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민족화해학교 제2단계 지상중계 12 최창무 주교 종강미사 강론

우재철 기자
입력일 2012-02-14 수정일 2012-02-14 발행일 1997-07-06 제 2060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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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는 화해의 씨”
북 돕기 운동은 새로운 민족운동
민족 화해는 형제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명하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길이다. 또한 민족애는 배타적인 것이어서는 아니 되고 보편적인 인류애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민족 화해를 위해서는 민족 공동체의 일부인 북녘 형제들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요청된다. 그들 모두는 우리의 원수가 아니라 동족이고 형제이다.

민족 공동체에서 화해를 논하면서 조건을 내세워서는 안 된다.

민족의 화해는 인간적 속셈이나 경제적 이득, 정치적 계산을 전제로 해서는 불가능하다. 결혼하여 평생을 함께 살아갈 부부처럼 서로의 책임을 추궁하기보다는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 안으려는 자세에서 화해는 이루어지는 것이다. 참 평화와 화해를 구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지식을 뛰어 넘는 하느님의 무조건적인 사랑만을 민족 화해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

▲무조건적인 사랑만이 참 화해

95년 3월 1일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민족화해위원회에서는 민족화해학교를 개교하여 2단계 교육을 통해서 화해 일꾼들을 양성했다. 위원회가 창설된 첫 해 광복절에 9일 기도와 함께 단식하며 모은 성금을 북녘 형제들에게 전달한 바 있다. 또한 96년 8월에는「북녘 형제와 국수 나누기 운동」을 전개했다. 또한 97년 4월에서 7월까지, 4개월에 걸쳐「북녘 형제에게 옥수수 보내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또한 민족 화해를 위해 북녘의 형제들과 95년 10월 말과 97년 6월 초 두 차례에 걸쳐 모임을 가졌으며 이를 통해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함께 하는 형제들임을 서로가 확인하기도 했다.

서울대교구에서는 민족 화해를 위한 노력을 구체적으로 전개하기 위해서 교구청 조직의 일부로「통일사목위원회」을 발족시켰다. 이 위원회를 통해서 서울대교구의 일부인 경기 북부와 황해도 지방이나 추기경께서 교구장 서리로 계시는 평양교구 등 북한 지역의 교회에 구체적 관심이 주어질 것이며 통일사목에 관한 기획과 행정적 지원이 진행될 것이다.

현재 북한은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다. 큰 물피해와 함께 체제의 문제점 때문에 기아가 엄습했고, 이 기아로 말미암아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며 생명을 잃고 있다.

지금 북녘 형제들의 생명의 존엄성은 극도로 위협 받고 있다. 그들의 생명을 지키는 데에 같은 민족으로서 우리도 함께 할 책임이 있다. 이들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과도한 정치적 판단이나 전제 조건이 부과되어서는 아니 된다.

▲옥수수 보내기는 훌륭한 선교

북녘 형제를 돕는 일에 보여 준 신자들의 호응과 동참은 너무나도 고맙다. 그러나 우리는 빵의 기적에서처럼 경제적 도움으로만 그쳐서는 아니 된다. 북한에 대한 경제적 도움이나 본격적인 지원은 본디 국가의 몫이다. 그러나 우리는 북녘 형제들을 돕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그것은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 시급히 진행되어야 할 긴급구호 활동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옥수수 보내기 운동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선포하는 훌륭한 선교이다.

진정으로 행하는 사랑에는 스스로 자라나는 씨앗의 힘이 있다(마르꼬 4, 1~29). 북녘의 형제들을 돕기 위한 우리 신심은 우리 신앙을 자라게 하고 상호 신뢰를 구축할 것이며 신앙의 꽃이 이 땅에 만발하게 할 것이다.

옥수수 보내기 운동은 비록 4개월에 걸친 한시적 운동에 불과하지만 우리 의식을 전환시키고 남북에 나뉘어진 민족공동체 모두에게 올바른 인간화의 길을 제시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옥수수 나누기 운동은 새로운 민족운동이다. 우리가 보내는 옥수수에는 분단의 비극을 극복할 수 있는 생명의 씨앗이 들어 있다. 우리 모두는 이제 이 씨앗을 뿌리고 가꾸는 일에 나서야 한다. 우리가 북녘 형제들의 고통에 동참하여 그들이 겪고 있는 위기에 함께 맞서고자 할 때, 서로간의 증오와 불신은 극복되어 갈 것이다. 기근을 겪고 있는 그들에게 우리 희생의 일부를 보냄으로써 우리는 자신이 먼저 화해하겠다는 신앙인으로서의 마음가짐을 다짐하는 것이다.

북녘 동포가 굶어 죽게 되는 것은 북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한 뿌리 한 혈통을 가진 우리 민족의 문제이다. 여기에서 북의 기근을 우리 정부가 도와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북한의 기근에 대한 책임을 일차적으로 북한 정권이 갖고 있지만 우리는 이웃이고 한 민족이기 때문에 그 의무에서 결코 면제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분단비용과 통일비용, 그리고 화해비용을 생각해야 한다. 옥수수를 보내고 북한의 기근을 구제하는 것은 화해비용의 일부이다. 화해비용은 실질적으로 통일비용을 절감하는 길이며 통일을 앞당기는 일이다.

▲6월 25일을「민족 화해의 날」로

민족화해위원회에서는「민족 화해의 날」선포를 위해서 그동안 준비를 해 왔다. 동족상잔의 고통을 나눈 한국 전쟁 47주년을 기념하면서 그 민족적 고통의 승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민족의 화해가 요청됨을 확인하게 되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에서는 화해의 일꾼들이 새롭게 배출되는 6월 25일「민족 화해의 날」로 선언하며「원수에 대한 증오」를「형제에 대한 사랑」으로 바꾸어 나가고, 민족의 화해를 위한 다짐과 기도가 특별히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

◆화해학교 제2단계 1기 수료식 246명 수료… 102명 개근

북 돕기 우수 본당ㆍ단체 시상

민족의 화해와 일치 및 통일 역군의 양성을 목표로 개설된 민족화해학교 제2단계 1기 수료식이 6월 25일 오후 7시, 명동대성당에서 거행됐다.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위원들과 동문, 수료생, 가족 등 7백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이날 수료식은 최창무 위원장 주교 주례, 오태순 신부, 장덕필 신부가 공동 집전한 종강미사를 겸해 마련됐으며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수료생들이 실천할 수 있는 봉헌문 봉헌, 옥수수 보내기 보고대회 및 우수 본당, 단체에 대한 시상 등도 함께 마련됐다.

특히 이날 수료식에서는 3백47명의 등록자 중 2백46명에게는 수료증이, 1백1명에게는 참가증이 각각 수여됐으며 지난 3월 19일부터 이날까지 한 주에 2강좌씩 총 15주간에 걸쳐 개설한 전 강좌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개근한 수료생도 1백2명에 달했다.

이날 수료식에서 수료생들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매일의 기도와 함께 매주 화요일(오후 7시)에 봉헌되는 민족 화해미사에 참석 △북녘 형제 돕기 운동 참여 등 수료생 자신이 실천할 수 있는 봉헌문을 작성, 미사 중 봉헌했다.

또한 이날 수료식 중 거행된 북녘 동표 돕기 옥수수 보내기 보고대회에서 민화위는 6월 21일 현재까지 서울과 지방 등 총 1백83개 본당과 단체, 개인 등으로부터 총 37억1천7백28만3천3백21원이 모금됐다고 밝히고 북녘 동포 돕기 운동에 모범적으로 참여한 본당과 단체를 시상했다.

◆민족화해의 날 봉헌문 (요지)

주님, 저희는 주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저희는 형제간의 화목과 사람에 대한 사랑을 명하신 주님의 가르침을 저버리며 올바르게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저희는 민족 구성원의 일부로서 민족공동체가 겪어 온 분열과 증오 속에 살아 왔으며 민족 내부의 불화와 불목, 분단과 상호 불신 속에 참회와 자기 쇄신마저 소홀히 여겼습니다. 이제 저희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서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 태어나기 위해 마음을 비우고 주님과 형제들에게 용서를 청합니다.

저희 모두는 전쟁과 분단으로 집약되는 민족적 비극의 책임을 함께 짊어지고 있음을 인정하고 비극의 책임을 타인에게만 돌리며, 묵은 상처를 헤적이고, 서로간의 증오를 키우며, 불화와 불목을 일삼아 온 잘못을 고백합니다.

주님, 이제 저희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다짐하는 날을 선포하고자 합니다.

평화통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해마다 6월 25일을「민족 화해의 날」로 정하여 특별히 기념하겠습니다. 민족이 분열되고 증오가 폭발했던 반 세기 전 그날의 마음을, 오늘 저희는 관용과 사랑, 화해와 일치의 정신으로 승화시켜 나가렵니다. 그「잊을 수 없는 비극의 날」을 화해의 날로 새롭게 기억하며 선언하고자 합니다. 남북의 형제들 모두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결의를 새롭게 하며, 보람찬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가도록 이 화해의 날에 특별히 기도합니다.

주님, 이제 저희는 주님 안에서 다시 태어나고자 합니다.

이 기도를 통해서 저희 모두는 주님 안에서 다시 태어나기를 다짐합니다.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갈라진 형제들을 또 다른 주님으로 섬기고, 자신의 몸처럼 아끼려 합니다. 주님의 은총인 사랑의 위대한 힘에 의지하여 죽음과 증오의 문화에 맞서 사랑과 화해, 생명과 평화의 문화를 이 땅 위에 일구어 나가렵니다. 저희는 이 화해의 날에 북녘 형제들이 우리 공동운명체이며, 민족 구성원의 동등한 일부임을 거듭 확인하며 남북의 구성원 모두가 한 형제임을 고백합니다. 헤어져서 불신하던 형제들과 마음을 함께 하며,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아낌없이 나누렵니다.

주님, 저희의 봉헌을 받아 주소서.

저희는 화해와 일치를 기필코 이루기 위해 사랑의 결의를 주님께 봉헌합니다. 화해와 일치를 위해 자신의 욕망을 희생하여 이를 봉헌하려 합니다. 정치적 계산이나 경제적 이득을 사랑과 화해의 전제로 삼으려는 이기심을 극복하고, 주님의 말씀에 따라 조건없는 사랑을 실천하려는 결심을 봉헌합니다. 이웃 형제간의 인간 존엄성을 되새기며, 가진 바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사사로운 명예와 공로에 길들여진 마음을 승화시켜 주님께 봉헌하여 화해와 일치를 위한 무명의 실천자로 만족하고자 합니다. 민족 앞에서 항상 겸허하려는 저희 다짐을 하느님께 바칩니다. 민족의 화해를 위해 자신을 항상 성찰하려는 결심을 봉헌하오니, 주님 이를 받아 주소서.

주님 저희를 화해의 사도로 파견하소서.

이 봉헌을 통해서 저희는 주님 안에서 화해와 일치의 사도로 다시 태어나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다가오는 21세기에 우리 겨레와 세상에 평화를 전하는 주역이 되고 인류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게 하소서.

주님 저희를 화해의 사도로 키워 주소서.

1997년 6월 25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최창무 주교

우재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