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신앙과 기도] 믿음을 키우기 위한 기획 6 신앙(信仰)

정하돈 수녀ㆍ대구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입력일 2012-02-28 수정일 2012-02-28 발행일 1996-02-18 제 1991호 12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하느님 사랑에 자신을 무조건 포기하는 것
예수와 함께 일생을 참 삶의 길로 동행해야
▩신앙은 하느님의 은총

인간은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서만 하느님을 믿을수 있다. 하느님이 인간을 당신께로 이끄시고, 인간에게 당신 자신을 열어 보이지 않으시면 하느님을 믿을 수가 없다. 사람들을 예수께 데려가시는 분은 성부이시다(요한 6,37) :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요한 6,44).

하느님의 부르심은 내면의 부르심이다. 그분은 은총으로 영혼안에 잠잠히 속삭이신다. 이 인격적인 부르심, 속삭임에는 사랑이 깃들어 있다. 하느님은 이 사랑의 은총으로 나를 신앙에로 이끄신다. 인간은 이 은총에 순응할 때 자기를 안으려고 열려 있는 품속으로 뛰어들을 수 있다.

신앙은 하느님께 의지하는 것, 그분의 말씀에 신뢰하는 것, 그분의 약속에 무조건적으로 위탁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절대적 사랑에 자신을 내맡김으로써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를 무조건 포기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만일 하느님이 인간을 자신에게로 끌어당기심으로써 그에게 열지 않으신다면 신앙은 불가능하다.

▩신앙은 인간의 행위

하느님은 인간을 부르시고 이끄신다. 하느님의 내적 부르심에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게 하고 인간은 하느님의 계시에 자유로이 동의한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신앙은 하느님의 선물인 동시에 인간의 행위이다. 이 두 요소는 분리될 수 없다. 신앙은 부르심이고 동시에 이에 대한 응답이다. 은총이며 자유이다. 초자연적인 것인 동시에 자연적인 것이다.

하느님의 계시에 대한 인간의 응답은 하느님의 선물이며 이를 위해서는 성령의 도움이 필요하다: 『아무도 성령에 힘입어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예수는 주님이시다」라고 할 수 없다』(1 고린토 12,3). 그러므로 인간에게 예수가 누구인가를 알려주는 분은 성령이시다. 하느님은 사람이 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에게 당신 자신을 계시하셨다. 하느님과 인간의 인격적 만남안에서 주도권을 취하는 분은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 신앙이라 하였다. 이는 곧「인격적인 부르심」에 대한「인격적인 응답」이기 때문에「두 인격의 만남」이다. 『두 인격의 만남의 최상 형태는「사랑」이다. 그러므로 신앙의 만남은 나의 인격을 전적으로 너(의 인격)에게 맡기는 것, 곧「자기봉헌」이다』(가톨릭 신앙의 개념, 정하권). 따라서 신앙은 그 어떤 학문적인 이론이나 두뇌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로운 결단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순전히 의지적인 결단에 의한 것만도 아니다. 신앙은 자유로운 의지와 합리적 이성이 함께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한 인간이 신앙을 선택한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세속적인 생활을 청산함과 동시에 묶은 자아를 버리고 새로운 삶과 더불어 새로운 나를 이룩하는 결단이다. 그래서 내 삶의 중심에 하느님을 모시고, 하느님이 내 안에서 나의 모든 사고, 원의, 행동까지 움직이실 수 있도록 나를 온전히 그분께 내맡기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내 삶의 모든 것을 하느님의 빛 속에서 하느님의 빛으로, 즉 신앙의 빛 속에서 신앙의 빛으로 그리고 신앙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신앙은 그리스도를 따름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예수의 길을 함께 가는 것, 그분을 닮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분을 닮는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예수와 함께 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이 말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이념이 아니고 실제 삶이기 때문에 그분에게 속한다는 것 역시 그저 생각만이 아닌 삶의 행위가 동반해야만 한다는 깊은 진리를 가리키고 있다 : 『주님, 주님 하는 사람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갈 것이다』(마태오 7,21)그래서『말씀을 행하는 사람이 되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ㆍ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시오』(야고보 1,22). 이 경고의 말씀은 그리스도를 따르라는 강력한 부르심이다.

그래서 캠피스의 토마스는 이 같이 말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완전히 그리고 온전한 이성으로 이해하려는 자는 그의 삶 전부를 그분과 같이 살도록 힘써야 한다. 네게 겸손이 없으면 하느님의 마음에 들지 않을텐데 삼위일체에 대한 고고한 지식이 그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진실로, 지고한 말들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고 의롭게 만들지 않는다.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것은 덕스런 삶이다. 정의보다는 회개를 더 바라신다. 성서 전부를 외우고 모든 현인들의 말을 알고 있다 할지라도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없고 그분의 은총속에 살지 않는다면 그 모든 것이 과연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Opera omnia, II에서).

추종은 깊은 신앙이다. 신앙과 삶은 분리되지 않는다.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되고 가까이 오신 하느님의 삶에 자신의 삶을 바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열려진 하느님의 관계로부터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이해하고자 힘쓴다. 이는 곧 삶이 가져오고 가져가는, 요구하고 선사하는, 거부하고 약속하는 모든 것들, 그래서 삶의 모든 기회와 동시에 삶 전부를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시킨다. 뿐만 아니라 행하고 싶은 것만이 아니라 행하지 않은 것, 그리고 행한 것까지도 여기에 속한다. 또 체험한 것들과 고통을 당한 것들, 삶 안에서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지을 때 그 신앙은 바로 구체적이고도 산 신앙이 된다. 다시 말해서 삶의 모든 것, 모든 상황들을 신앙의 빛 안에서 보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기쁨이나 고통, 선이나 악을 받아들이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 안에서 대답을 찾게 되며 하느님께 신뢰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동참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일생동안 참 삶의 길을 동행하는 추종이다.

정하돈 수녀ㆍ대구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