부수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는 나쁜 결과 때문에 그 행동을 해야 할지 망설일 때는 다음 몇가지 조건이 채워질 경우 그 행위를 해도 좋다.

첫째, 직접적으로 의도한 목표가 본질적으로 비윤리적이지 않아야 하고 하려는 행위 그 자체는 좋거나 윤리적으로 중성적이어야 한다(시도하려는 행위 자체가 벌써 악한 행위라면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나쁜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

둘째, 행위자의 의도가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것이어야 하며 나쁜 결과는 가능한 한 피하려는 뜻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쁜 결과도 동시에 일어날 것이 간접적으로 예상되는 것은 괜찮다.

셋째, 의도한 좋은 결과는 예상되는 나쁜 결과보다 더 크거나 같아야 한다(예상되는 나쁜 결과가 선보다 더 크면 안된다).

넷째, 의도한 좋은 결과는 나쁜 결과와 동시에 일어나거나 적어도 즉각적으로 뒤따라야 한다. 즉, 나쁜 결과후에 좋은 결과가 일어나서는 안되다. 좋은 결과가 나쁜 결과 덕분에 일어나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 이중결과의 원칙을 적용할 때 의사는 태아가 죽는 것이 예상되더라도 암에 걸린 자궁을 적출해내는 수술을 할 수 있다. 그는 산모를 살리는 좋은 결과를 직접적으로 의도했고 자궁안의 태아가 죽는 것은 죽이려는 의도없이 간접적으로 예상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연대 26에서 제시한 예(소프라노 음성을 보존하기 위하여 소년을 거세하던 관행)의 경우는 위와 다르다. 거세행위 이후 일러나는 여러 가지 비정상적 결과 중 하나가 소프라노 음서의 보존이다. 소프라노 음성 그 자체가 곧 좋은 합창은 아니다. 그것을 이용하여 많은 연습을 한 다음 그 결과 비로소 좋은 음악의 창조에 기여할 수 있고 나이가 많아서도 합창단에 남아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좋은 결과는 거세행위의 나쁜 결과(남성의 비정상적 목소리)를 통하여 한참 후에(동시가 아니라)일어난 것이다. 거세행위는 좋은 합창과 생계유지라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비정상적 목소리의 창출이라는 나쁜 수단을 통하여 얻어내기 위한 행위이다. 따라서 과거의 교회 합창단에서 행했던 거세행위는 본인의 동의가 있었다 해도 악한 행위임에 틀림없다 (악한 행위를 할 자유는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당사자가 동의를 하는 것도 죄악이다). 그러나 암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그를 거세했다고 하면 그러한 거세행위는 그것 자체로 치료행위요 그 치료행위와 동시에 치유라는 좋은 결과가 함께 일어나기 시작한다. 따라서 그 거세행위는 윤리적으로 가능한 것이다. 위 두 거세행위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치료행위로서의 거세는 치유라는 서만 의도되었고 거세행위의 비정상적 결과들은 오직 간접적으로 허용만 되었다. 또한 이 경우는 인격 전체의 선(치유)을 위하여 신체의 일부가 손상 당할 수 있다는 전체성의 원칙에도 부합되고 있다. 그러나 첫 번째 경우 행위자는 거세라는 악을 비록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의도했다고 하더라도 간접적으로 허용한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의도한 것이다. 이 이중 결과의 원칙은 한가지 행위안에 가치와 비가치가 동시에 포함되어 있거나 그 두가지 결과를 동시에 빚어 낼 것이 예상될 때의 윤리적 해결책 중 하나이다. 어떤 이들은 보다 작은 악이 포함된 행위는 보다 큰 선을 실현할 경우 할 수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행위는 작으나마 악한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선한 행위」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 역시 이러한 이론을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그것을 거부하면 윤리적 안전주의(tutiorism), 윤리적 결벽(purism), 엄격주의(rigorism)에 빠져서 비록 나쁜 결과도 포함 되지만 가장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선한 행위를 거의 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며 따라서 의무의 불이행, 궐함(omission)의 죄, 또는 책임의 거부에까지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성 토마스도 말하지 않았던가 「너무 문지르면 피가 나는 법」이라고. 물론 이 말은 사람은 누구나 본질적으로 비윤리적인 행위는 인간 행위 전체의 기본적 방향을 악하게 한다는 사실을 잘 알아 그것을 최대한 피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해두고 하는 말이다.

이중결과의 원칙은 이와 같이 윤리적 갈등을 일으키는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로 19세기의 윤리학자들이 정립한 것이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살펴 볼 때 이 원칙에는 문제점 또한 없지 않다는 사실을 지적해 둔다.

소병욱 신부ㆍ대구 효성가톨릭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