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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회는 진행 중… 한국교회와 새로운 복음화] (14) 사회매체에 관한 교령 「놀라운 기술」 해설

정리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12-05-29 수정일 2012-05-29 발행일 2012-06-03 제 2798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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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의 질적 소통·윤리적 규범 준수 의무 제시
사용자 의지·방식에 의해 결정되는 미디어 속성 지적
진정한 관계 형성 지향하는 ‘사회매체’로의 개념 정립
1. 배경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현대의 통신기술을 전면적으로 채용한 최초의 공의회였다. 이 통신기술을 주무기로 하는 각종 보도매체 들에 의해 공의회 사상 최초로 공의회의 주요 현안들은 이제 전 세계에 보도되기에 이른다.

20세기 들어, 대중매체가 복음화에 큰 힘을 발휘한다는 점 또한 분명해졌다. 미국의 풀턴 쉰 주교가 출연한 ‘인생은 살만한 것’이란 프로그램은 그 단순한 짜임새에도 불구하고 1952년 인기 있는 텔레비전 프로에 주어지는 에미상 후보에 까지 올라간다. 바티칸 역시 몇 가지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대중매체, 특히 라디오의 힘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1870년 이탈리아 군대에 의해 비오 9세 교황이 어려움에 처했던 이후, 비오 11세는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과의 긴장상태에서 교황청의 입장을 세상에 알릴 수 있는 언로(言路)를 마련하고자 했다. 이에 바티칸은 1931년 2월 12일 세계 최초로 유럽과 미주대륙을 가청범위에 둔 바티칸 라디오를 설립하고 바티칸 내에 전화시설을 설치하도록 했다. 이 바티칸 라디오를 활용하여 1931년 5월 15일에는 ‘새로운 사태’ 반포 40주년을 기념하는 ‘40주년’을 소개했고, 이는 신자들 사이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처럼 교회는 매스미디어를 이미 다양한 방면으로 활용하고 있었고, “미디어 기술”은 “미디어 환경”의 형태로 더욱 그 외연과 영향력을 확장해 가고 있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시의 적절히 그 논의의 핵심주제 안에 매스미디어의 사용에 대한 내용을 포함시키게 되었다.

2. 핵심 내용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사회매체 교령 ‘놀라운 기술’은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1963년 12월 4일 반포되었다. ‘놀라운 기술’은 이전 교황들이 발표했던 회칙 ‘이상적인 영화 (1955)’, ‘활동사진, 라디오, 텔레비전에 관하여 (1957)’에 기초하고 있고, 동시에 공의회 이후 교황청에서 발표한 미디어에 관계된 후속 문헌에 의해 더욱 구체화 되고 있다.

‘놀라운 기술’은 서론과 두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입부에서 현대 미디어가 전 사회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지적한 후, 교령은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미디어가 인류를 위해 선용되거나 악용 될 수 있다는 점을 밝힌다(1,2항). 이러한 양면성은 미디어 기술 자체의 속성이 아닌 사용자의 의지와 사용방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므로, 교회는 미디어 기술에 내재된 속성에 따라 그 사용 결과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기술 결정론’을 따르지 않는다. 그러나 미디어 기술의 사용 방식은 철저히 윤리적 원칙에 따라 결정된다는 입장을 취한다는 의미에서, ‘놀라운 기술’은 일종의 윤리적 결정론에 따라 교회의 미디어관을 피력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큰 그림 안에서, ‘놀라운 기술’의 1장은 사회커뮤니케이션 매체의 올바른 사용을 위한 규범을 다루고 있다. 미디어의 윤리성이 특히 발휘되어야 하는 영역은 바로 ‘뉴스’로 대변되는 정보교환의 영역이다. 현대 시민사회의 구성원은 정보에 대한 권리를 지니고 있으며,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정보의 교환을 통해 사회의 구성원은 더욱 긴밀히 결합된다. (5,8항).

미디어의 수용자들 역시 미디어 컨텐츠에 대한 “올바른 선택”의 의무를 지니고 있으며, 특히 청소년들은 매체 전문가들로부터 올바른 선택에 대한 교육을 제공받을 필요가 있다 (9,10항). 미디어 메시지의 생산자 역시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공동선을 희생해서는 안 되며, 국가권력은 이상의 모든 내용들을 사회 안에서 실제로 현실화 시켜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12항). 이상의 내용을 통해 보건대, ‘놀라운 기술’은 미디어의 본질을 제시하기 보다는 한 사회 내에서 미디어가 이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조건들’을 제시하고 있으며, 그 조건들의 핵심에는 바로 ‘윤리적 규범의 준수’가 자리잡고 있다.

‘놀라운 기술’의 2장은 실제 교회의 사도직 안에서 어떻게 사회매체를 사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사목자들과 평신도들은 “기술적, 경제적, 문화적, 예술적 역량”을 발휘하여 복음화를 위해 사회매체를 적극 활용해야 하며, 이를 위해 지역 교회는 주교들의 인도 하에 교회 내 효과적인 미디어 사용을 위한 사무국을 설치해야 한다 (13,21항). 교회 출판물과 가톨릭 방송 또한 “치밀하게” 지원되어야 하며 이에 더해 교회는 제작자들과 비평가들의 양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15항). 사회매체의 선용을 위한 수용자 교육 또한 제공되어야 하며 이는 특히 가톨릭계 학교와 신학교, 평신도 사도직 단체를 대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16항).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열었던 교황 요한 23세가 바티칸 라디오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바티칸은 1931년 세계 최초로 유럽과 미주대륙을 가청 범위에 둔 라디오 방송국을 설립, 이를 활용해 「새로운 사태」 반포 40주년을 기념하는 「40주년」을 소개하는 등 신자들 사이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3. 함의들

제2차 바티칸 공의희의 사회매체 교령 ‘놀라운 기술’은 공의회사상 최초로 ‘매체’를 주제화 하여 논의한 결과라는 데에서 우선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또한 ‘놀라운 기술’을 통하여 이제 교회는 사회매체의 사목적 이용을 더욱 촉진하게 되었고, 이를 ‘제도화’하였다. 앞서 지적한 대로, 공의회 이후 교회는 교회 조직의 다양한 층위에 복음 선포를 위한 미디어 사용을 실무적으로 다루는 개별 교회의 기구를 설립하고 이 기구들의 국제적 연대를 이루어 낸다.

커뮤니케이션 철학의 관점에서 역시 ‘놀라운 기술’의 공헌을 찾을 수 있다. 산업사회의 성과에 가장 열광했던 북미대륙으로부터 기인한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개념은 사실 여러모로 모순적이었다. 고도 산업화의 결과, ‘교류’, 다시 말해 소통은 주로 ‘물자의 교류’나 통신을 통한 확장과 지배의 개념으로 사용되기에 이른다. 간단히 말해, 철도를 통한 운송이 ‘교류’의 핵심이며, 물질적인 어떤 것의 공간적 이동이 소통 (communication) 개념의 강력한 일부를 이루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의회는 ‘장악’과 ‘운송’의 개념을 넘어선 소통의 윤리적 차원을 선명하게 지적함으로써,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사실은 산업사회의 물질성 이상의 차원에 그 근원적 의미를 두고 있다는 점을 밝혔다.

새로운 용어의 사용은 ‘놀라운 기술’의 가장 큰 공헌이라 할 수 있다. ‘놀라운 기술’ 이후부터 교회는 ‘대중매체’ (매스 미디어)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회매체’라는 말을 널리 사용하기 시작한다. 매스 (Mass)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말은 메시지 전달의 양(量)을 위주로 하는 용어이며, 이는 소통의 과정과 질 (質)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는 기술적 용어이다. 이와 반대로, ‘사회매체’라는 말은 소통의 양이 아닌 질을 염두에 둔 용어이다. 이 용어에 따르면 미디어를 통한 모든 형태의 소통은 ‘사회적’이다. 다시 말해서, 매스미디어는 그 본질상 ‘사회매체’인데 이는 현대 미디어를 사용한 소통의 효과가 개인의 심리적 차원을 넘어 전(全) 사회에 미치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소통의 결과는 어떤 형태로든 사회적 관계의 형성으로 귀결되며, 이런 의미에서 매체를 통한 소통은 ‘상호작용’이다. 매체의 사용에는 바로 이러한 사회적-윤리적 지향이 포함되어야 하며, 교회의 이러한 시각은 또한 기술의 한계를 넘어 모든 소통이 ‘다방향’과 진정한 관계형성을 지향해야 한다는 교회의 이념을 반영하고 있다. 한편, 소통의 윤리성을 강조하려면 우선 소통의 사회성과 사회적 책임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대중매체를 ‘사회매체’로 지칭하는 것은, 미디어 사용에 있어서 윤리적 차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회의 이념을 표현하기 위한 개념적 사전작업이라 할 수 있다. 양적 사고가 효율을 중시한다면, 윤리의 영역은 주로 질적 사고 안에서 확산되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발달과 SNS의 급부상으로 대변되는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 안에서, ‘놀라운 기술’을 통해 근 50년 전 제안된 ‘사회매체’라는 용어의 통찰은 놀라울 정도다. 현대 미디어의 추세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정보의 교환을 통한 사회적 관계망의 형성이다. 이런 미디어의 모습 안에서, 사실 대규모의 군중에게 규격화된 특정의 메시지를 일정한 시간대에 전달하던 ‘매스 미디어’식의 작동 흔적을 찾는 것조차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결국, 현대 미디어의 작동 원리를 질적으로 묘사함에 있어서는 이미 교회가 50년 전 제안한 ‘사회매체’라는 용어가 ‘매스 미디어’라는 용어 보다 더욱 적절하다.

‘놀라운 기술’의 ‘놀라운’이라는 형용사는, 사실 이성적인 개념의 표현이라기보다는 감성적 반응의 표출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놀라움’의 단계는 신앙에 바탕을 둔 이성적 토론을 거쳐 합리적이고 구체적인 이해로 전환되고, 이 전환으로부터 그 ‘놀라운’ 기술은 이제 다룰만한 기술 - 특정의 목적을 위해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이 된다. 공의회의 사회매체에 대한 논의는 바로 이러한 합리적 토론의 과정이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이제 교회는 새로운 미디어 기술을 적절히 사용할 수 있는 신학적-제도적 역량을 갖추어 나가게 된다.

성기헌 신부(서울 신내동본당 보좌)

성기헌 신부
1999년 사제로 서품됐으며 미국 위스콘신-메디슨대학교에서 ‘매스컴과 종교의 관계 연구’로 신문방송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서울 신내동본당 보좌로 봉직하고 있다.

정리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