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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문화유산 순례] 5. 원주교구 횡성 풍수원 성당

리길재 기자
입력일 2012-02-16 수정일 2012-02-16 발행일 1997-08-17 제 2066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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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첫 서양식 건물이자 한국인 신부가 지은 첫 성당
고딕-로마네스크 양식 90년 전 초가 헐고 완공
강원도 지방문화재 69호
풍수원 성당은 강원도 최초의 서양식 벽돌 건물이자 국내 일곱 번째로 지어진 고딕ㆍ로마네스크 양식 성당이다.

현재 강원도 지방문화재 제69호로 지정 보존되고 있는 풍수원 성당은 한국인 신부가 지은 최초의 성당이기도 하다.

풍수원 성당은 제2대 본당 주임인 정규하(아우구ㆍ스티노) 신부가 1905년 중국인 시공자 진 베드로를 고용하여 새 성당 건립을 시작, 2년만인 1907년 그동안 사용해 오던 20여 칸의 초가 성당을 대신할 1백20여 평의 벽돌 건물을 완공, 올해로 만 90주년을 맞았다.

전형적인 삼랑식 구조

풍수원 성당은 정면 중앙에 종탑을 가진 당시 서양식 성당의 보편적 형태와 구조를 지닌 건축물이다. 풍수원 성당은 8각 목조 기둥의 열주에 의해 신랑과 측랑이 구획되고, 5각 앱스가 제대부를 이루고 있는 전형적인 삼랑식 구조로 되어 있다.

풍수원 성당은 또 각 베이마다 돌출된 버트레스와 개구부의 테두리를 회색 벽돌로 처리했고, 창은 장방형이나 세크멘탈 아치의 테두리 장식으로 마감했다.

바닥은 마루로 되어 있으며 벽은 모르타르 위에 수성 도장을 했고, 2층 갤러리의 구성을 없애 내부 공간을 단순하게 해 놓았다.

풍수원 본당의 약사(略史)를 살펴보면 이곳에 처음 복음이 전래된 것은 대략 1801년 신유박해 무렵이라고 추정한다. 사학자들은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1802년 경기도 용인에서 신태보(베드로)를 중심으로 40여 명의 신자들이 8일동안 피난처를 찾아 헤매다가 풍수원에 정착했다고 한다.

풍수원에 교우촌을 이루고 산 신자들은 화전과 옹기 구이로 생계를 유지했고, 80여 년이나 성직자 없이 신앙을 지켜오던 중 1887년 한불조약 비준으로 신앙의 자유를 얻자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가 이곳에 강원도 최초의 본당을 설립하며 르메르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파견했다.

1912년 사제관을 신축했고, 이전 1910년에는 삼위학당을 설립, 성당 사랑방에서 학생들을 모아 한글 한문 수학 역사 등의 신학문을 가르쳤다. 삼위학당은 훗날 광동초등학교로 발전했다.

풍수원 본당은 또 1920년부터 성당에서 매년 성체성혈 대축일에 성체거동 행사를 거행, 한국전쟁 때를 제외하고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계속해 오고 있다.

본당 출신 사제가 30여 명에 이르고 수많은 수도자를 배출한 풍수원 본당은 제10대 본당 주임 박용식 신부가 부임, 1982년 4월부터 성당 유적지 개발 운동을 전개, 그 해 11월 3일자로 강원도 지방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됐다.

제11대 본당 주임 김한기 신부가 부임, 성당 내외부 수리공사를 완공했고, 피정의 집 신축과 성체동산 14처를 설치했다. 또한 횡성군의 지방문화재 보수 계획에 의거 1990년 7월 18일부터 9월 30일까지 75일간 성당 외벽 줄눈 넣기 및 방수액 도포, 내부 벽체 회벽 처리 공사를 실시했다.

리길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