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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50주년 특별기획] 한국 천주교회의 어제 오늘 내일 35 - Ⅵ 한국 가톨릭교회 사회개발 및 복지사업 4

맹광호ㆍ가톨릭의대 교수ㆍ예방의학
입력일 2012-03-19 수정일 2012-03-19 발행일 1996-06-16 제 2007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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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 차원 넘어 인간개발에 역점둬야
사회보장시대 걸맞는 교회 의료관 정립 시급 
산간벽지 주민들 배려 이동진료 활성화 요청 
지역민들 위한 각종 건강 프로그램 설치ㆍ운영 바람직
의료선교

보기에 따라서는, 한 나라의 교회 선교역사는 곧 그 교회의 의료활동사라고도 할 수가 있다. 그만큼 교회의 의료활동은 어느 나라에서나 교육활동과 더불어 교회의 선교발전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인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으로 볼 때, 한국 가톨릭교회의 초창기 선교활동은 결코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가 없다. 약 1백년간의 박해시대는 그렇다 치더라도, 종교활동이 자유로워진 1883년 이후 해방이 되던 1945년까지도 가톨릭교회의 교육이나 의료활동은 가령 개신교의 그것에 비하면 너무나도 보잘 것이 없었고 이 일은 결국 이 시기에 있어서 가톨릭과 개신교의 선교활동 실적차이에 그대로 반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의 경우, 박해시대가 끝나면서 우리나라에 진출한 메리놀회나 베네딕도회 등 몇몇 외국 수도단체가 나름대로 서양식 의료활동을 시작했고, 이 시기에 이미 활발한 교육과 의료활동을 앞세워 선교에 나선 개신교의 활동에 자극을 받아 덕원이나 신의주, 연길, 인천, 서울 등지에 본격적인 의료활동을 펴기도 했지만 그 규모는 역시 개신교의 그것과 비교가 되지 않는 상태였다.

예컨대, 개신교의 경우 한국 진출 20년만인 1904년에 이미 외국선교 의사들이 운영하는 1백50개 병상의 대규모 종합병원을 설치하고 의료활동을 전개했지만, 개신교보다 무려 1백년이나 먼저 이 땅에 신앙의 뿌리를 내린 가톨릭은, 이때 단지 서울과 인천에 간단한 진료소를 하나씩 갖고 있었을 뿐이다.

이런 가톨릭교회의 의료활동은 그러나 1950년 6·25한국전쟁을 기점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1950년 4월 부산에 메리놀수녀병원이 개설된 이후, 51년에 부산의 성분도자선병원, 55년 목포의 성골롬반병원과 부평 성모병원, 56년 대구 파티마병원, 57년 성바오로병원, 그리고 59년에는 전주 성모병원이 개원되는 등, 전후의 수많은 이재민들을 위한 전문 교회의료기관들이 줄을 이어 문을 열고 활발한 의료활동을 개시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한국 가톨릭교회의 경우, 의료를 선교의 수단으로 사용하기보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인명구제의 목적으로 이를 직접 사용함으로써 그리스도적 사랑을 가장 적절히 실천한 것이었다고도 말할 수가 있다.

당시, 이들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대부분의 환자가 무료 자선환자들이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으며 이 같은 가톨릭 병원들의 자선의료활동이 교회선교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것 또한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한편, 1954년에 설립된 가톨릭대학 의학부와 여기 병설된 성요셉간호학교에서의 전문 의료인 양성, 그리고 1962년 당시 국내 최신, 최대 규모의 명동 성모병원을 중심으로 경인지역 7개 교회병원을 한데 묶은 가톨릭 중앙의료원의 탄생은 국내 처음으로 의학교육과 연구, 그리고 진료를 포괄적으로 관리하고 발전시키는 의료원제도의 효시가 되기도 했다.

이후로 한국 가톨릭교회의 의료활동은 단연 돋보이는 많은 업적을 남겨 왔으며, 1995년 말 현재 전국에는, 교구나 수도회가 직접 운영하는 24개의 병원과 13개의 의원 등 총 37개 가톨릭 의료기관이 활발한 의료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은 1967년에 창립된 한국 가톨릭 병원협회 회원들로써, 매년 두 차례씩 모임을 갖고 교회의료에 관련된 세미나를 여는 등 긴밀한 협조체제도 갖추고 있다.

한편 1968년에 설립된 한국 가톨릭 의사협회와 1979년에 설립된 한국 가톨릭 간호협회 또한 지역사회 무료진료나 상담활동 등 직접 간접으로 우리나라 가톨릭 의료선교활동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특히 한국 가톨릭 의사협회는 가톨릭 병원협회 및 가톨릭 간호협회와 공동으로 1980년에 아시아 가톨릭의학 총회를 서울에 유치하여 성대히 치른 일이 있고 최근에는 남미 에콰도르와 아프리카 등지에 의약품 및 의료 기자재를 지원하는 한편 방학 동안에는 의사를 파견하여 진료를 실시하는 등 점차 해외 의료선교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해방 이후 급격한 신장을 보인 이들 가톨릭 의료사업이 그러나 최근 들어 이 일이 반드시 선교적인 측면에서도 발전을 의미한다는 평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최근의 교회의료가 그 내용에 있어서 초창기 의료활동을 시작할 때와 결코 적지 않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1970년대 까지만 해도 대부분 가톨릭 의료기관은 주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자선적 활동에 크게 치중해 온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 시기의 가톨릭 의료사업은 대부분 무료 또는 무료에 가까운 자선진료였으며 특수전문 질병치료보다는 기본적 건강유지를 돕는 전인적 진료에 가까웠다고 할 수가 있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 이후 국민 경제수준의 향상과 정부의 적극적인 의료보건 활동 참여로 일단 가톨릭의료의 이 같은 자선적 의료 성격이 바뀌게 되었고, 따라서 교회의료는 그 정체성과 관련하여 새로운 도전을 맞게 된 것이다.

교회병원의 대형화가 꼭 필요한 것이냐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그 첫 번째 도전이다.

물론 교회 의료기관이 첨단시설 장비를 갖추고 대형화해 가는 것 그 것 자체가 문제일 수는 없다. 의료활동에 있어서 정확한 진단과 치료는 필수 불가결한 일이므로 치료기술의 우월성을 유지하기 위한 교회 의료기관의 현대화 그 자체는 오히려 바람직한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이런 과정에서 자칫 환자를 전인적으로 치료하지 못하게 되는 일이라든지, 아직도 의료 소외지역인 농, 어촌에서의 의료활동을 소홀히 하게 된다든지 그리고 그 동안 가톨릭 의료기관 운영에 큰 비중을 차지했던 성직자, 수도자들의 상대적 역할 감소와 이로 인한 가톨릭 의료기관의 정체성을 어떻게 유지 발전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인 것이다.

두 번째는, 사회보장시대에 알맞은 교회 의료기관의 자세 정립문제다. 의료보험이나 의료보호제도 도입과 함께 일단 전 국민에 대한 기본적 의료서비스가 이론적으로 가능해진 오늘에 있어서 교회 의료기관의 전통적 자선 진료기능을 어떻게 유지해 나가느냐가 그것이다. 그리고 의료 전반에 대한 정부의 정책과 법규, 그리고 의료체계 등이 일률적으로 모든 의료기관에 적용되는 시기에 있어서 역시 어떻게 가톨릭 의료기관이 그 정체성을 유지하느냐 하는 것은 여간 중대한 과제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는, 일부 첨단 의학기술을 의료에 적용하는데 있어서 발생되는 윤리문제와 이에 대한 대응이다. 성의 문란과 인간생명 경시풍조를 부추기는 갖가지 인공적 피임방법의 보급과 시술은 물론 인공유산이나 체외수정 같은 비윤리적이고 비그리스도교적인 의학기술들이 영리추구와 함께 성행하는 현실에서 가톨릭 의료기관들이 이들의 부당성을 주장하고 생명적 대체 기술들을 개발 보급해야 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 의료기관들이 직면한 이런 도전들은 바로 현대의료가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일종의 악이며, 따라서 이런 문제들을 가톨릭 의료가 정의롭게 해결해갈 때 그 정체성과 존재가치는 더욱더 돋보일 수 있으며 이일이야말로 현대사회에 걸맞는 가톨릭 의료의 선교적 사명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1950년대나 60년대의 교회 의료가 자선적 의미를 강하게 지닌다면 지금의 교회 의료는 현대적 의료의 비인간화와 비윤리화에 대한 복음적 해답의 의미를 지닌다고 말할 수가 있다.

이런 도전에 대해 가톨릭 의료의 첫 번째 대처는 전인적 의료다.

그리스도교적 입장에서 볼 때 건강이 육체적, 심리적, 정신적, 영신적, 그리고 사회적 온전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같은 전인적 진료를 위해서는 병원내 종사자들을 끊임없이 교육해야 하며, 병원 종사자나 환자들에게 직접적인 상담과 도움을 줄 수 있는 원목실 운영도 강화해야 한다. 물론 이때 원목활동은 수도자들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 일은 병원의 대형화에 따른 의료 선교 수도자들의 상대적 숫적 감소와 이로 인한 역할 감소를 보상하는 매우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다음은 사회보장시대에 알맞는 자선의료를 계속해 가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989년 7월1일을 계기로 전 국민이 의료보험이나 의료보호의 대상이 됨으로써 이론적으로는 누구나 최소한의 의료혜택을 받는 상태가 된 것이다. 의료활동을 통한 복음전파를 목적으로 한 교회의료의 내용이 사회제도나 의료비 지불방식의 변천에 따라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주로 가난한 사람을 무료로 치료해 주던 자선진료 성격의 교회 의료가 의료보장제도의 도입과 함께 크게 바뀌게 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교회 의료기관의 자선적 진료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며 또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고가의 의료비를 다 지불하지 못하는 환자는 오히려 전에보다 더 많아진 상태이며, 따라서 교회 의료기관 입장에서 보면 일부 자선환자 진료를 위한 재정적 부담이 예전보다 더 커진 것도 사실이다.

이 경우, 낮은 의료보험 수가에 의존해서 병원을 운영해야 하는 가톨릭 의료기관의 경영압박을 해소하고 여전히 자선진료를 충실히 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지역교회가 함께 참여하여 교회 의료를 활성화 하도록 하는 노력이 다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오늘날, 가톨릭 의료가 힘써야 할 세 번째 일은 의료윤리의 실천이다. 사회 변천과 의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비윤리적 의료의 성행이 장차 더욱더 확대될 가능성이 많다. 생명의 존엄성을 해치는 인공유산이나 생명 파괴적 피임기술의 보급, 그리고 선택적 유산을 유도하는 태아 성감별 기술과 가정 및 결혼의 신성성에 도전하는 각종 인공수태기술 등이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의료화가 된 상태이고 머지않아 생명창조에 도전하는 유전공학 기술이나 적극적 안락사, 그리고 인간의 심성과 행동까지 변화시키는 새로운 약제의 개발 등 반생명적이고 비윤리적인 생명과학 기술들이 의료기관에서 사용될 가능성이 높아진 상태이다.

이런 비윤리적 의학기술들에 대해 교회 의료기관이 해야 하는 일은 이들 기술들에 대항할 만한 대체 기술의 개발과 보급이다. 예컨대, 불임부부를 위한 보다 윤리적이고 과학적인 임신기술들을 개발하고 인공적 피임방법들에 대항한 자연적 가족계획 방법의 개발과 보급에 앞장서야 하는 것은 물론 태아의 불구 교정이나 각종 신체적, 정신적 불구에 대한 교정 및 재활 등을 위한 첨단의학 기술들을 발전시키는 일이다.

그리고 호스피스(hospice)와 같은 적극적 말기 임종환자에 대한 치료를 통해 죽음까지 극복하도록 하는 기적적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안락사의 유혹에 대항하는 일도 가톨릭 의료기관들이 해야 할 일이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가톨릭 중앙의료원이 교회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의학 윤리지침」 10가지를 만들어 기관내 모든 의료인들로 하여금 이를 준수하도록 하는 한편 의학윤리위원회를 설치하여 지도 감독하고 있는 것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끝으로, 장차 가톨릭 의료는 단지 질병치료의 영역을 넘어 총체적 인간개발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그 활동의 폭을 넓혀가야 할 것이다.

오랜 전통으로 이어온 가톨릭교회 의료의 진정한 목표는 단지 환자들의 질병만을 치료해 주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육체적 고통과 질병을 고쳐줌으로써 온전히 인간성을 회복하도록 하자는 것이며 나아가 총체적 인력개발을 이룩하게 하자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 되었으며, 따라서 최대한의 존경을 받아야 할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존엄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의료는 단지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고 인간의 생명을 유지 성장시키는데 있어서 중요하고도 필요한 일인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교회 의료는 결국 개인이 속한 지역사회 속에서 그들의 건강과 생명을 해치는 모든 문제들, 예컨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문제적 문제해결과 불가분의 관련을 맺어야 하며, 필요한 경우 이들 인간생명과 건강관련 환경들을 개선하는 일에도 앞장서 노력해야 할 것이다.

가령, 아직도 의료혜택의 손길이 먼 농어촌지역 주민들을 위한 분원 내지 이동진료소를 설치 운영한다든지, 지역사회내 고아, 걸인, 장애자, 그리고 노인들을 위한 특수 시설들의 의료문제를 돕는다든지 하는 비교적 직접적 의료관련 지역사회 보건활동 이외에도 지역주민들을 위한 각종 건강교육 프로그램을 설치, 운영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일에 있어서 지역 교회가 특별한 관심을 갖고 함께 참여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다.

맹광호ㆍ가톨릭의대 교수ㆍ예방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