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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윤리] 31 생명윤리와 윤리원칙 9

소병욱 신부ㆍ대구 효성가톨릭대교수
입력일 2012-09-06 수정일 2012-09-06 발행일 1995-11-19 제 1979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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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판단은 책임 뒤따라
이미 소개한 대로 미국 센트루이스 (St. Louis) 대학에 본부를 두고 있는 가톨릭 보건협회 (CHA. The Catholic Health Association of the United States)에서 주도적 활동을 하고 있는 도미니꼬회의 저자들은 (Ashley, O’ Rourke) 자신들의 저서 (Health Care Ethics, 1982년: Ethics of Health Care, 1986년)에서 다음과 같은 생명윤리 원칙들을 제시하고 있다.

1. 바르고 확실한 양심형성

생명윤리상의 판단을 하려는 사람에게 전제되는 것은 항상 양심판단을 바르고 정확히 하려는 마음가짐이다. 그는 먼저 주어진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고 그 상황과 관련된 윤리규범들 (국법, 교회법, 자연도덕율…)을 파악해야 한다. 이를 근거로 그는 바르고 확실한 양심판단을 하고 그 판단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즉, 어느 상황에서 바르고 확실한 양심이 형성되었으나 그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금전적, 학문적 이기주의에 따라 행동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자신의 양심적 판단의 결과에는 전적으로 책임지려는 성숙성 또한 요구된다 (연재23~26참고).

2. 사전 동의

자신의 건강에 대한 기본적 필요와 책임은 각 개별인격에게 있으므로 어떠한 육체적, 심리적 실험 및 치료행위도 환자의 자유스런 동의없이 실시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환자가 동의할 능력이 없는 상태일 경우 그의 유익을 위해 일하는 가족 또는 법적 후견인은 가능한 한 환자의 원의를 합리적으로 추정하여 대신 동의를 할 수 있다. 이 원칙은 특히 의학 윤리상의 판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의료진과 환자와의 관계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며 의사 결정에 있어 환자측의 자유와 의지, 자율성, 양심형성, 판단을 도와주는 일이며 그로부터 의료진과 환자 및 그 가족들간의 신뢰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환자측이 자유롭고도 책임있는 동의를 하도록 하자면 의료진은 치료 (또는 실험) 행위의 내용 (nature), 그로부터 예상되는 유익 (benefits), 부수적인 위험 (risks), 또 다른 치료방법 (other choice) 등에 대하여 참으로 친절하고 자세한 고지를 해 주어야 한다. 물론 여기에는 환자측의 지식정도, 이해도를 고려해야 한다. 의료진은 치료 방법에 대한 자신들의 판단에 대해 설득은 할 수 있되 할 수 있는 한 자유스런 동의를 할 수 있도록 위협, 억압, 강제, 유인 등은 당연히 피해야 한다. 또한 환자측이 시간적 압박감을 느끼지 않도록 가능한 한 충분한 시간을 주도록 하며 나아가서 환자가 감정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동의를 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해야 한다.

물론 이 같은 친절과 배려는 쉽지 않다. 원칙과 현실의 괴리를 자주 체험하기 때문이다 (의료진의 과로, 의료사고, 브로커의 개입, 소송…). 그럼에도 불구하고 봉사적 전문직에 종사하는 의료인들은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끊임없는 동정심과 사랑으로 이 원칙을 완벽히 지키도록 자신을 채찍질해야 한다 (사랑과 동정없이 남의 고통에 익숙해져서는 이 원칙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이 같은 내용의 사전동의는 많은 유익을 가져다 준다. 의료진의 판단은 의학적 효과 및 경제적 이익의 발생을 기준으로 이루어 지기 쉬우므로 환자의 다양한 상황 (인간관계, 경제, 신분, 가족상황)을 고려하지 못할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자연스런 사전동의를 얻기 위해 위와 같은 배려를 해줄때 환자와 그 가족들이 자신들의 모든 상황을 고려하여 합리적 판단을 하도록 도와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환자들은 혹시 있을지도 모를 의료진 (일부!)과 이익단체 (의료기구회사, 제약회사, 병원… ) 간의 결탁으로부터 비롯되는 불이익 (의약품 실험의 대상… )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 또한 이런 공적인 과정을 거칠 때 치료와 관련된 모든 사안들이 공개리에 진행될 수 있다. 그러나 사전동의가 필요한 가장 중요한 근거는 개인의 인격존중에 있다. 자신의 건강과 생명에 대한 결정권을 존중하고 자율성을 제고해 주는 일은 인격주의적 생명윤리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3. 윤리적 분별

생명윤리상의 결정에 있어서도 참으로 분별력 있는 양심의 결정을 해야하되 그 근본적 기준은 하느님의 뜻과 인격의 존엄성에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 두가지 기준에 본질적으로 반대되는 것으로 판단되는 결정은 무엇이든 피해야 한다. 또한 이 두가지 기준을 실천 할 수 없게 만드는 동기와 환경까지 피해야 할 뿐 아니라 나아가서 이 두가지를 실천할 수 있는 가능한 행동을 적극적으로 선택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예를들면 환자에게 위험한 수술을 권해야 하는 가톨릭 의료진은 먼저 자신에게 맡겨진 환자에 대한 하느님의 뜻과 인격적 존엄성을 의식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환자의 생명권을 보장하는 것 자체가 바로 하느님의 뜻이고 그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이므로 그의 이 기본권에 반대될 수도 있는 실험적 시술에 대한 유혹은 즉시 물리쳐야 할 뿐 아니라 실효성 없는 처지 및 과도한 진료는 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의사는 자신의 판단이 경제적 이유, 명예의 제고 등 이기적 동기나 상황에서 이루어지지 않는지 항상 반성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그는 환자를 참으로 존중하려는 마음과 함께 가장 유익한 시술을 베풀게 되고 따라서 자신과 환자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소병욱 신부ㆍ대구 효성가톨릭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