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교육백과] 10 촌지 중독증/정여주

정여주(리오바)·교육학 박사
입력일 2012-02-13 수정일 2012-02-13 발행일 1997-06-15 제 2057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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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지 걱정 말고 학교 오세요』

얼마 전 어느 일간지에 실린 이러한 기사 제목을 보면서 불치병에 가까운 신학기 병이 쉽게 고쳐질 수 있을까 하는 불신감이 먼저 들었다.

「촌지 근절」이라는 말은 삼월이면 변함없이 등장하는 구호이면서도 촌지의 형태와 규모는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를 더 놀라게 한다. 자식이 미운 오리 새끼가 될까 염려하여 소위「약」을 쓴다는 부모들에게 촌지는 더 이상 마음에서 우러나와 전하는 작은 선물의 의미는 아니다.

관행이라며 촌지를 당연하게 주고 받는 학부모와 교사들 외에도, 이를 단호하게 거절하는 교사와 자녀에게 미치는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촌지를 삼가는 부모들도 있다는 것을 간과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거래를 하는 다수의 부모와 교사에 의해 교육의 바른 길을 모색하고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소수는 오히려 소외감과 위축감을 받고 있는 실정을 자주 듣고 본다.

북한의 굶주리는 어린이를 위해서는 옥수수 한 개도 내어 놓지 못해도, 학생을 수입원의 변수로 보는 촌지 중독증에 걸린 교사에게는「자식을 위해서」라며 돈을 아끼지 않는 부모와, 이를 미끼로 부모를 만나는 교사의 근시안적이고 개인주의적 사고와 행동이 변하지 않는 한 학교는 신뢰없는 장터와 같다.

믿음과 대화가 빠지고 촌지만을 주고 받는 풍토 속에서 학생, 교사, 학부모들 사이에 불신과 기만이 성행하는 것을 우리는 너무 많이 보아 왔다. 그런 토양 속에서 어린이들은 권력과 황금만능주의에 중독된 채 어른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뻔한 귀결로 보인다.

촌지문제로 고민하는 교사와 부모를 쓸 데 없이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라 비웃는 시대가 지나 가기를 기다릴 수 만은 없다. 교육보다 촌지에 관심이 더 많은 교사와 돈이면 자녀교육이 해결된다고 믿는 부모를 고칠 수 있는 것이 방침이나 제도 마련보다 변화된 정신과 실천이다.

촌지 근절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부모와 교사는 새로운 만남을 시도해야 한다.

학부모들의 잠재된 역량은 학교 교육을 위해 함께 나눌 수 있는 엄청난 자원이라고 생각한다.

일일 교사, 특별반 교사, 자원 봉사, 상담원, 부모 교실 등의 참여는 월권 행위가 아니라 교육적 협조라고 생각한다. 부모와 교사의 건설적이고 편견없는 정신이 연대될 때, 학교는 학생들에게 희망과 이상을 키울 수 있는 터전으로 변화된다.

촌지가 횡행하는 부조리한 사회에서 정직함과 속된 근성에 도전하는 용기는 가장 우선으로 배워야 할 미덕이다.

정여주(리오바)·교육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