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주말 명순례지 특선] 20 부산 오륜대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12-09-03 수정일 2012-09-03 발행일 1995-10-08 제 1973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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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뭉클 다가오는 박해의 현장
김대건 신부 횡대횡친필서간 소장
박해당시 각종 형구도 고증 복원
수백 성모상 갖춘 성모성년 전시실 독특
가톨릭신문과 함께 떠나는 가족 성지순례
여름 휴가철이면 많은 사람들이 찾곤 하는 제2의 항구 도시 부산에는 한국 천주교회의 초석을 이룬 순교자들의 귀중한 유물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지난 82년 개관한 오륜대 한국 순교자 기념관은 소장품으로 볼 때 가히 한국 최고의 순교자 기념관이라 할만하다.

뱃고동소리 울리는 항구, 싱싱한 해물들이 지나는 사람들을 유혹하는 자갈치 시장, 파도가 철썩이는 해운대 해수욕장을 마다하고 흐르는 땀을 씻어내면서 순교자들의 숨결을 찾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부산역에서 전철을 타고 30분 남짓이면 장전역, 여기서 버스로 15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오륜대 한국 순교자 기념관은 무성한 숲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입구를 들어서면 왼편에 예수상이 순례자들을 반기며 서있고 그 너머로 기념관과 성당, 그리고 그 뒤로 야트막한 산비탈에 우거진 수풀이 시원하다.

하얀색의 낮은 건물에는 오륜대 한국순교자 기념관이라는 명패와 함께 「순교자의 후손은 살아 있다」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와 자랑스런 신앙선조에 대한 뿌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기념관에 이어진 성당 앞에 있는 작은 목선 하나가 눈에 띄는데「라파엘호」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배는 김대건 신부가 서품을 받고 페레올 고, 다블뤼 안 신부를 대동하고 상해에서 제주도로 표류 끝에 강경 황산포에 상륙한 배를 본따 만든 모형이다.

그 옛날 이 땅에 복음의 빛을 건네주기 위해 거친 풍랑을 헤쳐오는 김신부의 뱃전에 선 모습이 눈에 선한데 바로 그 옆에는 많은 천주교인들이 처형된 돌 형구가 놓여있어 당시의 박해 상황을 한마디로 이야기해 주는듯하다.

마치 맷돌 같이 가운데 구멍이 뚫려있는 이 돌 형구는 병인박해 당시 천주교인들의 학살로 민심이 동요되자 정치적으로 불안을 느낀 대원군의「소리 없이 죽이는 기계」를 만들라는 명에 의해 고안된 것이다.

수많은 교인들이 목에 밧줄이 매인 채 구멍을 통해 반대편에서 잡아당기는 우악스런 손길에 의해 목숨을 앗기곤 한 것이다.

성당을 왼편에 끼고 돌아가면 십자가의 길과 로사리오의 길이 나타나고 그 윗쪽으로 동래 출신 8명의 순교자 무덤이 깨끗하게 정돈돼 있다.

80여세의 노구로 사형을 당한 이정식 요한, 그의 아들 이관복 프란치스코, 이관복의 처 박소사 마리아 등 일가를 포함한 8명의 순교자는 병인박해의 서슬 아래 1868년 6월 부산 수영장대(水營將臺ㆍ현 부산 광안동 수영 중학교 뒤)에서 군문효수(軍門梟首)의 극형을 받았다.

이들 8명중 이정식의 가족 4명의 무덤은 본시 부산 동래구 명장동 산96번지 갈멜수녀원 뒷산 등에 묻혀 있다가 1977년 9월 19일 현재의 한국 순교자 기념관 뒷동산으로 이장됐고 다만 나머지 4명의 무덤은 아직 찾지 못해 기념비만을 세워두었다.

오륜대에는 바로 이들의 순교를 기념해 그 1백주년 되는 해인 1968년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분원이 설치됐고 순교복자 기념관 및 기념성당이 아울러 건립되었다. 그 중에서도 1982년 완공, 9월에 개관한 기념관은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창설 초창기부터 윤병현, 홍은순 수녀 외 많은 수녀들이 수집, 연구하고 간직해온 순교자들의 유물, 서책(書冊) 및 형구 등이 풍부하게 전시돼 있어 양이나 질적인 면에서 매우 우수한 기념관으로 정평이 나있다.

모두 3층으로 이루어진 전시실에는 1층에 순교자의 유물과 자료가 보관돼 있고 2층에는 성모성녀측별전시실, 선교2백주년기념실, 민속자료실이 설치됐고 3층에는 김인순(누갈다) 기증품 전시실이 마련돼 있다.

1층 전시실 가운데에는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고안된 대들보 사형들이 있어 당시 참혹한 광경을 연상케 한다. 또 죄인을 참수할 때 사용한 칼인 행형도자, 태형이나 장형을 행할 때 쓴 태형태, 수십 종의 곤장, 목에 쓰는 칼 등이 철저한 고증에 의해 그 형태가 복원돼있다.

김대건 신부의 유품 중에는 무덤에 덮었던 횡대, 친필서간 등이 있고 다산 정약용(세자 요한), 성장시메온 주교와 권일신(프란치스꼬 사베리오)의 십자가 등도 눈에 띈다.

또 한면에는 소학, 다른 한면에는 교리를 적어둔 순교자 윤봉문의 위장교리서 등 희귀한 자료들이 풍부하게 소장돼 있다.

성모성년특별전시실에는 수십 수백의 성모상이 눈길을 끄는데 이중에는 필리핀의 수백년된 성모상에서부터 강화도 무명순교자 무덤에서 발굴된 성모상과 일본의「마리아 관음상」등 독특한 성모상들이 다수 있어 이채롭다.

또 2층과 3층에는 왕실관계 의상과 장신구, 민속자료 등도 풍부하게 전시돼 있기도 하다.

역사의 숨결이 살아있는 순교자 기념관을 둘러보고 나서는 순례자는 자연스레 바로 옆의 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순교자들의 유해가 모셔진 성당 안에는 한국순교복자수녀회의 수녀들이 한시도 자리를 비우지 않고 순교자들의 믿음과 혼을 기리며 기도와 묵상에 빠져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성당에 들어선 순례자들은 바로 자기 자신이 순교자들의 후손이고 그분들의 순교로 뿌리내린 이땅의 신앙을 키우고 지켜나갈 당사자들임을 가슴 속 깊이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부산에 도착해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에는 지하철로 장전역까지 가서 역 바로 앞에 있는 마을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승용차 역시 장전역까지 가서 기찰파출소가 있는 골목으로 들어서 약 1킬로미터 정도만 가면 오른편으로 기념관 정문이 보인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