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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백과] 11 종이와 크레파스/정여주

정여주(리오바)ㆍ교육학 박사
입력일 2012-02-14 수정일 2012-02-14 발행일 1997-07-20 제 2062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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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는 항상 똑같은 그림만 그려요.』, 『어떤 어린이는 종이의 한 모퉁이에만 그림을 작게 그립니다.』, 『저의 아이는 그림을 그리다가 갑자기 종이를 구겨 버리거나 다른 색으로 지워 버려요.』,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언제나 저에게 그려 달라고 합니다.』등의 걱정을 하는 어머니들과 미술 교사들을 만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어른들의 아동화에 대한 이해 부족과 어린이 미술 활동에 보이는 태도가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

어린이들은 두어 살 정도가 되면 크레파스나 사인펜과 볼펜 등으로 방바닥, 벽, 탁자 혹은 신문지 위에 아무렇게나 긋고 칠하는 것을 즐겨한다.

어린이가 표현할 수 있는 이러한 첫 창의적 시도를 난화라고 한다. 난화기는 2년 정도 계속되면서 발전하는데 이 기간에 어떤 어른들은 어린이의 미적 활동에 관심이나 의미를 두기 보다 집안이 지저분해 진다고 필기도구를 아예 어린이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치워 버리는 경우도 있다.

난화는 어린이의 근육, 지각운동 뿐만 아니라 창의적, 정서적, 지적 능력을 발전시키는 근거가 되므로 이 시기의 어린이는 이러한 과정을 반드시 경험하여야 한다. 이런 시도가 결여되면 마치 10개월 정도의 아기가 물건들을 떨어뜨리는 반복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공간 개념을 경험할 수 없어서 커 가면서 높은 곳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것과 같은 현상을 보인다. 이처럼 어린이의 욕구와 발전 단계에 상응하는 창의적 시도를 의미가 없는 것으로 평가하고 심지어는 이것을 금지할 때 위의 사례들과 같이 어린이는 자신감을 잃고 자신의 느낌과 생활 주변에서 경험한 것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보인다.

아동미술 교육에 가장 큰 걸림돌은 간섭과 섣부른 평가, 지나친 칭찬이나 만족이 없는 높은 기대들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이는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어떤 때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분위기에서 자신의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다. 비록 어린이가 그려서 이름을 붙이는 것과 실제의 모습이 전혀 다르게 보인다 할지라도 그것은 어린이가 경험하는 환경과 전체적 성장 과정을 나타내는 것이 된다.

혼자서 선을 긋고 원을 그리며 이름을 붙이는 데 몰두하는 어린이를 바라보면 자연스러움의 아름다움이 어떤 것인지 느껴질 것이다.

손자 손녀를 위해서 크레파스와 종이를 준비해 두고 있는 할머니의 배려가 어떤 미술 교육보다 가치로울 수가 있다.

정여주(리오바)ㆍ교육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