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지방시대 지방교회를 연다] 4. 마산교구

김상재 기자
입력일 2012-02-10 수정일 2012-02-10 발행일 1997-05-04 제 2051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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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실화로 사회 복음화 기틀 마련
적극적인 사회 참여로 복음화 이룩
단계별 사목 전략으로 대희년 준비

◆가정에서 지역 사회까지

「하느님 나라가 임하소서」

마산교구의 2천년 복음화 계획의 표어다.

농어촌과 공단지역이라는 이질적인 복음화 대상지를 갖고 있는 마산교구는 2천년대를 맞기 위해 93년부터 「2천년대 복음화 교구기획위원회」를 발족시켜 연차적으로 사업을 진행시켜 오고 있다.

마산교구는 가정 복음화와 소공동체 운동을 통한 교회 복음화, 이를 바탕으로 한 사회 복음화를 이룬다는 전략을 세우고 현재 내적쇄신 작업에 부심하고 있다.

개개인의 신앙 성숙에서 가정, 교구 지역 사회로 복음화 대상을 넓혀가는 마산교구의 연차적 사목 목표를 보면 우선 1단계였던 93년부터 95년까지는 가정 복음화를, 2단계인 96년부터 99년까지는 교회 복음화와 사회 복음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1단계에서는 선교하는 가정, 봉사하는 가정, 생명을 보호하는 가정이라는 사목 계획을 연도별로 추진했으며 2단계 사목 목표의 시작인 96년에는 소공동체 운동을 도입해 교구 체질을 공동체 중심으로 변화시키는 작업을 펼치는가 하면 올해는 교회 쇄신과 사회 도덕성회복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98년에는 사회참여 활성화, 99년 사회복지 활성화, 2000년 쇄신된 공동체로서 21세기 개막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교구는 교회 쇄신의 차원에서 교구의 기구, 조직, 제반 규정 등을 재정비하고 있으며 교구, 지구, 본당, 수도회, 단체, 기관 차원에서 99년까지의 장기 계획을 수립하는 한편 교회 구성원의 정체성찾기운동을 펼치고 있다.

교회의 내적 정비와 함께 마산교구는 올해를 도덕성 회복의 해로 삼아 정직성 회복, 질서회복운동을 범교구적으로 펼치면서 지역 사회와 함께 하는 교회의 모습을 더욱 구현시키고 있다.

금년 도덕성회복운동을 기점으로 교구는 사회 현실 분석과 참여를 통한 사회 복음화를 이룬다는 목표로 농어촌, 공단, 생명, 환경문제 등에 적극 개입해 사회 참여와 정의평화운동을 활성화하고 사회복지 사업에 전 교구민의 동참을 호소할 방침이다.

또한 성지 개발, 교육관 설립, 교구사 편찬, 교회 전산화, 본당 증설 등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한 사업에는 5개년 계획을 수립해 차질없이 진행시켜 갈 예정이다.

마산교구는 이와 같은 사목 목표의 성공적 완수를 위해 다각적으로 복음화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노동자 농민과 30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62년 10월 ~ 65년 12월)가 끝난 직후인 1966년에 2월 15일 설립된 마산교구는 국내 어느 교구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 쇄신정신과 「현대 적응」이라는 사목정신을 가장 먼저 받아들여 실천한 교구다.

설립 이후 전근대적인 농어촌 사회가 근대화된 산업도시로 급격히 변화하는 과정을 교구 설립과 함께 맞이한 마산교구는 초대 교구장 김수환 주교(현 서울대교구장 추기경)와 후임 교구장들의 사목 방향에 따라 교구와 본당의 조직을 쇄신하는 한편 공의회 가르침을 받아들여 지역 사회 속에 깊이 들어가는 데 사목의 총력을 기울였다.

교구 단위의 지도자 교육 실시, 농어촌개발위원회 설립, 사제 연수부 설치, 가톨릭문화원 및 여성 근로자 회관 건립 등을 통해 급변하는 사회 환경에 적응하는 교회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러한 발 빠른 대응은 1970년 마산에 수출자유지역이 설정되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근무하게 되면서부터 전개하는 노동 사목의 원천적 힘이 된다.

당시 교구는 수출자유지역 업체 종사자 가운데 3분의 2 이상이 여성들임을 감안해 가톨릭 여성회관과 양덕동 성당을 세워 여성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며 사목과 지원활동을 폈다.

급속한 산업화로 사회의 가치관이 흔들리던 시절 교구는 지역의 노동자 대부분이 열악한 작업 환경, 열등의식과 소외감, 물가고와 주택난 등으로 심적 고통을 받고 있으며 이 같은 이유로 세속적 유혹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파악하고 노동의 가치를 홍보하는 한편 이들의 가치관과 윤리관 확립에도 적극 나서게 된다.

각종 교육을 통해 노동자의 의식을 계발하는 한편 남녀 JOC 활동을 통해 일터 속에 그리스도 정신을 심고 교회의 문턱을 낮춰 노동자들이 교회를 그들의 쉼터로 이용하게끔 문호를 개방했다.

무주택 노동자들을 위해서는 마산시와 공동으로 서민 아파트를 건립해 공급하기도 했으며 탁아소, 소비자협동조함, 신용협동조합 등을 설립 운영해 노동자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키는 데 앞장서 왔다.

또한 노동자들을 위해 건립한 여성회관, 창원 사회교육회관, 문화원 등을 통해 노동자들의 문제를 꾸준히 파악하고 파악된 문제의 해결을 통한 노동자 권익 보호에 앞장서는 한편 전인교육, 노동교육, 정서교육을 통해 메마르기 쉬운 일상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성장시켜 가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요즘 마산교구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에 보다 신경을 쓰고 있는데 이들이 받기 쉬운 불이익으로부터의 보호뿐 아니라 대 시민 홍보, 각종 세미나 개최 등 적극적인 노동사목에 나서고 있다.

이 같은 노동자들을 위한 사목을 보다 강화하기 위해 마산교구는 「노동사목위원회」를 구성, 예전의 상담활동 뿐 아니라 노동자 지도자 양성을 위한 노동학교의 개설 등과 같은 보다 적극적인 노동 사목을 펼칠 계획이다.

교구 출범과 함께 꾸준히 이어 온 노동 사목은 이제 마산교구의 대명사처럼 되었고 교구도 친근한 노동자의 벗으로 남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노동 사목을 위해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 마산교구는 또한 공단과 농어촌 사회라는 이질적 복음 대상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어느 한 쪽도 등한시하지 않고 이 둘을 조화롭게 하는 데도 나름대로의 힘을 쏟고 있다.

교구민 중 많은 이들이 노동자들인데 반해 지리적으로는 대부분 농어촌인 입지 조건을 감안한 마산교구는 낙후된 농어촌 개발을 위해서도 일찍부터 부단한 노력을 경주해 왔다.

69년 농촌개발위원회를 발족하고 농어민들과 눈높이를 맞추어 온 교구는 우리밀살리기운동 경남협의회, 우리농촌살리기운동 마산본부 등을 잇달아 설립해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농어촌 지키기에 나서고 있다.

이들 조직들을 통하여 도ㆍ농 연대를 통한 우리 농산물 생산ㆍ소비 기반 구축, 창조질서 보존운동, 교육, 조직, 조사 연구에 나서 도농생활 공동체 건설에 앞장서고 있다.

2천년대까지를 포함한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농어촌 개발과 선교에 나서고 있는 마산 교구는 농촌 살리기를 위해 도시 본당과 농촌 본당의 각 세대를 도시는 소공동체별, 농촌은 공소(마을)별로 조직화하고 이를 도시 1본당과 1공소의 자매결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소비자들에게는 자연학교 추수감사제 일손돕기 등을 통해 현장체험케 하고 이들이 농촌의 현실을 직시해 형제적 연대를 이루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교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산교구의 입지 여건상 노동 사목에 비해 그 형평성이 어느 정도 기울어지는 부분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이 사실이며 농어촌 지역의 선교도 미미한 실정이다.

이런 점을 인식한 많은 교구사제들은 자발적으로 농어촌에 투신, 이들과 함께 부대끼며 모든 부분에 총력을 기울일 수 없는 교구의 사정을 몸으로 벌충(?)하고 있다.

◆교구의 미래

마산교구는 1957년에 대목구로 승격된 부산교구에 속해 있던 마산 지방이 날로 교세가 확장됨에 따라 당시 부산교구장 최재선 주교에 의해 65년 10월 교황청에 주청되어 66년 2월 15일 교황 바오로 6세의 인준을 받음으로써 설립됐다.

경남 5개 시(마산 진주 삼천포 충무 진해)와 13개 군을 관할 구역으로 인구 2백2십여만의 마산교구의 첫 교구장으로는 가톨릭시보사 사장 김수환 신부가 피명돼 66년 5월 31일 주교 서품식과 착좌식을 가졌다.

설립 당시 총신자 2만8천 명, 교구 성직자 22명 (한국인 16명 외국인 6명) 본당 수 21개, 1백 개소의 교세를 보이고 있었다.

김수환 주교는 착좌식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제시한 교회쇄신 정신과 사목 정신을 최선을 다해서 모든 교구 신자들과 수도자, 성직자들이 협동하여 구현시켜 나가야 한다』고 못 박음으로써 교구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새 교구의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김 주교는 전국에서 가장 빨리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령에 부응한 교회 조직과 교구 체제를 정비하는 등 인화와 단결을 바탕으로 교구 발전의 기틀을 다졌다.

그러던 중 1968년 서울대교구장 노기남 대주교의 사임으로 김수환 주교가 후임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됨으로써 제2대 교구장에 부산교구 부교구장 장병화 신부가 임명됐고 20년4개월 동안 교구 발전에 헌신해 온 장 주교의 사임으로 88년 12월 28일 전주교구장 박정일 주교가 전보 발령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초대 교구장 김수환 주교의 뒤를 이은 장병화 주교와 현 교구장 박정일 주교도 교구의 나아갈 방향을 일치와 봉사의 증거하는 공동체로 잡음으로써 마산교구는 꾸준히 지역 사회와 함께 애환을 같이 하는 실천하는 신앙을 보여 왔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96년 말 마산교구는 사제 수 1백14명(한국인 1백12명, 외국인 2명, 수도회 13명)에 58개의 본당, 신자 수 12만 1천8백51명으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

교구 설립 10여 년간이 급격한 산업화에 맞는 복음화 전열을 정비하는 시기로 본다면 이후 10년간은 교구 발전기 그리고 90년대는 교구 성숙기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이제 성숙한 모습으로 2천년대를 맞이하는 마산교구는 지난 세월을 거울 삼아 자신의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하고 보다 깊숙히 사회 속으로 들어가 신앙의 밥상을 지역민과 함께 나누려고 하고 있다.

마산교구가 자신이 준비한대로 쇄신된 교회 공동체로서 21세기의 개막을 맞기 위해서는 계획한 자기 성찰-가정 복음화-소공동체-교회 복음화-사회 복음화 사업이 차질없이 진행돼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교구민의 적극적인 동참이 절대적으로 선행돼야 한다.

마산교구는 이 같은 점을 주지하고 교구민 참여를 위한 교육과 운동을 전개할 계획이며 이 계획들을 그대로 2천년대 사목 전략에 연계해 사회 참여 활성화, 사회복지 활성화를 꾀하고자 한다.

공단과 농어촌의 이질적 입지 조건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마산교구로서는 이 두 지역의 균형 있는 발전을 모색 또한 새로운 교회상 확립에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여 생협운동 등을 통한 도농공동체 조성에도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교구 설립 당시의 열정으로 돌아가 소외된 이웃과 노동자들의 벗으로 새롭게 태어나려는 마산교구의 노력은 곳곳에서 땀으로 배어 나와 지켜보는 이들로 하여금 2천년대를 기대하게 한다.

김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