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예수님과 사도들과의 동행’ - 제4차 정통 크루즈 성지순례 (2) 이스라엘 ①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11-11-16 수정일 2011-11-16 발행일 2011-11-20 제 2771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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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을 초월해 예수님을 만나다
하이파항에서 이스라엘 순례 시작

예수님이 태어나고 자라고 기적을 행하고 죽고 부활한 곳. 이스라엘 성지순례는 하이파(Haifa)항에서 시작됐다. 성경에 등장하는 예루살렘이나 나자렛, 베들레헴에 비해 이름이 다소 생소하지만 하이파는 이스라엘 최대 항구도시다. ‘비전’호에서 내려 이스라엘 영토에 첫 발을 디디기까지 지난한 인내의 시간이 필요했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순례객들이 한꺼번에 몰려나와 입국 수속을 받기 위해 내려가는 배 안 계단은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한 덩어리로 뒤범벅이 돼 한 발 한 발 겨우 움직여야 했다.

하이파에서 첫 순례지 나자렛까지는 버스로 1시간이 약간 넘게 걸린다. 항구를 빠져나가는 도로는 미로처럼 얽혀 있는데다 주변으로 철조망이 둘러쳐 있고 무장 군인들도 자주 보여 분쟁이 끊이지 않는 지역임을 알 수 있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우리나라 농촌과 닮은 듯하면서도 ‘키부츠’라는 이스라엘 민족만의 독특한 공동거주 형태와 무리를 지어 움직이는 양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타셨던 노새의 모습은 이국적 정취를 느끼게 했다. 거의 모든 건물들이 4층 높이를 넘지 않는 것은 예루살렘 성벽(평균 높이 17m)보다 높아서는 안 된다는 전통이 지금도 지켜져서다.

나자렛에서 한국의 성화 만나다

이스라엘 첫 순례지는 예수님이 대부분의 생애를 보낸 나자렛. 버스에서 내려 ‘탄생예고 성당’ 또는 ‘성모영보 성당’이라 불리는 곳으로 걸어서 이동했다. 사람들은 이곳을 ‘교회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성모 마리아의 순종으로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셨기’ 때문이다.

탄생예고 성당 정문에는 예수님의 탄생과 성장, 세례, 기적이 부조로 표현돼 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자 순례객들이 한 곳으로 급하게 움직였다. 성당 마당 벽에 ‘평화의 모후여 하례하나이다’라고 한글로 씌어진 성모자상이 보였다. 이스라엘 나자렛에서 한국의 성화를 만난 것이다. 한국과 이스라엘이 공간을 초월해 가깝게 다가왔다. 이 성화는 고 이남규(루카·1931∼1993년) 교수의 작품으로, 아쉽게도 세계 50여 개국에서 먼저 성화를 기증해 성당 안에 전시되지는 못하고 있다. 성당 한쪽에는 성모 마리아가 가브리엘 대천사를 극적으로 대면하는 감격적인 순간을 묘사한 동상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낮 12시 귀가 번쩍 뜨일 듯한 삼종기도 종소리를 들으며 예수님께서 ‘사람 낚는 어부’를 키우신 갈릴래아 호수로 이동했다. 갈릴래아 호수는 예수님께서 나자렛보다 더 오래 머물며 사신 곳이다. 2000년 전 베드로가 그랬듯이 호숫가에서 그물을 던지며 고기를 잡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갈릴래아 호수에 배가 한 척 떠 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과 함께 저런 배를 탔을 것이다.
순례객 배 타고 갈릴래아 호수로 들어가

호수에 인접한 식당에서 ‘베드로 빵’이라 불리는 이스라엘 향토 음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순례객들이 갈릴래아 호숫가를 거닐던 오후 2시, 기온이 섭씨 38도에 육박했다.

예정에 없던 일이 생겼다. 크루즈 성지순례 사상 처음으로 순례객들이 배를 타고 갈릴래아 호수에 들어갔다. 그날 따라 호수는 조약돌만 던져도 파문이 일 것처럼 몹시 잔잔했다. 갈릴래아 호수에 풍랑이 쳐 제자들이 겁을 먹고 살려 달라 아우성칠 때 태연하게 주무시던 예수님(마태 8, 24), 물 위를 걷다 의심을 품고 호수에 빠져드는 베드로의 손을 잡아 구해주시던 예수님(마태 14, 31)이 같은 배 어딘가에 타고 있는 것 같았다.

천천히 움직이는 배에서 갈릴래아 호수 주변을 바라봤다. 티로와 시돈까지 소문이 퍼져 사람들이 모여들었다는 카파르나움과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빵 다섯 개로 5000명을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았다는 ‘오병이어 기적’의 현장, 진리를 찾던 군중들을 다정하게 내려다보시며 ‘참행복’을 설파하셨던 언덕이 모두 갈릴래아 호수 위를 움직이는 배에서 한눈에 들어왔다. 시공의 개념을 망각한 채 예수님을 다시 만나는 그 순간에는 더위마저 가셨다.

배에서 내린 순례객들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세워진 참행복선언 기념성당, 빵의 기적 성당(오병이어 성당), 베드로수위권 성당을 거쳐 카파르나움 성당에서 하루의 순례를 마감하는 미사를 봉헌했다. 카파르나움 성당은 현재 보호유리 밑으로 보이는 사도 베드로 집터 위에 세워진 성당으로 예수님이 베드로 장모의 병을 고쳐준 바로 그곳이다.

갈릴래아 호숫가에 세워진 진복팔단 성당 전경. 예수님의 설교를 듣던 군중들이 서 있던 자리는 현재 바나나 밭으로 바뀌었다.

예수님의 탄생 겸손되이 묵상

하이파를 떠나 지중해를 항해한 비전호는 베들레헴과 예루살렘으로 순례객들을 안내하고자 아스돗(Ashdod)에 닻을 내렸다. 예수님의 탄생지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은 팔레스타인 군인들의 엄중한 감시를 통과해야 했다. 총 든 군인들을 뒤로 하고 예수님이 탄생한 그 자리에 함께한다는 설렘을 먼저 맞이한 것은 예수님 탄생 성당의 ‘겸손의 문’이었다. 허리를 숙여야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높이가 낮다. 잘 살펴보면 문의 높이를 점점 낮게 고쳐 지었다. 마차가 지날 수 있는 높이에서, 사람이 서서 지날 수 있는 높이로 그리고 허리를 숙여야 하는 높이로 변했다. 문의 이름대로 예수님의 탄생을 겸손되이 묵상하라는 뜻일 것이다.

‘예수님 탄생 동굴’로 내려가는 계단은 좁고 마모가 심해 미끄러워 발걸음을 조심해야 했다. 평소에는 20m 이동에 2시간이 걸리는 것이 예사인데 순례객들은 20분도 안 기다려 예수님 탄생을 표시하는 별자리에 친구할 수 있었다. 한 순례객이 “천국에도 바로 갔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자렛 탄생예고 성당 마당에 있는 성모 마리아와 가브리엘 대천사의 극적인 대면을 표현한 조각상.
베들레헴 예수님 탄생 성당으로 들어가려면 허리를 숙이고 ‘겸손의 문’을 통과해야 한다. 겸손의 문은 높이가 점점 낮아졌다.
베들레헴 예수님 탄생 성당 안의 예수님 탄생 자리가 별로 표시되고 있다.
순례객들은 성탄전야미사가 CNN을 통해 전세계에 생중계된다는 카타리나 성당에서 미사를 드린 후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그 일,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봅시다”(루카 2, 15)라고 외친 목자들을 기념하는 목자들의 들판 성당에서 목자들의 심정으로 예수님 탄생을 기뻐했다.

사도 베드로의 집터 위에 세워진 카파르나움 성당에서 봉헌된 순례객 미사 장면.

박지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