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 인터뷰] ‘통일TV방송’ 개국한 봉두완 천주교한민족돕기회 회장

임양미 기자
입력일 2011-09-21 수정일 2011-09-21 발행일 2011-09-25 제 2763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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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모두 웃고 울 수 있는 사람·민족 위한 방송 지향”
한평생 교회 안에서 통일 위해 몸 바쳐
사상 체제 비판 배제한 정서교류 시도
형제적 사랑으로 많은 관심·나눔 요청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누구나 한 번쯤 불러봤을 ‘우리의 소원’이 남북분단 60년을 훌쩍 넘긴 현 시대에도 유효한 ‘우리의’ 소원일까. 분단의 아픔을 안고 있는 이산가족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통일의 주역이 돼야 할 젊은층의 통일에 대한 관심도 점차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통일교육원이 1997년부터 지난해 2010년까지 중앙부처와 국책연구기관 등에서 발표한 청소년 통일의식 관련 설문조사에 의하면, 통일에 대한 관심은 1997년 71%에서 2010년 57.3%로 급감했다. 통일에 대한 필요성에 대한 인식도 85%에서 66.6%로 현저히 감소했다. 모두에게 당연한 것으로 인식됐던 남북통일은 이제 그 당위성을 의심받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멀어지고 있는 남과 북. 같은 말을 쓸 뿐이지, 말의 의미도 달라지고, 의사소통이나 감정 소통이 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하게 격차가 벌어진 남과 북의 일치를 위한 통일TV방송(사단법인 한반도 비전과 통일 산하)이 드디어 나왔다. 통일TV방송의 설립자이자 대표인 천주교한민족돕기회 봉두완(다윗·한미클럽 회장) 회장을 16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사)한미클럽 사무실에서 만났다.

기다려왔던 방송이었다. 남과 북의 주민 모두가 함께 시청하며 웃고 울 수 있는 그런 방송. 이념이나 체제를 비판하는 내용은 모두 ‘정치인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남과 북 구분 없이 오롯이 ‘사람’을 지향하고, ‘민족’을 지향하는 그런 진짜 ‘통일’ TV방송 말이다.

몇 년 후면 곧 여든의 나이에 접어드는 봉두완 회장의 입에서는 20대 청년 못지 않게 열정적이고 패기 넘치는 말들이 흘러나왔다.

“북한사람이 우리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면 웃음이 나올까요? 전혀 웃지 않을 겁니다. 그럼 반대로, 우리 남한사람들은 어떤가요. 심각하고 비장하게 뉴스를 전하는 북한 TV 아나운서를 보고 우스워하지요. 남북의 이질성이 극에 달해있습니다. 이런 이질성을 극복하고, 남북의 동질성을 회복하기 위해 통일TV방송을 오래 전부터 구상해왔습니다. TV 방송은 오랜 분단으로 인한 남북의 이질성을 해소하고, 남북한 주민 모두를 하나로 만드는데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 될 것입니다.”

1969~1980년 중앙일보 논설위원 겸 동양방송(TBC) 논평위원을 맡았고, KBS·MBC·SBS 지상파 방송사에서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로도 활약한 바 있는 봉두완 회장은 평생을 언론직에 봉사해온 베테랑 방송인이다. 이제 인생의 종착역을 향한 마지막 스퍼트를 내고 있는 봉두완 회장은 마지막 소명을 받들 듯이 통일TV방송을 준비했다.

“지금 하느님만 빼 놓고, 통일이 언제 될 지는 그 누구도 모릅니다. 우리가 지금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통일이 될지 모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늘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호롱불을 켜고 늘 깨어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의 이야기가 복음말씀에도 나오잖아요. 저는 대한민국 초대 방송인입니다. 제 분야에서 쌓아온 능력과 경력에 저의 신념을 담아 남북을 묶어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일이 마치 하느님의 명령처럼 느껴졌어요. 순명해야지요.”

인터뷰 내내 ‘하느님’ 얘기를 참 많이 하는 봉두완 회장은 깊은 신심을 갖고 평생을 남북통일을 위해 헌신해온 가톨릭 신자다. 황해도 수안 출신의 봉 회장은 1946년 10월 남한으로 와 1958년 ‘다윗’이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됐다. 이후 천주교한민족돕기회에 몸 담고 고(故) 김수환 추기경, 김옥균 주교 등 사목자들을 도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북통일을 위해 일해 왔다. 매년 20만 자루의 초를 북한에 보내 ‘빛’을 전하는가 하면, 1998년 당시 약 15억 원의 통일성전 건립을 위한 부지 매입금을 손수 모금하기도 했다. ‘기도는 핵무기보다 강하다’는 김수환 추기경의 말씀을 받들어, 지금까지도 명동성당 소성당에서 매주 한 차례 남북통일기원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내 인생 자체가 남북통일을 위한 가톨릭적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어요. 남북통일을 위해서 한 가지 할 수 있는 건 기도뿐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평생을 다해 기도했지요. 그리고 이제 하느님의 명령처럼 느껴지는 이 통일TV방송을 위해 헌신할 겁니다.”

봉 회장은 방송의 힘을 믿고 있다.

“독일통일에 기여한 서독TV방송이 시작한지 20년 만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어요. ‘방송교류’ 조항이 포함돼 있던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를 맺은 지 20년 만에 우리 통일TV방송이 나왔거든요. 앞으로 20년 후, 정말 통일이 될지도 모르는 일 아닐까요?” 진정 남과 북의 일치를 염원하는 방송이기 때문에, 통일TV방송에는 사상 체제 비판이나 양쪽의 현실 비교 등을 일절 배제할 예정이다. 대신 드라마, 쇼, 코미디 등 오락프로그램 중심으로 편성하고, 남한 사회를 응축해서 보여주는 광고방송을 통해 극적인 정서교류를 꾀할 계획이다.

방송은 무궁화위성을 통해 남북한 전체에 전파를 뿌리는 위성방송 형식으로 할 예정이다. 기존 위성방송 수신 장치에 소형 실내 안테나를 설치하면 폐쇄사회에 살고 있는 북한 주민들도 은밀하게 방송을 시청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이뿐만 아니라 방송 내용이 건전하기 때문에 북한 당국의 주민 방송 허가도 기대해볼 만하다는 것이 봉 회장의 생각이다.

“오락프로그램 위주로 방송할 겁니다. 남과 북 주민이 모두 보고 웃을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이요. 그리고 훗날 남북관계가 풀리면 개성공단 같은 곳에서 남북 노동자가 함께 참여하는 노래자랑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더 발전하면 북한의 방송 중 순수한 오락 프로그램을 선택적으로 혼합 편성할 수도 있고요. 오락프로그램을 통해 정서와 사물에 대한 개념 일치부터 시작하려고 해요.”

통일TV방송이 남북관계에 의해 좌지우지되거나, 정부 당국과의 마찰을 빚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봉 회장은 여유만만하게 웃었다.

“이미 통일부와의 협의를 거쳤습니다. 통일부 역시 통일방송을 자체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는데, 좋은 파트너를 만났다고 반색하더군요. 통일부 실무자들과 부단히 의견교환을 하고 있습니다. 또 이사회를 구성할 때 보수 진보 양측 인사를 균형 있게 배치해 방송 내용을 내부에서 감시하게 하고, 자문단에도 양측 인사를 고루 위촉해 외부 감시체제를 갖췄습니다. 그래야 정권 교체에 상관없이 안정된 방송체제를 지속할 수 있겠지요.”

고문단에는 임채정 전 국회의장, 정원식 전 국무총리를 비롯해 전 의정부교구장 이한택 주교, 개신교 윤길수 목사, 원불교 박청수 교무 등 종교계 인사도 총망라해 위촉했다. 언론·정치·종교·경제계 인사 25명이 통일TV방송을 위해 뜻을 모은 만큼, 그 앞날도 탄탄할 것으로 짐작된다.

“저에게 꿈이 한 가지 있습니다. 통일TV방송의 한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나서는 것이지요. 후 내년이면 여든 살인데, 그때 방송을 통해 남과 북의 소식을 전하고 있으면 좋겠어요. 여러분께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한 형제 아닙니까. 공동체가 형제적 사랑으로 뭉칠 수 있도록 우리 서로 가진 것을 내놓으면서 삽시다. 사람=하느님 아닙니까?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이잖아요. 우리보다 더 못한 형제들을 위해서 우리 가진 것을 내놓고 삽시다. 그런 신념을 통일TV방송에 꼭 담겠어요.”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 평생 숙원사업인 ‘우리의 소원’인 통일을 위한 마라톤의 마지막 결승선을 바라보고 있는 봉두완 회장, 그는 진정한 주님의 남북 통일 일꾼이었다.

10여 년간 하루도 빼 놓지 않고 써온 빨간 적십자 모자를 쓴 봉두완 회장. 한결같은 자세로 맡은 바 소명이라 여기는 남북통일을 위해 일해온 봉 회장의 이번 각오 역시 남다르다.

임양미 기자