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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교회를 아십니까?] 22 본보 통해 보는 한국교회 그 때 그 모습

이윤자 취재국장
입력일 2012-04-06 수정일 2012-04-06 발행일 1996-11-10 제 2027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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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과락은 마찰하지 않는다
1952년 9월 25일자

최근 진화론과 관련,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발언을 놓고 외신의 보도가 요란했다. 물론 외신을 그대로 받은 국내 언론보도 역시 교황이 『인간의 선조가 원숭이일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이들 보도는 어디까지나 교회의 가르침을 제대로 모르거나 교황의 발언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흥미보도에 지나지 않았다.

실제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청 과학연구원 제60차 총회에 보낸 메시지 중 진화론 관련부분의 핵심은 이미 오래된 교회의 입장을 재확인한 것일 뿐 실질적인 변화는 없다는 것이 가톨릭 신학자의 논평이었다. 즉 『만물이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되었다는 창조론의 기본적인 가르침을 배제하지 않는한 진화론이 교회의 가르침과 배치되는 요소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교황 메시지의 기본입장인 것이다.

결국 교회가 말하는 진화론의 인정은 창조론을 전제로 할 때 가능하다는 얘기가 된다. 이 같은 교회의 근본입장을 1952년도 천주교회보에서 찾아보는 일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해 9월25일자 천주교회보 1면에는 「신앙과 과학은 마찰하지 않는다」는 제목의 톱기사가 실렸고 이는 최근 가톨릭신문 외신「창조-진화론 배치되지 않는다」는 내용과 흡사하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상대성 원리와 진화문제 등 유명한 성직자 학자들이 논평」이라는 부제가 달린 당시의 이 기사는 진화론에 대해 교회의 입장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당시 루뱅대학 교수이자 교황청 학술원회원인 러마틀 신부는 『진화론은 한 가설이다. 혹은 그것이 증명되더라도 가톨릭 교리는 변치 아니할 것이다. 다만 천주의 섭리가 그와 같이 진화론방법으로 성취된 것이 명백하여 질뿐이다』라고 역설하고 있다.

케이프타운 뉴욕 등 NC 발 외신으로 처리된 이 기사는 이어 『진화론은 육체에 관해서만 적용될 것이고 영혼은 천주께서 직접 창조하시는 것이요 결코 진화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교리를 반박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1952년 당시 기사들은 창조론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이 5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달라지지 않았고 또 달라질 수 없음을 시사해 주고있다.

물론 진화론을 진지한 가설로 간주한 교황 비오 12세의 시각에서 보면 『오늘날 새로운 지식들로 인해 진화론이 「가설 이상」의 것일 수 있음』을 시사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발언이 진 일보한 시각임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현 교황이 『인간의 몸이 그 전에 살아있는 존재에 기원한다고 할지라도 영혼은 직접적으로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것』이라는 비오 12세 교황의 발언을 인용, 창조 자체가 전적으로 하느님의 일이라는 불면의 진리를 거듭 확인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창조, 특별히 인간의 영혼부분에 대한 창조가 하느님의 영역이라는 가톨릭의 교의는 예나 지금이나 변할 수 없다. 그것에서 우리는 인간생명의 존엄, 그 근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인간생명의 가치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생명의 존엄성 자체가 밑바닥을 헤매고 있는 오늘날의 현상들도 이 부분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출발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여기서 1952년 당시 기사로 돌아가 보자. 『미신자인 과학자 중에는 종교에 대한 그릇된 생각으로서 또는 개념으로서 신앙은 과학을 무시한다로 추론한다. 그러나 과학자가 만일 종교와 과학은 서로 다른 물건인 것을 이해한다면 이 유치한 편견을 자연히 소멸할 것』이라고 역설한 러마틀 신부. 5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신앙과 과학은 마찰하지 않는다」와 똑같은 류의 기사를 접해야 한다면 과연 언제쯤 인간의 유치한 편견이 소멸할 것인지가 궁금하다.

이윤자 취재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