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주말 명순례지 특선] 17 나바위

리길재 기자
입력일 2012-08-30 수정일 2012-08-30 발행일 1995-07-16 제 1962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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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 첫미사 봉헌지
축복받은 성지… 한국교회의 주춧돌
나바위성당, 동ㆍ서문화 절묘히 조화
드망즈 주교 연례피정한 「망금정」 말끔히 단장
가톨릭신문과 함께 떠나는 가족 성지순례
7월이 되면 잊을 수 없는 인물이 떠오른다. 바로 한국인 최초의 성직자이자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인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가 그 주인공이다.

특히 금년은 김대건 신부가 사제서품을 받은지 1백5주년이 되는 의미 있는 해로 사뭇 7월이 남다르게 다가오는 해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7월에 떠나는 첫 주말 성지순례를 전라북도 익산군 망성면 화산리에 있는 사적지 「나바위」로 정했다.

한국 천주교회뿐 아니라 지방 문화재 사적 제318호로 지정돼 있는 「나바위성당」은 비록 피흘림이 있었던 순교지는 아니지만 한국 교회가 길이 보존해야할 축복의 땅이다.

초기 한국교회의 유적지인 나바위가 순교지가 아닌데도 성지로서 신자들의 끊임없는 순례의 발길이 닿는 이유는 바로 이곳이 한국 땅에서 한국인 신부에 의해 처음으로 미사 성제가 봉헌된 곳이기 때문이다.

나바위는 조선 헌종 11년(1845년) 10월 12일 밤 김대건 신부가 사제품을 받고 라파엘호를 타고 입국, 첫발을 디딘 황산포에서 약 2㎞떨어져 있는 한적한 마을로, 김신부는 조선교구 제3대 교구장 페레올 고주교와 제5대 교구장 다블뤼 안주교를 모시고 이곳 신자 구순오의 집에 은거하면서 첫 사목활동을 시작했다.

「나바위」는 원래 「너른 바위」에서 나온 말이다.

나바위가 있는 이곳 화산(華山)은 우암 송시열이 산이 너무 아름답고 해서 불여진 이름이다. 이 산의 줄기가 끝나는 지점에 광장같이 너른 바위가 있는데 화산 위에 자리잡고 있는 나바위 성당은 이 너른바위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나바위 성지는 내륙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어 전국 어디에서나 순례하기가 편하다. 일반 대중 교통편도 좋은 편이어서 철도를 이용시 호남, 전라선을 타고 「강경역」에서 내려 49번, 50번 시내버스나 333번 좌석버스를 타고 나바위로 향하면 된다.

나바위는 강경역에서 약 3㎞ 떨어져 있다.

고속버스를 이용하려면 서울, 대전 방면은 논산에서 하차하여 논산 - 강경 - 나바위를 경유하는 49번, 50번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또한 전주, 광주 방면에서 직행버스로 이리에 도착 이리역 건너편에서 49번, 50번 버스를 이용하거나 시외버스터 미널에서 333번 좌석버스를 이용하면 나바위를 쉽게 순례할 수 있다.

아울러 개인 승용차나 단체버스를 이용하려면 서울, 대전, 광주, 전주방면에서 고속도로를 이용, 논산ㆍ연무 인터체인지에서 강경 방향으로 빠져나와 나바위로 길을 잡으면 된다. 나바위 성지는 현대미와 고전미가 한데 어우러져 있는 보기 드문 아름다운 곳이다.

솔숲이 사방으로 둘러싸여져 있는 나바위 성지를 들어서면 1997년이면 설립 1백주년이 되는 사적 제 318호 나바위성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나바위성당은 김대건 신부일행이 한국 땅을 밟은 것을 기념해 장약실(요셉ㆍ베르모델) 신부가 1897년 짓기 시작해 1906년 완공했다. 성당 설계는 명동성당의 포아넬 박신부가 도왔고 벽돌공과 목공 일은 중국인들이 맡았다.

나바위성당은 무엇보다도 고딕식 종각과 한옥 목조건물에 기와를 얹어 동서양 문화의 조화미를 수려하게 드러내고 있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나바위성당은 또한 초기 한국교회의 전통적인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중앙 제대가 원형으로 남아 있어 옛 교회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아울러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 일행이 타고 왔던 라파엘호를 본떠서 세운 김대건 순교비가 나바위 위에 우뚝 세워져 있다.

김대건 순교비 옆에는 대구대교구 드망즈 주교가 매년 연례 피정을 하던 곳으로 유명한 「망금정」(望錦亭)이 단장돼 있고, 이곳 망금정에서는 김대건 신부 일행이 입국했던 황산포를 끼고 흐르는 금강을 한눈에 내다볼 수 있다.

따라서 이곳 나바위는 이 땅의 복음화를 위해 목숨을 내걸고 입국하던 성직자들의 결의에 찬 모습들을 묵상할 수 있는 최적지라 할 수 있다.

또한 오늘날 우리 시대의 성직자들이 꼭 한번은 이곳을 찾아 자신의 신원과 사명에 대해 되새겨보는 신앙고백의 장소로도 제격이다.

그래서인지 이곳 나바위에는 1991년 김대건 신부의 정신을 본받고 신심을 수양하는 피정의 집이 세워져 있으며 더많은 기도와 자기 발견을 위해 「평화와 모후 성모 동산」과 망금정까지 뻗어져 있는 산책로 주위로 돌조각 14처가 단장돼 있다.

이 땅의 한가운데에 널다랗게 뻗어있는 반석 나바위. 마치 한국 교회의 주춧돌인양 내륙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거룩한 복음의 땅, 이 땅에서 우리와 피를 함께 나눈 한국인 신부가 최초로 감사 미사를 봉헌했던 축복의 땅 나바위를 찾아 한여름 쉬이 흐트러지는 우리의 신심을 수습하고,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우리 나라가 주님의 나라로 바로 설 수 있도록 하느님께 간구드리면 어떨까.

리길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